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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7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아침에 <지명>안동(安東)지명>으로 갔던 종이 돌아왔다. 집과 각 처의 여러 사람들이 모두 편안하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매우 기뻤다. 다만 농사가 흉년이라 하니 매우 근심스러우나 어찌하리오. 그저께 <지명>영남지명>의 <인명>정혁상(鄭赫相)인명>,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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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14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지명>대평(大平)지명> 하촌(河村) 형이 <인명>중심(重深)인명>과 <인명>준문(俊文)인명>을 데리고 어버이를 뵈러 왔다가 돌아갔다. 듣기에 백동(白洞) 형의 어린 딸이 천연두에 걸려 반점이 나타났다고 한다. <지명>동성(東城)지명> 묘동(妙洞) 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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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23일
| 正祖 22
| 戊午
| 바람 불다.
어제 밤에 바람이 크게 불어 거의 잠들지 못했다. <지명>임당(林塘)지명> 우소(寓所)의 어린 종이 전염병이 들끓는 곳으로 갑자기 들어왔기에 매우 꾸짖고 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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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25일
| 正祖 22
| 戊午
<인명>이총(李寵)인명> 랑(郞)이 와서 이야기를 하였는데 곧 구관책방(舊官冊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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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6월 1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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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16일
| 正祖 22
| 戊午
|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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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19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새벽머리에 심부름꾼을 보내 각처에 초행에 필요한 물건을 빌리도록 했다. 백동 형(白洞兄)이 와서, 예전(禮箋)과 홀기(笏記) 쓰는 것에 대해 상의했다. 관아 약국의 사람이 와서 빚진 약값을 재촉해서 매우 고통스러웠는데, 이번 달 안으로 그것을 갚기로 약속했다. 백동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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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8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한발이 매우 심하여 백성들의 근심이 눈에 흘러넘쳤다. 지금 수령의 수고가 많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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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3월 29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어떤 사람이 <지명>풍산현(豊山縣)지명>으로부터 왔다고 말하기에 들어가서 만났지만 우리 고향 사람이 아니었다. 노자를 주어 보냈는데 근래에 맹랑한 무리들이 이와 비슷하니 걱정스러울만하다. 해가 지자 아버지께서 <지명>원산(原山)지명>에서 진휼을 마치고 관으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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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3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대평 숙(大平叔)의 변제(變制)를 보지 못했으니 슬프고 한탄스럽다. 식후 중모(仲母)가 <인명>희(喜)인명>와 함께 천연두를 피해 <지명>임당(林塘)지명>의 산지기집으로 피했는데, <인명>후여(厚汝)인명>가 데리고 갔다. 저물녘에 또 모시고 우소(寓所)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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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2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의 일은 예전처럼 문간(門間)을 영립(營立)하려 했으나 남은 기와가 얼마 되지 않아 부득이 각 집에서 겨릅대를 거두어 덮었다. 전치(傳置)곤이 문안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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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16일
| 正祖 22
| 戊午
| 가랑비가 내리다가 곧 그치다.
어느 객이 <지명>청하(淸河)지명>에서 와서 방문하고 갔다. <인명>김필(金弼)인명>이 돌아간다고 고했다. 유곡(酉谷) 형이 <지명>미곡(美谷)지명>에서 돌아 왔는데, 그의 여종을 무뢰한 자에게 반강제로 팔게 되었다고 하니 인심과 세도가 개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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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20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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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3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밥을 먹은 후에 길을 떠났다. 40리를 가서 <지명>고원(高原)지명>에 도착하였다. 수령이 나와서 서로 만났다. 동각(東閣) 앞뒤로 모란 10여 떨기가 있다고 하여 가을에 캐서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점심을 먹은 후에 출발하였다. 50여리를 가서 <지명>문천(文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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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30일
| 正祖 22
| 戊午
세찬 바람을 무릅쓰고 <지명>직현(直縣)지명>으로 갔다. 오후에 간신히 <지명>사촌(沙村)지명>에 도착했는데, 누이 내외 모두 무탈하니 기쁠만하다. 지헌(持憲) 어른을 뵈었는데, ‘관직에 있는 자는 세 가지 버릴 것이 있다[居官者三棄]’는 교훈으로 전별시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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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6월 22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지명>청송(靑松)지명> 유곡 형(酉谷兄)의 완숙부가 찾아 왔다. 늙은 몸으로 멀리 행차하여 무사하게 도착하니 매우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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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13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낙 우(洛友)의 병이 나아져 이날 돌아가는데, 말 한 필과 20냥을 들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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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2월 25일
| 正祖 22
| 戊午
| 눈이 내리다.
<인명>달몽(達蒙)인명>을 <지명>임당(林塘)지명> 우소(寓所)에 보내 천연두의 허실을 탐지하게 했다. 하인이 돌아온 편에 <지명>망천(輞川)지명>으로 우소를 옮긴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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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1월 14일
| 正祖 22
| 戊午
| 맑다.
다음날 아침 동방(洞房)으로 들어갔다. 신랑한데 잘 잤는지 물으니, 잘 자지 못했다고 했다. 대개 이집의 닭은 3경이 되지 않아 울어댄다. 초가 꺼지지 전에 신부가 일어나 나왔는데, 듣고는 매우 가소로웠다. 사돈어른은 그대로 머물렀다. 신부는 병 기운이 있어 많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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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4월 19일
| 正祖 22
| 戊午
저녁에 아버지께서 관으로 돌아왔다. 건강에 손상이 없어 기쁠 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