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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7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이 영감(李令監)과 <지명>대평(大坪)지명>으로 갔고, 이어서 호상(湖上) 형과 함께 와서 묵었다. 듣기에 <지명>해저(海底)지명> 흥양(興陽) 숙부의 병 소식이 갑자기 이르러 <지명>고천(高川)지명> 내행(內行)이 이른 새벽에 급히 갔다고 하니 놀라고 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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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15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지명>동성(東成)지명> 편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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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23일
| 純祖 1
| 辛酉
| 새벽에 비가 내리고 늦게 개다.
촌내 몇 집에 인사를 다녔다. 천전(川前) 종매(從妹)를 만났다. 또 하동 댁(河東宅) 이 상사(李上舍) 어른을 만났는데, 부내(府內) 곡반(哭班)에서 막 돌아왔고, 아버지께 약간 음식이 체한 증세가 있다고 하니 매우 놀라고 염려됨을 이길 수 없다. 듣기에 <인명>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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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1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아버지 세 형제분께서 함께 <지명>송명산(松明山)지명>으로 갔다. 이 형(李兄) 또한 따라갔다. 식후에 두 아우와 함께 <지명>대평(大坪)지명>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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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8월 27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중현(仲賢)이 또 어제 만나지 못한 곳으로 나갔다. 대저 근래 여러 유생들이 모두 조바심이 생겨 모두 본손이 직접 심처(深處)에 가보기를 원했다. 소유(疏儒) 모모가 일제히 <지명>남촌(南村)지명>으로 나가 조속히 결정하자는 계획으로 약속했다. 나는 나이가 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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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9일
| 高宗 1
| 甲子
| 소나기가 내리다가 그치다.
정랑(正郞) <인명>이석주(李錫宙)인명>가 보러왔다. 대개 태학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인데, 입직(入直)하고 비로소 나온 것이다. 교리(校理) <인명>이만기(李晩耆)인명>가 찾아왔다. 일전에 새로 제수되는 은혜를 입었는데, 서로 얼굴을 대하니 더욱 축하할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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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8일
| 高宗 1
| 甲子
| 맑다가 비가 내리다가 하다.
각각 집에 편지를 써서 인마를 돌려보냈는데, 물길과 진흙길이어서 염려되기가 적지 않았다. 밥을 먹은 뒤에 진사(進士) <인명>김제원(金濟源)인명>, 진사(進士) <인명>안행준(安行準)인명>, 정언(正言) <인명>이기동(李基東)인명>, 대아(大雅) <인명>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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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5월 15일
| 高宗 1
| 甲子
도회(道會) 때에 모인 향도(鄕道)의 유생들이 백여 명이었다. 다음날 강무당(講武堂)에서 개좌하여 공사원으로 유학(幼學) <인명>권연하(權璉夏)인명>, <인명>김수익(金壽翼)인명>을, 조사(曹司)로 <인명>최명곤(崔命坤)인명>, <인명>김태림(金泰林)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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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10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지명>도곡(陶谷)지명> 이 우(李友)가 찾아왔다. 아버지께서 돌아오셔서 흥양(興陽) 숙부의 환후가 안정되었다고 하시니 기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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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18일
| 純祖 1
| 辛酉
어제 저녁 <지명>동성(東成)지명>으로 보낸 사람이 돌아왔는데, 약 가운데 두 재료가 떨어져서 사 오지 못했으니 고민된다. <지명>천전(川前)지명> 김 우(金友)가 보러 와서 주렴(珠簾)을 빌려갔다. 약재를 볶고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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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26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출발하여 돌아왔다. 지나는 길에 류 동지(柳同知)의 빈소에 조문했다. 길에서 사나운 말이 날뛰어 이르는 것을 보았는데, 어린 종이 이 때문에 고삐를 놓치자 황급히 말에서 내려 뒤 쫒았으나 두 말이 서로 뒤얽혀버리는 바람에 거의 행장(行裝)을 잃어버릴 뻔했으니 우습고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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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4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고조 위(高祖位) 묘사를 지냈는데, 호상(湖上) 형 부자가 와서 묘사에 참여하였다. <지명>대산(大山)지명>에 모인 자들이 60여인이라고 말을 하였다. 도헌 위(陶軒位) 묘사와 진사 위(進士位) 묘사에 참석하였다. 음복을 마쳤다. 상좌(上座)의 명령으로 산의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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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8월 6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과거에 관한 소요가 조금 안정되었다. 조정에서도 일이 적어져 상소에 관한 일을 처리하지 않을 수 없지만 우선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소수(疏首) 이하 도청(都廳)에서 모였다. 지난번에 김 도청(金都廳)이 관재(館齋)에 들어오자 진사(進士) <인명>이제병(李濟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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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10월 5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바람과 추위가 갈수록 심해져 몸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으니,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천리의 노정을 어찌 잘 도달할 수 있겠는가? 시름겹고 고민된다. 내일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 때문에 저녁때 종형에게 들어가 보고 과장에 함께 가기로 하고 되돌아 왔다. 내일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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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8월 30일
| 高宗 1
| 甲子
| 맑다.
<인명>중현(仲賢)인명>, <인명>사첨(士瞻)인명>, <인명>원진(元振)인명> 등 여러 형과 함께 명륜당에 들어갔다. 뜰 가운데 한 구석에서 홍문제학(弘文提學) <인명>홍종서(洪鍾瑞)인명>가 시제를 받들고 들어와 판에 걸었는데, 그 제목은 곧 ‘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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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29일
| 高宗 1
| 甲子
일찍 일어나 과장(科場)에 들어갔다. 접중(接中)은 사뭇 넓고 가까워 앉아서도 시제(試題)가 걸린 것이 보이니 또한 염려될 것이 없었지만, 인근 접중 사람들의 침해를 당해서 젊은이들이 바야흐로 언쟁을 일삼고 있었다. 아직 시지(試紙)를 펴고 벼루를 여는 데에 이르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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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5월 30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오다.
오후에 날씨가 개기를 기다려 출발했다. <지명>계란치(鷄卵峙)지명>를 지나 또 비를 만나 비옷을 입고 가다가 덕곡점(德谷店)에서 투숙했으나 좁아 들어갈 수 없어 젊은이들은 더 가서 서창(西倉)에서 묵었다. 이날 70~80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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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2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내리고 밤에 또 비가 내리다.
일찍 출발했다. 몇 리도 가지 못해 또 비를 만나 유의(油衣, 비옷)를 입고 갔다. 길에서 <인명>허순(許順)인명>을 만났는데, 그는 <지명>한양지명>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서서 이야기 나누며 대략 반촌(泮村)의 여론을 들었지만 비오는 가운데 세세히 물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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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4월 15일
| 高宗 1
| 甲子
본원(本院)이 다시 설립된 이후로 소(疏)를 올려 청액(請額)하는 일은 하루라도 늦추거나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인데, 다만 설립을 경영하던 끝에 물력(物力)이 비용을 대는 일보다 어려웠기 때문에 사체(事體)가 몹시 신중하여 이제 5, 6년이 되도록 겨우 삐걱삐걱 상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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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6월 1일
| 高宗 1
| 甲子
| 비가 여전히 그치지 않다.
비가 여전히 그치지 않았지만 머무르며 지체할 수 없어 일찍 출발하여 <지명>서창(西倉)지명>에서 모였다. 임하 도청(臨河都廳)은 말이 병들어 가지 못해 뒤에 머물면서 치료하려 했다. 길 떠나는 형편상 그와 함께 머물 수 없는 점이 많아 출발에 임하여 서글픈 회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