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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26일
| 正祖 22
| 戊午
막내숙부를 모시고 책실 여러 사람과 함께 석왕사(釋王寺) 길을 떠났다. 도호부 서루(西樓)를 나와 남대천(南大川) 판교(板橋)를 지났는데, 다리가 가로 뻗혀진 것이 수백 보 가량 되었으며, 완전하고 훌륭한 것이 <지명>화산(花山)지명>의 호교(湖橋)와는 비할 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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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2일
| 正祖 22
| 戊午
백옹(伯雍)씨 숙부와 두암 숙부(斗岩叔主) 및 권 상사 숙부(權上舍叔)와 <지명>원산(原山)지명>을 유람하였다. 저물녘에 비를 무릅쓰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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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27일
| 正祖 22
| 戊午
<지명>사촌(沙村)지명>의 누이가 유종을 앓고 있다고 하니, 매우 걱정이다. 처음에는 이날 <지명>사촌지명>을 경유하여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으나, 아침에 일어나니 갑자기 감기 기운이 있어 바람 쐬기 어려워 며칠 머무르며 조리했다. 집안일을 생각하면 근심스럽고 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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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25일
| 正祖 22
| 戊午
아버지께서 <지명>원산(原山)지명> 교제창(交濟倉)에 분급(分給)하는 행차를 떠나셨다. 경양각(傾陽閣)에 나가 위로 올라가 수령이 행차하는 위엄을 보니 소나무의 고상함과 비교해도 퍽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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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2월 28일
| 正祖 21
| 丁巳
또 <지명>대평(大坪)지명>으로 가서 부사(祔祀)에 참석하여 사신(辭神)하고 사당에 새 신주를 들였다. 물러나 옛 빈전에서 서로 애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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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1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식사를 한 후에 가군(家君, 아버지)께서 향설헌(香雪軒)에서 담당 업무를 보셨다. 백일장을 설치하여 시권을 거두었는데 의의(疑義)는 합 80여장이고 고풍(古風)은 100여장이었다. 종장(終場)으로써 백일장을 연 것은 읍의 예(例)를 따른 것이었다. 18 사람을 선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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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1일
| 正祖 22
| 戊午
새벽에 아버지가 머리 빗고 세수를 하고 객사로 들어갔다. 평명(平明)에 나 또한 보러 갔는데 횃불과 촛불이 밝게 빛났다. 감사(監司)가 나오고 전패 아래에서 반열(班列) 하였다. 각 읍 수령과 중군(中軍), 도사(都事), 호장(戶長) 또한 말석에서 서로 읍하였다.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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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18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둘째숙부가 고향 길을 떠났다. 막내숙부와 두암(斗岩) 숙부가 <지명>국도(國島)지명>에서 추송하였다. 먼 곳에서 손잡고 헤어지니, 회포를 견디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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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6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아침에 또 바람이 부니 근심스럽다. 30리를 갔다. 낮에 <지명>흥부진(興夫津)지명>에서 말을 먹였다. 오후에 바람이 조금 불다 그쳤다. <지명>화비령(火飛嶺)지명>과 <지명>갈현령(葛峴嶺)지명>을 넘었다. 그 위에는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거문고를 퉁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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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23일
| 正祖 22
| 戊午
| 아침에 비가 내리고 곧바로 개다.
