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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27일
| 高宗 1
| 甲子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에서 전교하여 말하였다. 서원과 향사는 도학절의(道學節義)로써 혹은 훈업(勳業)의 공으로 후인이 존모하고 보답하려는 정성이 없지 않다. 고생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사람과 죽음으로써 나라 일에 힘쓴 사람은 사전(事典)에 의거하여 마땅히 거행해야할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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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21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도화서(圖畫署)에 모인 유생이 듣건대 백여 명이었으며 소청(疏廳)에서 태학(太學)에 글을 보내라는 의견을 내어 장의(掌議)를 선출하여 근실(謹悉)을 빨리 보내주기를 청하였다고 하니, 그 뜻을 알 수 없다. 그 무리 또한 무단히 모이고 흩어진 것을 부끄러워하니, 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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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27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무더위가 매우 성하였으며, 머물고 있는 집이 모두 담장을 대하고 있었고, 또 모기와 이는 고향에 있을 때보다 심하였다. 노인과 젊은이들이 밤낮을 보내기 매우 어려웠으며, 노인들은 혹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으니 염려되고 근심되었다. 어떤 사람이 승지(承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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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7일
| 高宗 1
| 甲子
| 많은 비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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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10일
| 高宗 1
| 甲子
| 개다.
승지(承旨) <인명>유세환(兪世煥)인명>이 <지명>전현(磚峴)지명>에 와서 <지명>호계(湖溪)지명> 몇 명을 만나기를 요구하였다. 대개 소청(疏廳)에 들어오고자 하였으나 한 쪽에서 원흉이라 지목하여 이 때문에 길 중간에 만날 것을 요청하였다. 종숙부(從叔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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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1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떠난 뒤의 날을 계산해보니 이미 두 달이 지났고, 청액 하는 일은 손 쓴 것도 없고 많은 인원의 월급을 앉아서 천의 반(오백)을 사용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걱정되고 탄식하게 했다. 종일 비가 그치지 않아 농사의 바람은 위로할 만하였으나 여관에서의 근심은 그야말로 감당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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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11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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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18일
| 高宗 1
| 甲子
방외의 소비(疏批)를 비로소 얻어 보았다. 비록 생사(生事)에 우려할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지의(旨意)가 조금 위험하니 가탄스러웠다. 들으니 관학소(館學疏)는 비답을 본 뒤에 물러나 기다리며 탄신일 이후에 하겠다고 하니 정거(停擧)되는 것에 겁을 먹은 것 같아 가소로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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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26일
| 高宗 1
| 甲子
아침 식사 전에 무리를 따라 절일제 과장 안으로 들어갔다. 뜰에는 이미 어제 저녁부터 우산을 설치하여 지키는 접(接)들로 남은 땅이 없었다. 이 또한 전에 없던 일이나 영남 유생이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인명>응춘(應春)인명>의 무리가 문으로 들어가 가까스로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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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10월 7일
| 高宗 1
| 甲子
| 추위가 더욱 심하다.
감기는 자력으로 할 수 없었으니 근심스럽다. <인명>민승호(閔承鎬)인명> 동류들 가운데 호신(呼新)을 놀리러 온 자가 심처에서 방목에 차례대로 1등 1인부터 33인에 이르기까지 썼고, 그것을 시소(試所)에서 정서해 내었으며, <지명>남촌(南村)지명> 사랑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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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8월 4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과방(科榜)이 어제 다 나왔고, 낙방한 거자들이 태반이나 떠나갔다. 시끌벅적하던 것이 혹 조금 줄어들 수 있겠는가? <인명>응춘(應春)인명>, <인명>자장(子長)인명>, <인명>경달(景達)인명>, 그리고 사촌 <인명>철(哲)인명>이 동당(東堂)을 보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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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8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식전에 반촌의 여러 친구 노소들이 일제히 왔다. 그들이 장차 나가면서 빨리 가지고 하니 종숙부는 피곤하고 초췌하다는 것으로 사양했고, 나와 <인명>중현(仲賢)인명>은 볼일이 있어서 뒤에 형세를 보고 할 것이라는 말로 사양하며 그들을 떠나보냈지만, 행여 가는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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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8월 5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친족과 친구들이 가는 행차를 염두에 두니, 넉넉하지 않은 돈으로 나아가고 머무르는 것이 모두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 때문에 근심스럽고 걱정됨을 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듣건대, 과유들 가운데 낙방한 자들이 탕평비(蕩平碑) 앞에서 모여 시관의 오점에 대해 시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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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13일
| 高宗 1
| 甲子
| 조금 비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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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22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영남의 과유(科儒)들이 운집하여 시달림이 배가되니 난감하고 고민이었다. 집안의 여러 일행이 아직 들어오지 못했는데, 중도에 병이 생겼을까 우려되어 잊히지 않았다. 공백 형(公伯兄)의 객관에 기계를 마련하고 시험 볼 종이를 잘랐다. 여러 사촌들의 피곤함을 풀어줄 계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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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10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그대로 그치지 않다.
대가(大駕)가 일찍 거둥하여 <지명>남별궁(南別宮)지명>에서 오랑캐 칙사에게 문후를 하러 갔다고 들었는데, 비록 이는 주객의 예이지만 변발한 오랑캐 사신 앞에 이 어찌 차마 할 일인가? 분하고 탄식할 뿐이다. 오후에 문오 령(文五令)이 비를 무릅쓰고 왔다.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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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6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식전에 <지명>니현(泥峴)지명>의 오 교리(吳校理) 집으로 문집과 병명(屛銘)을 싸서 보냈는데, 어제 그 사람이 가지고 심처(深處)에 드리기로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의 기미는 가죽신 밖에서 긁는 것이니, 우선 한마디의 말을 투급하여 심처의 판가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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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30일
| 高宗 1
| 甲子
듣기에 밤과 새벽에 이미 시험장 문으로 들어가 보니 과장(科場)의 반이 이미 가득 찼다고 했다. 늦게 비로소 젊은이들이 들어가 순흥 골천 접(順興骨川接)에 좁은 자리라도 내 줄 것을 간청하여 얻었으니 매우 중요한 자리였고, 또 호평 접(虎坪接)과 이웃하고 있다고 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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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8월 10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밤새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다.
밤새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렸는데 지나간 흔적이 없으니 매우 이상한 일이다. 제군(諸君)이 시험지를 배접하는 일에 매우 골몰하였고, 나 또한 중현(仲賢)과 함께 일에 시달렸는데 자초한 수고로움임을 깨달으니 괴탄스럽다. 소청(疏廳)에 돈이 떨어져서 비용을 나눌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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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8월 18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하양관(河陽官)의 하인이 새벽에 출발하여 답장과 집안의 과거보러 온 행차에 관해 편지를 써서 부쳤다. <인명>응춘(應春)인명>은 일소시(一所試)를 보러 가려고 하였는데 과장이 나눠지는 것을 싫어하여 나에게 함께 가자고 요구하였다. 나는 과거를 보는 것은 당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