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0년 5월 4일
| 哲宗11
| 庚申
| 비가 내리다.
쨍쨍한 날에 비가 조금 내리는 탄식이 있었으나 이제야 비로소 흡족하여 이로부터 각 집에서 이앙하는 일이 급했다. 이에 일을 살피는 것이 지난날만 못한 것 같았으나 각기 서로 경계하여 태만함이 전혀 없었다. <인명>이교영(李敎榮)인명>, <인명>이덕영(李德英인명>
-
1860년 4월 22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 한 놈이 일하러 왔으나 대철(大哲)은 읍내로 가서 언제 올지 몰랐다.
-
1860년 2월 9일
| 哲宗11
| 庚申
| 바람과 추위가 조금 풀리다.
<인명>이재영(李再榮)인명>, <인명>이수근(李壽根)인명>, <인명>이성호(李性浩)인명> 세 사람이 <지명>원구(元邱)지명>에 가서 해당 동네의 군정(軍丁)을 간청했다. 상유사(上有司) <인명>박후영(朴後永)인명>, <인명>남효원(南孝源)인명>,
-
1860년 3월 2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일들이 매우 급했으나 풀을 베었다. 주사(廚舍)의 고공(告功)이 임박했으나 기한이 없을 것 같았다. <인명>박재만(朴載萬)인명>, <인명>정학묵(鄭學默)인명>이 보러왔다.
-
1860년 4월 1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들이 모두 볼일 때문에 집으로 가서 오지 않았다.
-
1860년 3월 24일
| 哲宗11
| 庚申
| 흙바람이 불다.
기와 일을 바야흐로 벌였으나 모래가 날렸다. 절진(竊眞)의 변고가 이제부터 드러났다. 대저 기와는 근근이 반을 넘어섰으나 일기가 이와 같아 집을 올리는 일에 장애가 많았다. <지명>벽수(碧水)지명>의 벽목(壁木) 다섯 짐바리를 들였다. 이날 삼계서원(三溪書院) 통문
-
1860년 3월 12일
| 哲宗11
| 庚申
| 잠깐 갰다가 흐렸다가 하다.
목수가 왔다. 그 놈의 왕래가 무상하여, 근거 없는 이치로 책망하니 매우 유감스러웠다. 주방의 가운데와 아래가 이미 완료되어 내일은 관당(館堂)을 지으려 했다. 당렴(堂簾) 한 개는 <지명>독동(篤洞)지명>에 있었는데, 건장한 노정(奴丁)이 아니라면 옮길 수가 없었
-
1860년 2월 14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가 비가 흩날리며 뿌리다.
임시 가옥을 만들었다. 비를 피하게 할 계산이었다. <인명>정학묵(鄭學默)인명>이 와서 문안했다.
-
1860년 5월 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오늘은 천중절(天中節)이다. 청허(淸虛)의 생각이 다른 절보다 달랐다. 그네 타며 신선과 짝하는 놀이, 홍록의 두루 펼쳐진 들판을 거니는 것 또한 신정(新亭)의 한 때 완상거리를 족히 보탤 만 했다. 동산(東山)의 기슬(妓瑟)과 자야(子夜)의 선소(仙簫)를 몰라도 이보
-
1860년 4월 23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온 마을의 노인들이 놀러 온다고 했으나 끝내 소식이 없었다. 친척들이 힘을 합해 주사(廚舍) 벽토를 발랐다. 날이 저물어서야 그쳤다.
-
1860년 3월 1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동풍이 불어 추위기 매섭다.
방 두 칸의 산자(散子)를 올리고, 마침내 흙으로 이게 서까래를 걸게 하는 것도 오늘 할 계획이었으나 목수 한 놈이 아직 오지 않았다. 날이 추운 것이 이와 같아 일에 지장됨이 많았다. <인명>박규빈(朴桂彬)인명>, <인명>전문욱(田文郁)인명>, <인명>전후곤(
-
1860년 4월 12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문(門)을 만들 목재가 부족한 우려가 있었다. <지명>독동(篤洞)지명>에 벌목하러 가려 했으나 용력(用力)이 중첩되니 무엇으로 할 수 있겠는가? <지명>석포(石浦)지명> 족조(族祖) <인명>이광우(李光羽)인명>, 족숙(族叔) <인명>이상윤(李相尹)인명>이
-
1860년 4월 20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
1860년 3월 2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바람이 조금 나아졌지만 그래도 평온하지 않았다.
토수(土手)의 고공(告功)이 내일 있을 것 같다. 마을 사람 <인명>박재만(朴載萬)인명>이 와서 문안했다.
-
1860년 3월 13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철물 일 때문에 <인명>이재영(李再榮)인명>, <인명>이수창(李壽昌)인명> 두 사람이 임두정(林頭亭)에 가서 공인의 집에 가서 종일토록 검사하고 돌아왔다.
-
1860년 2월 1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이날 주춧돌을 놓았다. 방과 당의 제도(制度)가 모두 조치되었다. 본촌(本村)의 <인명>정퇴묵(鄭退默)인명>, <인명>박순춘(朴淳春)인명>이 와서 문안했다. <인명>이학영(李學榮)인명>이 <지명>구호(龜湖)지명>가는 편에 죽리관(竹裡館) 세 글자를 써줄
-
1860년 3월 2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주사(廚舍)에 기와를 덮는 것을 기다릴 수 없었다. 노정(奴丁)들은 여유가 있었으나 여러 친족들은 각기 흙 바르는 일을 했다. 오늘 내로 개와(蓋瓦)를 마쳤다. 점심은 <지명>사촌(沙村)지명> 종가댁에서 보내주었다. <지명>어대(漁臺)지명>의 <인명>권영두(權永
-
1860년 4월 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동풍이 매우 심하다.
목수가 창문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 젊은이들은 부엌 바닥에 계단 만드는 땅을 다듬었다. <인명>박동찬(朴東燦)인명>, <인명>박상렬(朴尙烈)인명>이 보러 왔다.
-
1860년 5월 1일
| 哲宗11
| 庚申
| 비가 내리다.
가뭄 끝에 큰 비를 얻으니 사람들의 마음이 풀렸으나 소생의 조짐이 있을지 모르겠다. 목수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
1860년 5월 9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