아버지께서 막 감영 행차를 하기 때문에 오늘부터 행장을 꾸렸다. 안동(安東) 신성포(申城浦) 척형(戚兄) <인명>김성국(金聲國)인명>씨(氏)가 <지명>한양지명>에서부터 방문을 하였다. 대개 선세(先世)의 일로 문적(文蹟)을 가지고 왔다. 하늘가에서 서로 만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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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2월 8일
| 正祖 21
| 丁巳
천상(川上) 김 종매(金從妹)의 혼례에 갔다. 신랑은 호상(湖上) <인명>이경(李儆)인명>씨의 아들이었다. 사람됨이 매우 명민하고 사랑스러웠다. 김 매(金妹) 영리한 딸이 장성하여 이날 남편을 맞이하니 슬프고도 위로가 되었다. 이날 저녁 서숙(庶叔)의 심부름꾼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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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4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아침 전에 40리를 가서 <지명>덕원(德原)지명>에 도착하니 수령이 나와서 만났다. 점심을 먹은 후에 <지명>덕원지명>을 지나갔다. 넓은 물결을 바라보니 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무려 수십 개가 솟아 있었다. 큰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100여 호에 가까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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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2월 26일
| 正祖 21
| 丁巳
| 맑다.
백종모(伯從母)의 대상(大祥)이 내일 있어 아침에 <지명>대평(大坪)지명>으로 건너가려 했다. 문득 경저(京邸)의 하인이 <지명>안변(安邊)지명> 저인(邸人)의 고목(告目)을 가지고 와있었다. 이번 달 20일 밤에 도목정사가 있었는데 대인(大人)이 안변 부사(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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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30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오늘은 또 <지명>눌촌(訥村)지명> 고모의 상일(祥日)이니, 원통하다. 두 객이 <지명>경성(京城)지명>으로부터 와서 들어가 만나보니, 한 사람은 <지명>의성(義城)지명> 첨사(僉使) <인명>김방(金坊)인명>의 아들이고, 한 사람은 <지명>고성(固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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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27일
| 正祖 22
| 戊午
| 아침에 일어나니 가랑비가 내리다.
늦게 식사를 한 후에 길을 떠나 40리를 가서 <지명>문천군(文川郡)지명>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각 읍 10리마다 지로(指路), 나장(羅將) 한 쌍을 내어 출참하게 하고 지공(支供) 또한 읍참(邑站)과 같았다고 하였다. 향소(鄕所)로 들어가 문안을 하니 모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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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28일
| 正祖 22
| 戊午
| 어젯밤에 또 새벽까지 비가 많이 내리다.
아침에 들으니 온 부의 부엌이 물에 잠겨 백성들이 아침밥을 지을 수 없다고 했다. 온 부에 연기가 없으니 참혹한 현상이 처참했다. 저녁 무렵 잠시 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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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6월 10일
| 正祖 22
| 戊午
| 바람이 불다.
아버지께서 <지명>고산(高山)지명>에 돌아오셨는데, 중도에 빗물을 만나 천신만고하였고 또 객관에서 이가 들끓어 7일이나 잠을 자지 못해 심신이 크게 탈이나 매우 걱정되었다. 또 들어오자마자 공사(公事)가 적체되어 뜰과 당에 가득하니 괴로울 만 했다. 선산의 김 선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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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28일
| 正祖 22
| 戊午
아침에 아버지께 편지를 써서 <지명>원산(元山)지명>에 부쳤다. 오늘은 바로 증조할아버지의 기일이다. 부자형제가 모두 먼 곳에 흩어져 있으니,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몇 곱절 간절하다. 밤에 군기비장(軍器裨將)에게 청하여 <지명>안변(安邊)지명>의 두 무선달(武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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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2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강원 도사(江原都事)는 <지명>함흥(咸興)지명> 사람으로 성묘하는 일로 어제 <지명>정평(定平)지명>에 들어왔다가 오늘 <지명>함흥지명>으로 돌아갔다. 밥을 먹은 후에 수령과 함께 40리를 가서 <지명>초원(草原)지명>에 도착하였다. 아버지께서 바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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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17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덕원 부사(德原府使)가 추관(推官)으로써 왔다. 본관(本官)과 함께 관대를 갖춰 좌기 하였다. 죄인 2명이 올라왔는데 사람을 죽인 죄인이었다. 착가(着枷)와 항쇄(項鎖)를 하고 들어오는 형상이 히죽히죽 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 진실로 살인을 한 놈이었다. 형추(刑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