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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9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사촌 후(厚)가 『고문진보』에 나오는 당나라의 ‘중답장적서(重答張籍書)’를 받았다. <인명>원도[原道, 안휴]인명>는 이미 백번 읽었다고 한다. 식사 후에 <지명>운촌(芸村)지명>으로 사람을 보냈는데, 책상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지명>운촌지명>으로 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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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5일
| 正祖 22
| 戊午
아침에 일어나 보니 쌓인 눈이 녹아 내렸다. 아버지의 짐을 싸니 고민과 탄식을 금할 길 없었고 또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 걱정스러웠다. <인명>억령(億齡)인명>과 연일 안방에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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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7일
| 正祖 22
| 戊午
계명(鷄鳴)에 제사를 치르니 그리운 마음을 이길 수 없다. 식후에 천전(川前) 숙부를 모시고 <지명>대평(大坪)지명>으로 갔다. <지명>평성(坪城)지명>으로 가는 인편이 이미 출발하여 편지를 부치지 못하니 유감이다. <인명>박교(朴蛟)인명>가 어제 비로소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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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15일
| 正祖 22
| 戊午
| 바람 불고 춥다.
신랑은 음식상을 물렸다. 나는 유곡 형(酉谷兄)과 함께 돌아오다가 중간에 그와 헤어졌다. 낮에 <지명>동성(東城)지명>에 도착했다. 눈이 발목을 잡아 소가 강을 건너는데 절뚝거려,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게 시키고자 했으나 매우 고생스럽다. 동문의 성 위에 태수(太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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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0월 30일
| 正祖 21
| 丁巳
큰 누이를 모시고 <지명>상산(商山)지명>으로 갔다. 정오에 부(府)에 이르러 말에 꼴을 먹이고 저녁 <지명>우안(愚安)지명>에 도착했다. 이날 대인께서 <지명>천사(川沙)지명> 장지에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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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3일
| 正祖 22
| 戊午
| 종일 비가 내리다.
농사를 위해 기뻐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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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8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하촌(下村) 영양 숙(英陽叔)이 새 집에 부모의 빈(殯)을 옮겨 종일 일을 감독하고 빈(殯)을 만들었다. 이날 <지명>동성(東城)지명>의 평신(平信)을 받았다. 부중(府中)에 돌림병이 매우 날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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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3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우안(愚安) 망애 숙(輞厓叔)이 와서 대인, 가운데 아버지와 막내 아버지가 우안에 계신다는 편지를 전했다. 일행이 백리 밖에 편안하게 있음을 알았다. 매우 다행이었다. 망애 숙은 <지명>대평(大坪)지명>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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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4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아침에 듣기에 <인명>가원(可願)인명>이 결국 그의 손자를 내 보냈지만 이미 다시 내려왔다고 하니, 대개 천연두 걸린 아이가 밤새 내려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지명>임하(臨河)지명> 촌중에 천연두를 피해 온 객들이 이제 비로소 <지명>임당(林塘)지명>으로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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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9일
| 正祖 22
| 戊午
낮에 기수문(基水門)에서 밥을 해먹고 종일 해변의 모래사장을 다녔다. 인마가 모두 정강이가 빠져 괴로울만하였다. 바닷가에 이어진 주점들은 모두 앞에 큰 바다가 있었다. 쉴 때는 시야가 매우 트이는 것을 깨달았다. 30리를 갔다. <지명>양양부(襄陽府)지명> 상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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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15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저녁에 비가 내리다.
새벽에 출발하여 <지명>화등(花燈)지명>의 다른 길을 지났다. 아득히 바라보니 푸른 산 두서너 개가 바다 속에 떠있었다. 이는 <지명>안변(安邊)지명>의 섬과 같았는데, 인가가 백여 호가 있고 또 양들이 많다고 한다. 오십 리를 가서 학성관(鶴城館)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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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17일
| 正祖 22
| 戊午
| 흐리다. 오후에 눈이 많이 내리다.
오늘 서숙(庶叔)이 관례를 행했는데, 아름다운 모습이 자못 그의 아버지 같다. 그의 고로지감(孤露之感)이 가련하다. 고창 형(高昌兄)이 와서 관례를 보았다. 오후에 눈이 많이 내려, 그대로 머물러 잤다. <지명>평성(坪成)지명>에 간 심부름꾼이 돌아왔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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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6일
| 正祖 22
| 戊午
| 눈 위에 바람이 매우 차갑다.
날씨가 추워 어머니도 돌아가지 못해 매우 무료해하셨다. 형제가 지도를 꺼내 놓고 살펴보니 족히 적막함을 달랠 만 했다. 곧장 <지명>원산진(元山津)지명>에서 보니 바로 <지명>덕원(德原)지명>에 속했다. 또한 지난 해 쓴 북정일기(北程日記)를 가지고 그 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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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8일
| 正祖 22
| 戊午
| 흐리다.
아침에 <지명>대평(大平)지명>에서 우리 집 말을 끌어갔으니 대개 박 지관(朴地官)으로 하여금 다른 곳에 점지하고자 해서였다. 백동(白洞) 형이 상주(喪主) <인명>중심(仲深)인명>, 사촌 <인명>상록(相祿)인명>과 함께 반나절 이야기 하고 갔다. 밤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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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16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아침 일찍 돌아가는 길을 찾아, <지명>석현(石峴)지명>을 지나 <지명>대평(大平)지명>으로 바로 들어왔다. <인명>성백(誠伯)인명>의 부인은 산후 후유증으로 10일 미시에 세상을 떴다. 참혹하고, 통탄스럽다. 그의 현명함과 효성은 논할 필요가 없고, 층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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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1월 2일
| 正祖 21
| 丁巳
| 찬 바람이 매우 심하다.
큰 누이를 모시고 출발했다. 이날 찬바람이 매우 심했다. 노소 모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으나 떠나기로 결심하여 부득이하게 길에 올랐다. 말 위의 가마는 날릴 듯하여 위태로웠다. 정오에 <지명>형호(衡湖)지명>에 도착하니 산양(山陽) 사장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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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13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새벽에 출발하려고 했으나 어젯밤에 이야기하느라 깊은 밤이 지나고 잠잘 시간이 지났는데, 일어나보니 이미 해가 떠 있었다. 장교(將校) <인명>장이하(張以夏)인명>가 아침밥을 지어서 올렸다. 이 사람은 지난번에 <지명>안변(安邊)지명>으로 들어간 자이다. 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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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5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군기감관(軍器監官)이 화약으로 대포를 말리는 일로 불에 데여 죽었다. 매우 불쌍할 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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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24일
| 正祖 22
| 戊午
| 종일 비가 쏟아 붓듯이 내리다가 저녁 무렵 상쾌하게 개다.
아침에 정 서방(丁書房)이 인마를 데려갔다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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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1일
| 正祖 22
| 戊午
| 맑고 따뜻하다.
새해 첫 날이다. 형제가 일찍 일어나 관과 옷을 차려 입고 어머니께 배알하면서 신년의 하복(遐福)을 기원하였다. 가묘(家廟)에 재배(再拜)한 다음 중모(仲母)께 나아가 절하고 기원함 또한 어머님의 앞에서와 같이 했다. 밥을 먹은 후에 <지명>대평(大坪)지명>으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