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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1월 4일
| 純祖 2
| 壬戌
| 맑다.
계부주(季父主), 교동 형주(校洞兄主)가 왕림하였고 고씨(姑氏)와 종고(從姑)도 비로소 왔다. 종숙주(從叔主) 또한 와서 묵었다. <지명>미동(美洞)지명>의 추삭(追削)된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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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1월 12일
| 純祖 2
| 壬戌
| 맑다.
계명(鷄鳴)에 제사를 지내고 음복하였다. <인명>성백(誠伯)인명>이 <지명>평성(坪成)지명>에 가기에 <지명>호상(湖上)지명>의 편지를 부쳤다. 돌아가는 심부름꾼에게 <지명>산양(山陽)지명>의 답장을 보냈다. 오늘은 또한 우곡 형주(雨谷兄主)의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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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1월 20일
| 純祖 2
| 壬戌
| 맑다.
시장의 인편을 통해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다. 무이 종수(武夷從嫂)가 어제 돌아왔다. <지명>호상(湖上)지명>의 내행이 27일 오기로 정했다고 한다. 동성 형(東成兄) 또한 이미 돌아가서 만나지 못하니 슬펐다. <인명>달몽(達蒙)인명>의 어머니가 어젯밤에 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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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1월 28일
| 純祖 2
| 壬戌
| 맑다.
밝은 아침에 내간(內間)에서 예물을 받았는데 매우 바람에 맞았다고 한다. 가문 내에 가까운 친척과 내외(內外)가 많이 모여 예를 보았다. 오후에 신랑이 왔는데 그 아버지가 데리고 왔다. 이어서 혼례를 행했다. 신랑이 매우 단정하니 사랑스럽다. <지명>망천동(輞川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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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7일
| 純祖 2
| 壬戌
계명(鷄鳴)에 제사를 지냈다. 중부(仲父)가 <지명>신천(新川)지명>의 행차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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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15일
| 純祖 2
| 壬戌
| 개다.
백동 형주(白洞兄主) 숙질(叔侄)이 돌아갔다. 낮에 나 또한 절에 올라갔는데 아우들이 모두 잘 공부하고 있으니 위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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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2월 22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어제 쾌주(快珠)가 돌아왔다. 예서(禮書) 베껴 쓰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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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2월 30일
| 純祖 1
| 辛酉
| 춥다.
병이 나아지니 기쁘다. 저물녘에 사당을 배알하였다. 추위가 심하고 병이 완전히 나아지지 않아 <지명>대평(大坪)지명>으로 가서 안부를 묻지 못하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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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1월 8일
| 純祖 2
| 壬戌
| 맑다.
계부주(季父主)가 돌아서 <지명>슬곡(瑟谷)지명>으로 갔다. 아버지의 명으로 삼종형제(三從兄弟)가 왔다. 점찍어둔 절에 가서 아래 마루방에 묵었다. 밤에 추위가 심하고 또 외풍이 있어서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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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1월 16일
| 純祖 2
| 壬戌
| 맑다.
<지명>임하(臨河)지명> 권씨(權氏) 노인과 젊은이 5,6명이 와서 묵었다. 밤에 음식을 짓고 잠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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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1월 24일
| 純祖 2
| 壬戌
| 아침에 안개 끼다.
모래 제사와 혼사 때문에 우선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지명>대평(大坪)지명>에 가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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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3일
| 純祖 2
| 壬戌
| 맑다.
<지명>교동(校洞)지명> 이 질(李侄)이 함께 공부하려고 왔는데 <지명>서울지명>에서 얻은 편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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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11일
| 純祖 2
| 壬戌
| 바람 불다.
소종(小從)의 아픈 귀에 처음으로 종기가 터졌다 하니 다행스럽다. <지명>해평(海平)지명>에서 보낸 사서삼경이 왔는데 아우에게 모두 풀게 하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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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8월 13일
| 純祖 1
| 辛酉
| 흐리다.
새벽에 인마를 돌려보냈다. 나의 객관은 쾌빈루(快賓樓) 뒤 10보쯤의 서리 장(張)의 집인데, 주인이 매우 불량했다. 주인과 손님 사이에 일이 있어 잠시 풍랑이 일어나니, 속상했다. 젊은 주인이 오히려 나으니, 위로될만하다. 또 과거를 보려는 선비들이 거리에 가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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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8월 21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금곡(金谷) 아우를 <지명>금곡지명>에 보내어 가마와 말을 빌리고자 했다. 중부(仲父)께서 내일 돌아가야 하는데, 말 타고 가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과장(科場)에 들어가 시문(柴門) 안에 접(接)을 정하였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 편안함을 구하니,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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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8월 29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지명>우안(愚安)지명>의 종이 말을 끌고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호상 형(湖上兄)이 <지명>함창(咸昌)지명>에서 돌아올 때 <지명>우안지명>의 인마를 빌려왔기 때문이다. 말은 놔두고, 종 <인명>해(奚)인명>는 즉시 돌려보냈다. <지명>소호(蘇湖)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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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2월 10일
| 純祖 2
| 壬戌
| 맑다.
새벽에 제사를 지냈다. 이어서 <지명>도곡(道谷)지명>의 원상(冤祥)에 가서 곡하고 제문을 올렸는데 <인명>양문(樣文)인명>이 대신 전을 올렸다. 전염병 때문에 길을 피해 갔다. 암정 종형(巖亭從兄)이 없어서 다만 시렁 위에 제자서(諸子書)를 뽑아 읽었다.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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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8월 12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인명>회칙(晦則)인명>이 아침 먹기 전에 내려왔다. <인명>백창[百昌, 김백창]인명>이 또 보러 왔기에, 그에게 글 몇 줄을 쓰게 했는데, 사수로 쓸 만하여 기뻐할만하다. 그와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곧 떠나 <지명>우안(愚安)지명>에 이르렀다. 아이의 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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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8월 20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새벽에 중부(仲父)께서 일어나 앉으셔서 과장(科場)에 들어가길 권하여 부득이 무리를 따라 들어갔으나 마음이 매우 불안하다. <인명>팽석(彭錫)인명>과 <인명>차준(次俊)인명>은 곁에서 병세를 보았다. 조금 뒤에 제목을 전면에 매달았는데, 시제(詩題)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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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8월 28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지명>산양(山陽)지명>의 심부름꾼이 돌아갔고, <지명>미곡(美谷)지명>의 고모도 시댁으로 돌아갔다. 아우가 『맹자』를 시작했다. 어제 밤에 아내의 병이 다급해지니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