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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11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밥을 먹은 뒤에 교리(校理) <인명>강하규(姜夏奎)인명>가 찾아왔다. 그 사이에 감기를 앓아서 며칠 동안 서로 뜸했는데, 와서 억지로 건을 쓰고 출입한 것은 반우가 돌림병을 의심된다고 한 의혹을 풀기 위한 것이라고 농담을 하니, 서로 웃으며 축하하였다. 승지(承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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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20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봉사(奉事) <인명>김희영(金熙永)인명>, 생원(生員) <인명>박해명(朴海明)인명>이 문안하러 왔다. 오늘 대정(大政: 도목정사) 때문에, 듣건대 <지명>반촌(泮村)지명>의 여러 벼슬아치들이 한 곳에 모여 도목정사를 볼 계획을 했다고 한다. 한 사람도 찾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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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5월 28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아침에 소수(疏首) 이하는 의관을 갖추어 <인명>문성공[文成公, 안향]인명>의 사당을 알묘했다. 배위(配位)는 셋인데, 문정공(文貞公) <인명>안축(安軸)인명>, 문경공(文敬公) <인명>안보(安輔)인명>, 문민공(文敏公) <인명>주세붕(周世鵬)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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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7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일찍 출발하여 <지명>사평진(沙坪津)지명>에 도착했다. 오랜 비 끝에 <지명>한수(漢水)지명>가 불어 넘쳐 이에 세 척의 배로 나누어 탔다. 사공이 뱃삯을 매우 간절하게 하였는데, 비록 매우 놀랐지만 무사히 건너는 데에 급급하여 각기 1전씩 지급했다. 다 건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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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2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호상(湖上) 형과 사촌(沙村) 형이 묘사(墓祀) 치르는 일, 소를 잡는 일, 감봉(監封)하는 일 때문에 왔다. <지명>수곡(水谷)지명> 신당 객(新塘客) 또한 왔다. <인명>표준(表準)인명>이 그의 풍현(豊縣) 매형과 함께 찾아왔다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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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8월 29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임천서원(臨川書院) 종을 행장을 차려 떠나보냈다. 호 장(湖丈)이 <지명>남촌(南村)지명>으로 갔는데, 대개 이 어른은 조바심을 내는 것이 더욱 심해져서 항상 고아함을 지켜서 이룬 것 없고 허물만 보이나 종숙부는 그가 출입하는 힘이 있는 것을 바람이 없을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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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10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저녁을 먹은 뒤에 진사(進士) <인명>김일영(金一永)인명>, 진사(進士) <인명>안행준(安行準)인명>, 진사(進士) <인명>권효연(權孝淵)인명>, 대아(大雅) <인명>조병훈(趙秉薰)인명>, 정언(正言) <인명>조석만(曺錫萬)인명>, 대아(大雅)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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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3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종일 그치지 않다.
비가 종일 그치지 않았고, 겸하여 길가는 가운데 병과 피로 때문에 더러는 설사를 하고 더러는 토하기도 해서 길을 가지 못하고 그대로 유숙했다. 객지에서 근심스러운 마음은 그야말로 견디기 힘들었다. 밤에 또 큰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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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13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인명>이득로(李得魯)인명>가 들어와서는 "중간에 비를 만나 온갖 고생을 겪었습니다. <지명>단양(丹陽)지명>을 지난 이후로는 물길이어서 말을 타고 갈 수 없으니 인마를 돌려보냈습니다. 배를 타고 순조롭게 내려갔으나 <지명>북창(北倉)지명>의 여울에 이르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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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12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장의(掌議) 진사(進士) <인명>이정혁(李庭赫)인명>이 연고가 있어 소수서원(紹修書院) 도회(道會)에 올 수 없었다. 진사(進士) <인명>홍전(洪壂)인명>이 대신 망에 올라 소록(疏錄)을 개서(改書)하였다. <지명>반촌지명>에 들어간 후에 간혹 소록을 첨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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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5월 3일
| 高宗 1
| 甲子
향회에 모인 인원이 많지 않았으나 온 고을의 유론을 주도할 만한 노성한 사람들이 모두 모임에 왔다. 다음날 명륜당(明倫堂)에서 개좌하여 공사원으로 유학(幼學) <인명>이찬(李瓚)인명>, <인명>권재기(權載基)인명>를, 조사(曹司)로 <인명>류치영(柳致榮)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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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4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가 늦게 개다.
비가 내리다가 늦게 비로소 개니 병든 객들 모두 조금 나아졌다. 드디어 길에 올라 <지명>비립가(碑立街)지명>에 도착하였다. 앞 시냇물이 불어 모든 일행들이 간신히 건넜는데, 천전 관행(川前管行)이 냇물 가운데서 말이 쓰러져 의복과 행구가 물에 빠져 주점에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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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17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인명>김응오(金應五)인명> 어른이 학질 증세가 본래 가지고 있던 병과 겹쳐 일어나서 누워서 크게 아프다고 말하기에 가서 병세를 살폈으니, 매우 근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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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25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대아(大雅) <인명>장원상(張原相)인명>이 문안하러 왔다. 박 판사(朴判事)가 반촌의 여러 노성들에게 동협문(東夾門) 나무그늘 아래서 바람을 쐬자고 청하였다. 소수(疏首)가 잠시 나갔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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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3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대원군은 어제 참판(參判) <인명>류후조(柳厚祚)인명>를 통해 <인명>조순가(趙舜歌)[조병훈(趙秉薰)]인명>에게 말을 전하였는데 옥천(玉川)의 일을 이룰 수 없다고 하였다. 대개 힘으로는 조(趙) 대감이 고집하는 것을 제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순가가 애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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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18일
| 高宗 1
| 甲子
| 잠깐 비가 내리다가 개다.
오후에 생원(生員) <인명>이석모(李錫謨)인명>, 대아(大雅) <인명>이긍연(李兢淵)인명>, 진사(進士) <인명>조석룡(趙錫龍)인명>, 진사 <인명>신성락(申成樂)인명>이 문안하러 왔다. 두 진사는 모두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노성한 사람인데, 상소하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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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26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진사(進士) <인명>이만기(李晩起)인명>가 와서 돌아간다고 고했다. 충주목사(忠州牧使)로 부임하는 <인명>아버지[이휘정(李彙廷)]인명> 행차를 뵙고 다음달 20일 전에 올라온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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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4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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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16일
| 高宗 1
| 甲子
밥을 먹은 후에 방외(坊外) 유생들이 복합하였는데 <인명>대원군(大院君)인명>이 승정원에 곧바로 상소를 받아들이라고 명령하였다. 승정원 하리가 분부하여 말하기를 "유생 몇 사람은 따라 들어오고 너희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궐에 들어간 유생 5명을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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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28일
| 高宗 1
| 甲子
| 아침 식사 전부터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다.
아침 식사 전부터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내일 시험 때문에 매우 걱정된다. 시망(試望)은 아직 나오지 않아서 누가 될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남인 가운데는 없고 강(姜)과 이(李) 두 사람이라고 할뿐이다. 아침식사 전에 <지명>백동(白洞)지명>의 하인이 비를 무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