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0년 2월 22일
| 哲宗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목수가 연일 재목을 재고 마름질하거나 잘라 문양을 넣거나, 톱으로 자르고 파내어 원형을 만들었다. 용마로, 서까래, 기둥, 말뚝 등이 순서대로 규격에 맞았으나, 신속하게 하는 바람에 기둥을 세울 도구를 없애버렸다.
-
1860년 3월 8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공사는 점차 집의 규모를 만들어 냈으나 서까래 나무 중에 검은 흙먼지 낀 것을 일을 보는 사람들이 우물물로 씻어 내고 장차 반듯하게 자를 계획이었다. 이 또한 하나의 큰 고역(苦役)일 뿐이었다.
-
1860년 2월 8일
| 哲宗11
| 庚申
| 흐리고 춥다.
<인명>이수창(李壽昌)인명>, <인명>이수송(李壽松)인명>이 감독하러 갔다. <지명>괴시(槐市)지명>의 군정(軍丁)들이 연일 재목과 기와를 운송하게 되어 기와와 벽돌은 다 운송했고 재목은 다 운송하지 못했다. 군정(軍丁) 30여명이 있었다.
-
1860년 3월 2일
| 哲宗11
| 庚申
| 흐리고 춥다. 눈이 내리다.
목재 일은 점차 실마리를 얻었으나 그래도 기둥을 세우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명>구현(龜峴)지명>의 <인명>김진림(金鎭林)인명>이 그 때 마침 종가에 머물고 있으면서 역소(役所)로 와서 문안했다.
-
1860년 3월 2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연일 많은 비가 내리던 끝에 날씨가 한발의 조짐이 있는 것 같았다. 지붕 올리는 일이 끝났다. 사방의 낮은 날개가 눈처럼 감추고 있어 매우 좋았다. 옛사람이 말한 "날아 갈 듯한 용마루 지붕 큰 길에 면하고"란 구가 이 집에서 연상될 수 있었다.
-
1860년 3월 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는 오지 않았으나 토공(土工)이 와서 앙토(仰土)하는 일을 시작했다. <지명>원구(元邱)지명> <인명>남유덕(南有悳)인명>, <지명>저곡(楮谷)지명> 일가 상주 <인명>이부영(李溥榮)인명>, <인명>이찬은(李燦溵)인명> 형제가 보러 왔다.
-
1860년 2월 24일
| 哲宗11
| 庚申
| 점심 이후에 비가 내리다.
<지명>가산(佳山)지명>의 군정 10명이 <지명>신리(新里)지명>의 목재 20여 개를 운반해왔다.
-
1860년 5월 16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명>괴시(槐市)인명> <인명>남유성인명>, <인명>남조한(南朝漢)인명>이 보러 왔다.
-
1860년 5월 2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온 마을의 노소들이 모두 왔다. 노성(老成)한 사람들은 그 사역(事役)을 검사했다. 젊은 사람들은 직접 고생을 하며 사방의 담장을 연일 축성하고 개복했다. 또 후면의 석축을 쌓았고, 아이들은 대나무 뿌리를 채취하여 사방에 심었다. 전면은 백장미와 벽오동 새 가지로 하여
-
1860년 4월 6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가 와서 창문 일을 시작했다. 톱질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의 힘이 하나로 합하는 것이 실로 어려웠다. <지명>옥금(玉今)지명>의 <인명>권도정(權度正)인명>, <인명>남유석(南有奭)인명> 어른이 지팡이를 짚고 안부를 물으러 왔다. 점심을
-
1620년 2월 23일
| 光海12
| 庚申
서원 제문을 이불에 엎드려 간신히 초했다. <인명>정호의(鄭好義)인명>가 왔다가 갔다.【<인명>정보(貞甫)인명>의 아들이다.】
-
1860년 2월 7일
| 哲宗11
| 庚申
| 연이어 흐리다. 동풍이 불어 칼로 베는 듯하다.
각 촌에서 공사(公私)를 처리하는 사람들이 일할 사람들의 명단을 베껴왔으나 빠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날 군정(軍丁) 70여명, 소 20여 마리가 있었다.
-
1860년 3월 1일
| 哲宗11
| 庚申
| 눈이 내리다.
시서(時序)는 온화한 계절이건만 대지가 온통 하얗다. 고약한 날씨가 어찌나 심한가. 차가운 바람은 칼과 같고 천지는 슬픔에 잠기게 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위태하고 두려움을 그치지 못하게 했다. 집 짓은 일은 이전과 같았으나 일을 보는 사람들이 각각 정해진 날짜에 직접 수
-
1860년 3월 16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병을 핑계 댄 목수가 관청의 일로 불려 갔는데, 늦을지 빠를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사이에 또 시일을 낭비할 것이다. <지명>원구(元邱)지명>의 <인명>남효원(南孝源)인명>이 역소(役所)로 와서 문안했다.
-
1860년 3월 3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 또한 관청 일로 불려 갔다. 일을 멈추고 <지명>석천(石川)지명>에서 문회(門會)를 결정했다. 종가의 제일 어른과 친족 여러 임원들이 참석하여, 네 파(派)의 돈을 조처하여 각기 20민동(緡銅)으로 나누었다. <지명>독동(篤洞)지명>은 40관(貫)으로 모두
-
1860년 2월 23일
| 哲宗11
| 庚申
| 흐리고 비가 내리다가 저녁에 개다.
<지명>신리(新里)지명>의 목재를 운반해오는 일로 <지명>가산(佳山)지명> 동장에게 패(牌)를 내었다. <지명>원구(元邱)지명>의 <인명>백휘동(白徽東)인명>이 와서 문안했다.
-
1860년 5월 15일
| 哲宗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동풍이 심하게 불다.
빈 정자는 우뚝하였다. 노소들이 나가 살피기도 했으나 일을 볼 사유가 없었다. 7일이후로 늘어진 일이 오늘에 이른 것은 실로 목수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울러 농사가 급했기 때문이었다.
-
1860년 5월 23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가 비로소 고공(告功)하고 돌아갔다. 노소들이 모두 모였는데, 이바지하고 베풀 물품 때문이었으나 값을 논하면서 여러 가지 말이 있어 하루 내내 결정하지 못해, 또 묵으며 돌아갈 맛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비로소 50민동(緡銅)으로 결정해 보냈다. 마을에 사는 <인명
-
1860년 3월 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공사는 여전했으나 터 앞면의 석축을 일족의 젊은이들이 직접 판삽을 잡으니 순식간에 잘 다져 공을 아뢰게 될 것이다, <지명>광고(光顧)지명>의 <인명>이상선(李相善)인명>이 <지명>어대(漁臺)지명> 초행(醮行) 길에 들려 일을 살피고 돌아갔다.
-
1860년 2월 26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 한 놈이 아직 오지 않았다. <지명>석포(石浦)지명>의 <인명>이수영(李秀榮)인명>이 와서 <지명>저곡(楮谷)지명>에 머무르며 편지로 안부를 물었다. <지명>마동(麻洞)지명>의 <인명>이한영(李漢永)인명>이 역소(役所)로 보러 왔다. 점심을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