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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3일
| 哲宗11
| 庚申
| 흐리고 춥다.
장차 저 모레 기둥을 세울 계획이었으나 백여 개의 목재들을 다 대조하며 다듬지 못했다. <지명>저곡(楮谷)지명>의 <인명>이수대(李壽岱)인명>가 보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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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28일
| 哲宗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목수가 토수(土手)와 함께 갔다. 따라서 일을 멈추고 노정(奴丁) 수십 명을 데리고 가서 주방 터를 개척했으나 그 아래가 습한 것이 걱정되어 흙을 지고 와서 높이고 땅을 다질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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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7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목수 <인명>윤금동(尹金同)인명>이 관(棺)짜는 일로 <지명>원구(元邱)지명>에 따라갔다. 오지 않은 목재들은 대부분 고처 마련한 것이었다. <인명>이수백(李壽栢)인명>, <인명>이성호(李性浩)인명> 두 사람으로 하여금 <지명>신리(新里)지명>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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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재목이 또 부족한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인명>이수백(李壽栢)인명>, <인명>이성호(李性浩)인명>, <인명>이재영(李再榮)인명>, <인명>이현하(李鉉夏)인명>가 <지명>독동(篤洞)지명>으로 올라가서 동네 입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재목 베어 돌아오게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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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는 오지 않았다. <지명>반포(反浦)지명>의 <인명>박종수(朴宗秀)인명> 어른, 아랫마을 <인명>남유원(南有元)인명> 어른, <인명>이태현(李泰鉉)인명> 어른, <인명>백하운(白河運)인명> 어른이 보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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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노소들이 일제히 모였다. 이 집이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에 나중에 낙성(落成)의 모임을 한 차례 가지지 않을 수 없어 백일장을 열어 고을의 여러 벗들을 초대하여 하루의 놀이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현재의 물력(物力)이 부적하여 결국 하지 못했다. 여러 친족 노소들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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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2월 19일
| 光海12
| 庚申
| 비가 흩뿌리다.
선고(先考)의 기제사를 지냈다. 다만 강신(降神)과 초헌(初獻)의 예만 올리고 퇴상(退床)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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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11일
| 哲宗11
| 庚申
| 흙비가 내리다.
흙비가 내려 사방이 막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우리 마을의 군정(軍丁)과 소들이 또 벤 목재를 <지명>독동(篤洞)지명>에서 운반해 왔다. 그 재목들은 주방의 도리목(道里木)의 부족분과 문골(門骨)등에 쓰일 재목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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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16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일족의 젊은이들이 군정(軍丁) 십여 명을 데리고 비로소 원옥(元屋)의 하방(下方) 판축(版築)을 했다. 사공(事功)이 얼마 되지 않았다. <지명>저곡(楮谷)지명> <인명>이상건(李相健)인명>, <인명>이상유(李相儒)인명>, <인명>이상후(李相垕)인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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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5일
| 哲宗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오전에 노소들이 모두 모였다. 비로소 네 칸의 집을 세웠다. 동서 양쪽에 따뜻한 방과 중간에 시원한 헌함, 방원(方圓)과 규모가 매우 좋았다. 백년 흥폐의 이치는 그 사이에 운수가 있을 것이고 또한 우리 집안 운수에 있어 하나의 큰 관건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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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30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전날 주방 터에 임시거처를 만들었었는데, 이날 터를 닦으려고 훼철했기 때문에 비를 피할 곳이 없었다. 이어 객사에서 설목(設木)하는 곳에서 목수 두 명이 모두 왔다. <지명>노곡(魯谷)지명> <인명>이상적(李相勣)인명>이 보러 왔다가 6~7일 머물면서 일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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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9일
| 哲宗11
| 庚申
| 아침에 비가 내리다가 저녁에 개다.
목수가 일을 하다말다 했다. 상시 감역(監役)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산만하고 체계가 없었다. 여러 임원들에게 날짜를 안배하여 감독하게 하니 소원하거나 어그러짐이 없었다. <지명>반포(反浦)지명>의 <인명>박삼수(朴三秀)인명>가 문안 와서 종일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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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1일
| 哲宗11
| 庚申
| 비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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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밥을 먹은 뒤에 각 집안의 밀가루를 수합하여 전일(前日) 사둔 종이로 창문과 네 벽을 발라 바람을 막는 방도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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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여러 친족들이 본촌(本村)의 호수(戶數)를 우선으로 하고 소의 숫자와 가을 곡식을 수합하되 그 힘을 헤아려, 많고 적게 내도록 처리하고, 때에 맞추어 수봉(收捧)하여 증식시키며, 또 명년 춘추 곡식에도 그렇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체임(遞任)하여 간검(看檢)하자고 합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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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2월 20일
| 光海12
| 庚申
| 비가 흩뿌리다. 낮에 개다.
어떤 사람이 와서 문병하고는 이어서 <지명>강우(江右)지명>의 기담을 전하였다. "객 중에 재상 <인명>내암(來巖)[정인홍(鄭仁弘)]인명>을 모시는 자가 ‘금년의 곡가가 높아서 포(布) 한 필(疋)에 정조(正租) 대여섯 말[斗]의 가격이라고 합니다.’고 하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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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12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독동(篤洞)의 벤 목재들은 대개 어제 운반해 왔으나 남은 것은 <지명>갈면(葛面)지명> <지명>여현(余峴) 지명>군정(軍丁)에게 옮겨오게 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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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7일
| 哲宗11
| 庚申
| 밤에 눈비가 내리다가 낮에 개다.
목수 두 놈이 일하기 시작했고, <지명>독동(篤洞)지명>의 목재를 마을 노정(奴丁)으로 하여금 운반해 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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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6일
| 哲宗11
| 庚申
| 쾌청하다.
여러 달 눈이 내린 끝에 푸른 하늘이 열리니 사람의 마음을 족히 소생케 했다. 이로부터 하늘의 도움이 있는 것이지 모르겠다. <지명>벽수(碧水)지명> 동장에게 패(牌)를 내어, 울타리 나무 대여섯 수레를 그로 하여금 하루 안에 들여오게 했다. <인명>주종열(朱宗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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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1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가 비로소 주방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근래 기둥을 세우려 했으나 꼭 그럴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