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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6월 5일
| 正祖 22
| 戊午
| 비가 내리다.
두암(斗岩) 숙부께서 병에 걸려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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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6월 9일
| 正祖 22
| 戊午
| 흐리다.
이래로 부중(府中)에 적환(賊患)이 괴상했다. 십여 명이 무리를 지어 칼과 몽둥이를 들었다고 하니 매우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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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9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동성(東成) 고모를 <지명>송하(松下)지명>에서 기다렸다. 상인을 만나서 칼 한 자루를 사서 돌아왔는데, 이미 묘동(妙洞) 형이 판여(板輿)를 모시고 이르렀으니 기뻤다. 저물녘에 춘양(春陽) 숙 <인명>이경담(李慶聃)인명>이 <지명>소호(蘇湖)지명>에서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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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29일
| 正祖 22
| 戊午
| 흐리다.
아침에 들으니 성내의 물이 거의 다 내려갔다고 했다. 백성에게 안정될 조짐이 있으니 위로가 될 만했다. 노(奴)의 병이 어제부터 조금 줄어드니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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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6월 8일
| 正祖 22
| 戊午
| 흐리다.
오늘은 초복이다. 개를 삶고 반탕(槃湯)을 함께 했다. <지명>고산(高山)지명>에서 평안하다는 편지를 받아 위로될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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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8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계부(季父)가 돌아가는데 날씨가 매우 흐리고 차니, 노인의 길 떠나는 일이 삼가 염려되었다. <지명>호상(湖上)지명>의 편지를 받았는데, <인명>신가(愼可)인명>의 문희연(聞喜宴)이 이번 달 12일에 있다고 하였다. <지명>청송(靑松)지명> 거촌(巨村) 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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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16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지명>상박곡(上朴谷)지명>에 가서 수확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옛날 살 던 곳의 벼랑 아래에 올랐다. 오래된 우물과 연못이 퇴폐하여 논이 된 모습을 살펴보니 사람으로 하여금 옛날 생각이 나게 하였다. <인명>점업(占業)인명>과 한가로이 앉아 옛날이야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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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24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인명>후여(厚汝)인명>의 병이 밤에 땀을 흘려 조금 나았으니 기쁠 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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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1월 2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집의 편지를 받고 가족들이 잘 지낸다는 것을 알았으니, 위로되고 기뻤다. 양식과 반찬이 왔다. 밤에 떠돌이 상인 세 사람이 와서 묵었다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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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1월 10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권 수재(權秀才)가 행장을 꾸려 용담사(龍潭寺)로 떠났다. <인명>봉돌(奉乭)인명>이 와서 앞집 신랑이 퇴상을 했고 권 수재가 선사(仙寺)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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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1월 18일
| 純祖 1
| 辛酉
| 눈이 내리다.
내일은 바로 귀현(龜峴) 계외조비(繼外祖妃)의 기제사이기에 편지를 써서 제수를 보냈다. <지명>귀현지명>에 보낸 하인이 돌아왔는데, 내형이 <지명>단구(丹丘)지명>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할 뿐이었다. 임천(臨川) 형님이 와서 묵었다. 삼현(三賢)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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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26일
| 正祖 22
| 戊午
| 가랑비가 잠시 내리다가 잠시 그치다가 하다.
아버지를 모시고 함경도 감영으로 행차를 떠났다. 말을 타고 남천교를 건너 쾌활함을 느꼈으니 관아 가운데 갇혔을 때의 그 적적함을 상상할 만하다. 30리를 가서 <지명>원산진(原山津)지명>에 이르니 <지명>진촌(津村)지명>은 천 여 호(戶)인데, 바닷물이 들어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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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27일
| 正祖 22
| 戊午
어젯밤 비로 <지명>남대천(南大川)지명>의 물이 서문 안으로 들어와 농사일이 탄식할 만 하다고 한다. 노(奴)의 병이 여전히 차조가 없으니 어찌하리오. 종일 많은 비가 삼마처럼 쏟아 부었다. 낮쯤에 잠시 갰다. 아버지를 모시고 표표연정(飄飄然亭)에 올라 남천(南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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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6월 4일
| 正祖 22
| 戊午
| 흐리다.
아버지가 고산창(高山倉)으로 행차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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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12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아버지의 산증(疝症)이 재발한 듯하였다. 어제 밤에 뽕나무 잿물을 사용해보았는데, 아침이 오자 효과가 있는 듯 했지만 독 기운이 너무 지나쳐서 오래 시약할 수 없어서 고민스러웠다. 득 노(得奴)가 돌아왔다. 도문(到門)을 무사히 지냈다는 것을 알았다. 대평(大坪) 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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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20일
| 純祖 1
| 辛酉
| 바람이 불다.
<지명>화당(花塘)지명>에 갔다. 종조 조모(從祖祖母)의 묘사에 참여하였다. 삼현(三峴) 동성(東成) 형이 <지명>마령(馬嶺)지명> 석역소(石役所)에서 찾아왔다가 곧 돌아갔다. 중부(仲父)가 <지명>종릉(鍾陵)지명>에 있으면서 보낸 편지를 받았는데,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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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0월 28일
| 純祖 1
| 辛酉
| 맑다.
<인명>후여(厚汝)인명>가 와서 집 편지를 받았다. 중자(仲慈)께서 또 한 번 진탕을 겪었으니, 매우 절실히 근심스럽고 염려된다. 어린 종이 돌아가기에 집에 편지를 부쳤다. 방사(房舍)가 매우 요란하고 또한 더웠다. <지명>선암(仙菴)지명>으로 옮겨 머물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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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2월 27일
| 正祖 21
| 丁巳
새벽에 제사를 행하고 이어서 <지명>대평(大坪)지명>으로 가니, 아침에 전(奠) 드리는 제사가 또한 시작되고 있었다. 곡하고 물러나니 금일 그리운 마음이 평소보다 배나 되었다. 밥을 먹고 대인(大人)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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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5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오늘은 5월 단오이다. 이곳의 풍속은 비록 양반이라도 모두 이 날 성묘를 지낸다. 이 때문에 유향소에서부터 사령, 기생 무리들까지 모두 휴가를 받아 떠났다. 대문에는 다만 사령 2명, 관청을 지키는 통인 2명이 있었고 책방에는 통인이 없었다. 관서가 쓸쓸하여 숙직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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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20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아침에 아버지께서 모지창(毛只倉)으로 가셨다. 내일은 나라의 망극한 날이니 신민의 아픔이 얼마나 심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