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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1월 24일
| 正祖 21
| 丁巳
<지명>노애(蘆厓)지명>의 토실로 들어가 공부를 하려 했다. 두 아우 모두 처가에 머물렀다. 나 혼자 고지식하게 근심에 쌓여 있었다. 대인(大人)께서 걱정하며 남은 식량을 정처(靜處)에 두게 하고, 책을 주시면서, "너를 보낸 것은 정말로 독서하게 함이 아니라,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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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11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아침에 일어나 박 군(朴君)에게 진맥을 하게 하였는데, 병은 없지만 양이 강하고 음이 허하다고 말했다. 환약을 지어오게 했다. 이날 박 군이 돌아갔다. <지명>사촌(沙村)지명>에 편지를 부쳤다. 아우가 어제 밤부터 감기를 앓으면서 매우 괴로워했다. 하촌(河村) 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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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11일
| 正祖 22
| 戊午
| 바람이 불다.
새벽에 출발하여 40리를 갔다. <지명>금진(琴津)지명>에 도착하였는데, 큰 배가 닻줄에 묶여 있었다. 들어가 그것을 감상하였다. 이는 <지명>원산(元山)지명> 사람이었다. 편지 부치는 것을 잊고 그로 하여금 <지명>안변(安邊)지명>에 들어가 전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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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1월 8일
| 正祖 21
| 丁巳
<지명>대평(大坪)지명>으로 갔다. 종당숙(仲堂叔)의 기제사가 내일이라 통곡하고 통곡했다. 저녁에 제문을 지어 치제(致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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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1월 21일
| 正祖 21
| 丁巳
| 맑다.
<지명>수상(水上)지명>에 돌림병이 크게 일었다. 이날 <지명>해저(海底)지명> 내행(內行)을 보냈다. 큰길에 연달아 돌림병이 있어 질병을 피하고자 구불구불 길을 많이 우회했다. 아우가 길 가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 대인(大人)께서 나로 하여금 데리고 가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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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10일
| 正祖 22
| 戊午
| 새벽에 일어나 보니 큰 비가 쏟아지듯 내리다.
제사에 참여하고 그대로 머물렀다. 이날 박 지관(朴地官) 및 여러 어르신들과 함께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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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27일
| 正祖 22
| 戊午
| 바람이 조금 불다.
아우와 <지명>수곡(水谷)지명>에 가서 종가 형을 치하하고, 이어서 <지명>대평(大平)지명>에 들어갔다. 원당(元塘) 형의 어린 딸이 또 천연두로 죽었다. <인명>술조(述祖)인명>가 큰집으로 내려왔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갔다. 김 숙부와 형 모두 외사(外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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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1월 4일
| 正祖 21
| 丁巳
| 맑다.
종형과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 모두 평안했다. 동지 차례는 촌의 역병으로 행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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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17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박 생원(朴生員)이라는 자가 단산(丹山) 어른의 편지를 가지고 방문했다. 또 춘양(春陽) 이 진사(李進士)라는 자가 <지명>통천(通川)지명>으로부터 와서 진사 숙부가 나타났다는 말을 전하였다. 맹랑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이니, 세상 일이 개탄할 만하다. 밤에 고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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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12일
| 正祖 22
| 戊午
| 흐리다.
단골 아전 <인명>김우석(金禹錫)인명>이 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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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2일
| 正祖 22
| 戊午
<지명>소호(蘇湖)지명>의 인마가 돌아왔다. 저녁 무렵 영곡 숙(永谷叔)과 함께 모두 <지명>대평(大平)지명>으로 갔다. 길에서 <지명>해저(海底)지명> 좌랑 척숙(佐郞戚叔)에게 인사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는데, 종조모의 담사(禫事)가 내일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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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4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어머님을 모시고 <지명>대평(大平)지명>으로 갔다. 어머니는 오래 <지명>대평지명>에 가시지 않았고, 백종조모(伯從祖母)의 종상(終祥)이 막 지났으며 또 새해를 맞았지 때문에 일찍 먹고 인교(人橋)를 타고 넘어 갔다. <인명>성백(誠伯)인명>이 새벽에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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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5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아침에 묘우에 배알했다. <지명>해저(海底)지명> 하인이 돌아갔다. 밤에 방에서 문득 감기에 걸려 콧물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천전(川前) 숙부가 와서 묵었다. 밤에 평성(坪成) 조카에게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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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10일
| 正祖 22
| 戊午
| 새벽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다.
식후에 30리를 갔다. 낮에 <지명>청간(淸澗)지명>에서 말을 먹였다. 종일 비를 무릅쓰니 괴로웠다. <지명>청간정(淸澗亭)지명>을 올랐다. 이는 바닷가에 집을 세운 것뿐이었다. 해상의 가옥은 어느 것이 이 경치만 못하겠는가? 청간의 이름은 더욱 괴상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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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0월 27일
| 正祖 21
| 丁巳
<지명>해저(海底)지명> 신행을 잘 행했고 새사람도 바라던 바에 맞았으니 가문의 행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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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1월 23일
| 正祖 21
| 丁巳
| 눈이 조금 내리다.
<인명>후여(厚汝)인명>가 처가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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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22일
| 正祖 22
| 戊午
<지명>일직현(一直縣)지명>으로 향했다. <지명>평성(坪成)지명>에서 돌아오는 널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정오에 노림서원(魯林書院)에 이르러 호상 형(湖上兄)을 만나서 <지명>평성(坪成)지명>의 가까운 이웃에 천연두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신생아로써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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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23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주인이 심하게 붙잡아 부득이 인마를 돌려보내고 며칠 머물 생각이다. 이 참봉(李參奉)과 여러 어른을 찾아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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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22일
| 正祖 22
| 戊午
| 단비가 내리다가 막 개다.
막내숙부를 모시고 책실(冊室) 여러 사람과 함께 표표연정(飄飄然亭)에서 노닐었다. 남쪽을 바라보니 시야가 탁 트였고, 띠를 이룬 맑은 강과 백 척의 무지개가 모두 경치가 좋았지만 배가 부서져서 유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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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1월 3일
| 正祖 21
| 丁巳
| 바람 기세가 조금 안정되다.
작은 어머니와 작별하고 종형과 함께 돌아갈 길을 생각했다. 노둔한 한 말을 타고 게으른 노비를 채찍질하여 30리를 갔다. 해가 떨어지자 <지명>동곽(東郭)지명>에 멈춰 묵었다. 원강(原江) 정 진사(丁進士), 호평(虎坪) <인명>순수(舜叟)인명>씨, <인명>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