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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지사(地師)를 맞이하여 온천정(溫泉井) 유좌(酉坐) 임향(壬向)의 땅을 살펴보았다. 관(舘)터는 동네 안에 있는 폐전(廢田)으로 하고 주사(廚舍)는 빈 땅이었다. 옛 터는 종가 대청 뒤 조금 서쪽에 있었는데 소나무와 밤나무가 빽빽하고 지형이 갈라졌기 때문에 이곳에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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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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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2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가뭄이 매우 심하다.
일찍이 상해의 두려움이 비할 데 없었다. 젊은이들이 힘을 합해 나무 다듬는 일에 수종(隨從)했으나 주사(廚舍)의 서까래 나무가 부족하여 <지명>후곡(後谷)지명> <인명>박지구(朴之邱)인명>의 나무를 청해 얻어 그로 하여금 운반하게 했다. <지명>미곡(美谷)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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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19일
| 哲宗11
| 庚申
| 비가 내리다.
목수가 병을 아뢰고 갔다. 일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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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1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두 목수가 계속 일을 했다. <지명>반포(反浦지명>)의 <인명>박남수(朴南秀)인명>, <지명>수일정(守一亭)지명> <인명>남대양(南大陽)인명>이 문안하러 왔다. <지명>가산(佳山)지명>의 <인명>남유집(南有集)인명>이 역소(役所)를 살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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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19일
| 哲宗11
| 庚申
| 오후에 비가 내리다.
나무 작업할 사람을 겨우 준비하여 난간을 얇고 일그러진 것들로 이었으나 다하지는 못했다. 기와 덮는 도구를 읍내에서 가져왔다. 목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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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6일
| 哲宗11
| 庚申
| 비가 오다가 낮에 개다.
목수가 와서 일을 시작했다. 앙토(仰土)는 오늘 내일 마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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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1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기와와 벽돌이 부족하여 몇 사람이 신생(申生)을 보러 가서 팔 것을 청해 허락은 했으나 부르는 값에 대책이 없으니 무엇으로 변통할 수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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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1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비로소 당판(堂板)을 들였으나 사람 마음이 교묘하고 나빠 간혹 잃은 것이 많아 보였다. 부족함이 있어 장차 새로 마련할 계획이었다. 본촌(本村)의 <인명>박상렬(朴尙烈)인명>, <인명>박동찬(朴東燦)인명>이 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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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9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목수가 또 귀가하여 일을 멈췄다. <지명>노곡(魯谷)지명> <인명>이상적(李相勣)인명>이 내행(內行) 때문에 와서 역소(役所)에 머물며 살폈다. <지명>원구(元邱)지명> <인명>박운영(朴運永)인명>, <인명>박시영(朴施永)인명>이 문안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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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3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가 일찍 와서 일을 했고, 대장장이는 일을 마치고 갔다. 품삯은 7냥 6전이었다. 물고기를 사서 회치고 삶아 밥을 지어 노소들이 한번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로 삼았다. 젊은이들이 직접 노고한 끝에 마음을 내어 마련한 것이었다. <인명>박재만(朴載萬)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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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21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 한 놈이 왔으나 또 관청일 때문에 읍중으로 불려 갔다. <인명>박상렬(朴尙烈)인명>, <인명>정퇴묵(鄭退默)인명>이 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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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2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는 또 관청일로 불려갔으나 대장장이는 계속해서 철물 만드는 일을 했다. 남유쇠(南有釗), 권영관(權永觀), 정퇴묵(鄭退默)이 보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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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23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종가의 뒤 기슭에서 헌함(軒檻)의 렴(簾)에 사용할 나무를 베었으나 멀지 않은 곳에 장렴(長簾) 생나무를 운반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노정(奴丁) 십여 명이 줄을 매어 끌기도 하고 소달구지에 실어 마침내 해당 장소로 운반했다. <인명>주재룡(朱在龍인명>),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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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18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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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23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기와 옮기는 것을 다하지 못해, 노정(奴丁)들이 종일 다 운반했다. 토수(土手)를 불어 기와 덮기를 시작했다. <지명>석포(石浦)지명> <인명>이수영(李秀榮)인명>이 와서 묵었다. <지명>저곡(楮谷)지명> 친척 대여섯 명이 와서 문안했다 감역(監役)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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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11일
| 哲宗11
| 庚申
| 비가 오다.
목수가 귀가했기 때문에 공사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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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3일
| 哲宗11
| 庚申
| 흐렸다가 갰다가 하다.
마을 안 군정(軍丁) 30여 명이 종일 땅을 다듬었다. 점심과 술동이 또한 친족 집에서 마련해 내었다. <지명>원구(元邱)지명>의 <인명>박진규(朴鎭奎)인명>, 같은 마을 <인명>박동찬(朴東燦)인명>, <인명>정퇴묵(鄭退默)인명>이 작업장에 와서 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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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26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동풍이 홀연히 불다.
목수가 일 한 것은 단지 헌함(軒檻)을 갖춘 것뿐이었다. <인명>권영관(權永觀)인명>이 보러 왔다. <지명>송천(松川)지명>의 김 이전(金吏專)이 축하하러 왔다. 아전이 이러한 도리를 아니 매우 감탄할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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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10일
| 哲宗11
| 庚申
| 비가 내리다.
우리 마을 군정(軍丁) 30여 명이 흙을 지거나 돌을 모았다. 이어서 주사(廚舍) 앞의 모래 제방을 개척했으나 "{吐/乙}"을 뚫어 물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