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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1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인명>공백(公伯)인명>이 말한 것을 종숙부에게 알렸다. 인하여 이 일이 마침내는 이루어지지 않을 염려가 있어서 일행의 의견은 막 동서로 분주하게 다니면서 한 사람이라도 편안히 앉아있는 자가 없고자 하였으니, 이전에는 병유(屛儒)들이 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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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5월 29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밤에 비가 많이 내리다.
오늘 고개를 넘으려고 했으나 폭염이 매우 심하여 미리부터 머리가 아팠다. <지명>금계(金溪)지명>의 본손(本孫) <인명>천로(天老)인명>와 <인명>군필(君弼)인명>이 모두 인사하고 돌아가니, 매우 한탄스럽다. 식사 후에 길을 떠나 <지명>죽령(竹嶺)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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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6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식후에 비옷을 입고 출발했다. <지명>달음치(達陰峙)지명>를 걸어서 넘어가 <지명>신원점(新院店)지명>에서 점심을 먹었다. <지명>어영곡(御營曲)지명>에 이르러 <지명>영남지명>의 반상(返喪)이 막 지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지명>마명동(馬鳴洞)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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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19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아침 먹기 전에 소수(疏首) 이하가 <인명>이사실(李士實)인명> 오숙(五叔) 어른의 객관에 갔다. 서로 대면하여 분개하면서 누르고 방지할 방법을 대략 논의했지만 그 방법이 없으니 탄식스러움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일이 돌아가는 것이 어떠한지를 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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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5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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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6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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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17일
| 高宗 1
| 甲子
장의(掌議)가 장차 들어가서 관학소(館學疏)를 처리한다고 들었는데 명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종일 모임에 가지 못했는데 유소(儒疏)의 비답이 내려온 것을 본 후에 하겠단 것인가. 하양 숙주(河陽叔主)는 어제를 출발하는 날로 정했으나 돈이 유통되지 않고 여러 가지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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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23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호장(湖丈)이 들어 왔다. 범혼(犯昏)하여 여관에서 자고 왔다고 하니 더욱 구차했다. <인명>강난형(姜蘭馨)인명>이 수장에 냉락(冷落)하지 않았는데, 중현(仲賢)과 함께할 때와는 조금 달랐다. 노릉(魯陵)의 소초를 보여주니 다 읽고 흠탄(欽歎)하며 "틈을 봐서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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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15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진사(進士) <인명>손우영(孫友永)인명>과 대아(大雅) <인명>이능화(李能華)인명>가 문안하러 왔다. 환전(換錢: 환표(換標)로 보내는 돈)을 옮겨오는 일로 석장(席匠) 도가(都家: 조선시대 시전계 또는 상인조합의 본부)에 하인과 말을 보냈는데 주인을 만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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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22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정언(正言) <인명>정집교(丁集敎)인명>, 대아(大雅) <인명>권필억(權必億)인명>이 문안하러 왔다. 듣건대 대원군이 태학(太學)의 수복(守僕)이 고한 방외(防外) 통문을 보고서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물으니, 수복이 답 없이 돌려보낸 것으로 고하였다고 한다.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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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28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소수(疏首)는 피서 때문에 도청소(都廳所)에 가서 종일 머무르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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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8일
| 高宗 1
| 甲子
| 조금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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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19일
| 高宗 1
| 甲子
하양 숙부가 관행(官行)함에 100전을 손에 넣어 대충 여러 빚을 갚았다. 반중(泮中) 모임 8냥, 소청(疏廳) 4냥, 학재(學齋) 4냥, 나의 숙질 10냥, 호장(湖丈)과 공백(公伯), 사첨(士瞻), 중현(仲賢), 희민(希民), 덕조(德祖)씨 모두 1냥을 주니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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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25일
| 高宗 1
| 甲子
오늘 탄신일이 되었으니, 신민의 축하는 끝이 없다. 과거유생이 들어온 상황은 반촌(泮村)에서는 얼마 수용하지 못하니 답답할만하다. 저녁 식사 후에 녹문관(鹿門館)에서 집에서 온 편지를 찾아서, 등불 앞에서 읽어 보았다. 비록 이것이 철군(哲君)이 출발할 때 보내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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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9월 7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식전에 <인명>중현(仲賢)인명>이 오 교리(吳校理)를 보기 위해 방외(坊外)로 나갔다. 말의 병이 조금 나았지만 끝내 먹을 생각을 내지 않으니, 아마 필시 여증(餘症)이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 비로소 죽을 먹기 시작했으나 전부 먹지는 못했다. 반촌의 여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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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16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식전에 진사(進士) <인명>김수직(金秀直)인명>, 교리(校理) <인명>황인하(黃仁夏)인명>가 문안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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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23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생원(生員) <인명>정춘엽(鄭春燁)인명>이 문안을 왔다. <인명>조순가(趙舜歌)[조병훈(趙秉薰)]인명>가 와서 말하기를 "조금 전에 이조 판서 <인명>김병학(金炳學)인명>의 집에 갔는데, 알현하러온 어떤 무인[武弁]을 보았는데, ‘아침 상간에 대원군의 분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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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2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인명>권우필(權禹必)인명>은 개인적으로 본 바로써 예조 판서 <인명>이의익(李宜翼)인명>을 보러갔는데, 이 일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말 속에 주선해 주겠다는 뜻이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시류를 쫓는 무리들이 면전에서 정성스레 하는 말은 깊이 믿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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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12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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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21일
| 高宗 1
| 甲子
<인명>홍재범(洪在範)인명>등의 찬배(竄配)가 즉각 거행되지 않은 죄로 형판(刑判) <인명>신석의(申錫義)인명>가 파출되었다. 대저 신(申)은 거행할 수 없다는 뜻으로 곧바로 대원군에게 아뢰었으나 대원군이 소리를 높여 체직시켰기 때문이었다. 신(申)은 물러나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