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8년 4월 28일
| 正祖 22
| 戊午
| 아침에 비가 내리다.
주쉬(主倅)가 또 나와서 잠시 이야기를 하고 들어갔다. 떠나려고 할 때 아버지께서 잠시 동각(東閣)에 들어갔고 나는 말을 전하고 곧바로 왔다. 낮에 40리를 가서 <지명>영흥부(永興府)지명> 관해(官廨)에 이르렀으니 이는 과연 대읍이었다. 부백(府伯) <인명>김희조
-
1798년 4월 8일
| 正祖 22
| 戊午
밥을 먹은 후에 주 선달(朱先達)이 들어왔다. 마침 무과 출신이 들어 왔다. 또 ‘신례’라 부르고 왔다 갔다 하게 하였다. 무 선달(武先達)은 오늘 도문(到門)하였다. 2개의 상을 구하여 하나는 동각(東閣)에 바치고 하나는 책방(冊房)에 주는데 기생들을 불러 분급하였다
-
1798년 3월 5일
| 正祖 22
| 戊午
| 새벽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다.
반나절을 머물렀다. 비가 개기를 기다리다가 출발하였다. <지명>울진읍(蔚珍邑)지명>에서 묵었다. 종일 바람을 무릅쓰느라 병이 난 듯하였다. 이날은 40리를 갔다.
-
1798년 5월 12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낙하(洛下)의 벗들 중에 한 사람이 아프니 고민스러웠다.
-
1798년 5월 9일
| 正祖 22
| 戊午
낙하(洛下)의 여러 벗들, 한양에서 와 우거하고 있는 박 생(朴生)과 함께 학성관(鶴城館) 가학루(駕鶴樓)에 올라 산천의 빼어난 형상을 멀리 바라보니 기이한 장관이라 할 만 했다. 술을 한 순배마시고 관아로 돌아가려하는데, 한 아이가 큰 거북이를 잡아와 삶아 먹고자 하
-
1798년 1월 13일
| 正祖 22
| 戊午
| 아침에 맑고 저녁에 흐리다.
아침에 일어나니 정신이 나른했다. 걸음걸이가 비틀거리고 힘이 없어 빠르게 걸을 수 없으니, 걱정이다. <인명>일욱(日旭)인명>의 혼수가 왔는데, 범물이 뜻에 맞고 기쁘다. 신랑의 성명은 <인명>박규영(朴奎寧)인명>이다. 예서(禮書)는 자필인데, 획이 제법 강건했
-
1798년 2월 18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앞 채소밭에 야채를 파종했다.
-
1798년 4월 21일
| 正祖 22
| 戊午
밥을 먹은 후 아버지는 <지명>남산창(南山倉)지명>의 환곡을 검사하는 행차를 떠났다. 당일 관에 돌아왔다.
-
1798년 4월 10일
| 正祖 22
| 戊午
| 흐리다.
백일장(白日場)에 유생들이 비로소 거접(居接)하였다. 오늘부터 제목을 내주었다. 나 또한 하루에 한 수 씩 지었다.
-
1798년 3월 4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새벽에 떠나 십리를 걸었다. 본 것은 푸른 파도가 넓고 큰 것이었는데, 재차 보니 동쪽 하늘이 어두운 것이니 또한 우연이 아니었다. 낮에 <지명>평해읍(平海邑)지명>에서 말을 먹이니 60리가 되었다. <지명>해서(海西)지명>의 필공(筆工)을 만나 붓 한 자루를
-
1798년 5월 11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송산(松山)의 <인명>오원복(吳源復)인명>이 경양각(傾陽閣)에서 함께 공부하자고 청했다.
-
1798년 5월 16일
| 正祖 22
| 戊午
| 새벽부터 비가 쏟아 붓듯 내리다.
농사일에 좋을 것이다. <지명>영풍(永豊)지명>에서 생녹용 2개를 얻어 아버님께서 미음으로 복용하시니 다행이었다.
-
1798년 2월 28일
| 正祖 22
| 戊午
아침에 <지명>대평(大平)지명>과 <지명>백운정(白雲亭)지명>에 편지를 보냈다. 식후에 <지명>대평지명>으로 가서 두암(斗岩) 숙부와 길 떠나는 일을 논의하여 다음달 2일을 떠나는 날로 택했다. 사람을 <지명>소호(蘇湖)지명>에 보내 병 소식을 탐후했다.
-
1798년 5월 23일
| 正祖 22
| 戊午
| 아침에 일어나니 가랑비가 축축이 내리다.
식후에 비를 무릅쓰고 관아로 출발했다. 작은 재를 넘어 <지명>학호(鶴湖)지명>에 도착했다. 호수의 물은 망망하여 작은 바다와 같았고, 수상에는 작은 산이 있었는데, 터에 주춧돌이 있는 것이 바로 원수대(元帥臺)라고 했다. 대각은 부서져 없어졌고 사봉(沙峰)이 있었
-
1798년 1월 11일
| 正祖 22
| 戊午
| 흐리다.
내일 고조부의 기일이다. 새벽에 사당 아래에서 알현하고 방과 마당을 청소했다. 호상 형(湖上兄)이 건너왔다. <인명>성백[誠伯, 류치명)인명>이 초 6일에 아들을 얻었다고 하니, 매우 기쁘다. 밤에 <지명>소호(蘇湖)지명>에 편지를 썼는데, 앞집의 신행(新行)
-
1798년 2월 19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앞밭에 삼을 파종했다. <지명>수곡(水谷)지명> 덕구(德丘) 형이 방문했다. 오후에 영곡(永谷) 숙부, 유곡(酉谷) 형과 함께 사촌 <인명>석(錫)인명>을 가서 보고, 한양 측의 안부는 무사하다는 점을 알았다. 이어서 성묘하러 올라갔다가 돌아왔다. <인명>이재(
-
1798년 2월 24일
| 正祖 22
| 戊午
<인명>회칙(晦則)인명>과 함께 <지명>임당(林塘)지명> 우소(寓所)로 갔는데, 중모(仲母)께서 많은 근심고민으로 편치 못함이 있다고 하니 고민된다. 재사(齋舍)로 잠시 들어와서 <지명>망천(輞川)지명> 김 형, <지명>수곡(水谷)지명> 신당(新塘) 형과
-
1798년 4월 11일
| 正祖 22
| 戊午
<지명>고성(高城)지명>에 새로 부임한 수령이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참혹하고 참혹하다.
-
1798년 3월 2일
| 正祖 22
| 戊午
| 또 바람 불다.
식후에 두암(斗岩) 숙부가 넘어 와서 길 떠나는 일을 의논하고 갔다. 오후에 말을 타고 <지명>동영(東瀛)지명>으로 향했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뜻과 생각이 아득하게 했다. 어머니도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시니 길 떠나는 자식의 마음도 매우 힘들었다. <지명>화당(花塘)
-
1798년 1월 18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식후 서숙(庶叔)이 고창 형(高昌兄)과 함께 <지명>대평(大平)지명>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상서 숙(上書叔)은 초행(醮行)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를 빌러 오겠다고 알렸다. 어제 <인명>성백(誠伯)인명>의 며느리가 꿈에 나타났는데, 이별의 말이 정녕했다.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