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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6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저물녘에 아버지 세 형제가 말을 타고 함께 돌아왔고, 이 형(李兄) 또한 돌아왔으니 매우 기뻤다. 그러나 아버지가 또 묵은 병이 더해졌으니 근심스러웠다. 밤에 이 형과 나란히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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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8월 15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천전 숙(川前叔)과 운곡 형(雲谷兄) 및 사촌 <인명>준(晙)인명>과 <인명>근(近)인명>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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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8월 23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식후에 떠났다. 소를 타고 <지명>동곽(東郭)지명>에 이르니, 소와 말이 또 집에서부터 이르렀다. 오후에 길을 떠나 어스름할 때 집에 당도하니 아버지의 건강은 우선 편안했으나 아내의 병이 심해지니, 고민스러울만하다. 밤에 발을 고정시켜 편안하게 자니 기쁠만하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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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1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새벽에 일어나 맏누이의 행차를 준비해주었다. 아버지가 데리고 가서 <지명>동성(東成)지명>에 이르렀다가 곧 <지명>천성(川成)지명>으로 향했다. 심부름꾼을 <지명>소호(蘇湖)지명>와 <지명>신곡(新谷)지명>으로 보냈다. 낮에 밭 나락 수확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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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9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평명(平明)에 차례를 지냈다. 식후에 <지명>편구(鞭衢, 챗거리)지명>로 가서 <인명>귀손(貴孫)인명>의 타작을 지켜보았다. <지명>단구(丹丘)지명> 수령이 갑자기 이곳을 지나갔다고 들었는데, 흥양(興陽) 숙부의 병 소식은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잉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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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17일
| 純祖 1
| 辛酉
어제 <지명>미곡(眉谷)지명>의 혼례 심부름꾼이 앞집에 왔다. <지명>신당(新塘)지명> 김 어른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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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25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아침에 인마가 비로소 돌아왔다. 식후에 <지명>사촌(沙村)지명>으로 향했다. <지명>택령(澤嶺)지명>을 걸어서 넘어 누이의 집에 이르렀는데, 매형은 <지명>안동부지명>의 도회(都會)에 갔고, <지명>영천(永川)지명> 이 우(李友)가 와 있었다. 주인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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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3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내일은 <지명>임당(林塘)지명>에서 회전(會奠)하는 날이지만 우리 집은 또한 <지명>나곡(羅谷)지명> 묘사를 지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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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8월 2일
| 高宗 1
| 甲子
| 큰 비가 종일 내리다.
<인명>공백(公伯)인명>이 풍산사관(豊山舍館)을 찾아보았는데, 그 접인(接人)이 말하기를, 병산서원에 관한 일은 장차 수일 내에 판가름이 나서 성사될 기미가 있다고 하였다. 양지(陽智) 족인(族人) 남 수(南叟)가 어제 <지명>남촌(南村)지명>의 어떤 사람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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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8월 17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오전에 중부(仲父) 부자 및 포상 형(浦上兄)이 이르렀다. 인마를 김(金) 서리에게 보내어 김 서리가 다시 도착했으니, 중간에 서로 만나서 왔기 때문이다. 유곡 형(酉谷兄)도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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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8월 25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지명>대평(大坪)지명>에 갔다. 가는 길에 백종숙(伯從叔)을 만났다. 배알한 후에 곧바로 <지명>대평지명>으로 가서 여러 집에 인사를 드렸다. <지명>영덕(盈德)지명>의 예방(禮房) 아전이 지나갔다고 한다. 수곡 류씨[水柳]가 퀭하니 한 명도 방에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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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3일
| 純祖 1
| 辛酉
| 흐리다.
듣기에 <지명>임당(林塘)지명> 여종이 산후에 풍을 맞아 발열 증세가 매우 가볍지 않다고 하니 고민될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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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11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아버지께서 서당으로 가셨는데, 모레 향사 때문에 입재(入齋)하신 것이다. 중부(仲父)는 아우와 함께 입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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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19일
| 純祖 1
| 辛酉
| 비가 내리다.
아버지께서 선왕의 탄신 곡반(哭班)에 달려가셨다. 대개 탄신일은 22일에 있는데, <지명>동성(東成)지명>의 신행(新行)이 내일 출발하여 이곳에 말을 빌려주었기에 오늘 비를 무릅쓰기를 면치 못하고 가셨으니 매우 고민되고 염려됨을 이길 수 없다. 권 우(權友)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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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9월 27일
| 純祖 1
| 辛酉
| 비가 내리다.
어린 종이 <지명>천전(川前)지명>에서 묵고 아침에 비로소 왔다. 앞집의 혼례 심부름꾼이 도착하여 연길(涓吉)은 11월 7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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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5일
| 純祖 1
| 辛酉
하의(賀儀)를 써서 <지명>대평(大坪)지명>에 갈 인편을 찾아 <지명>호상(湖上)지명>에 부쳤다. <지명>대평지명> 하인이 며칠 뒤에 출발해서 떠난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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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7월 28일
| 高宗 1
| 甲子
저녁에 <인명>응춘(應春)인명>과 <인명>자장(子長)인명> 무리가 시험장에 여러 가지 도구들을 준비했다. 일찍 밥을 먹고 들어갔는데, 문 밖의 철군(哲君)은 병으로 아직 힘을 쓰지 못하니 걱정할만하다. 밤이 깊어 문이 열리지 않아 젊은이들이 위험을 범할까 염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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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9일
| 純祖 2
| 壬戌
| 맑다.
<지명>대평(大坪)지명>에 갔는데 생가 증조고(曾祖考)의 기일이 내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사당을 배알하고 돌아왔다. <인명>성백(誠伯)인명>이 하향(下鄕)에서 금방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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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8월 11일
| 純祖 1
| 辛酉
| 이슬비가 내리다가 늦어서 개다.
오후에 <인명>회칙(晦則)인명>과 함께 과거 길을 떠났다. <인명>회칙인명>은 <지명>청각(淸閣)지명>에서 묵었고, 나는 <지명>교동(校洞)지명>으로 향해서 서리 <인명>김백창(金百昌)인명>을 찾아보았는데, 이 형(李兄)이 지휘한 사수(寫手)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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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8월 19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중부(仲父)의 환후가 어제와 같아 문내(門內) 및 오랜 벗들이 번갈아 와서 진찰했으나 증세가 오히려 심해지니 근심될만하다. 과장(科場)에 들어가 성인(成人)과 더불어 횡단(橫端)에 있었는데, 구막(搆幕)을 반으로 나누었다. 중부가 또 조섭을 잘못하여 야간에 더욱 심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