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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3월 8일
| 高宗 21
| 甲申
| 맑음
8일 맑음
감영의 제음이 비로소 당도하였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이 전과 같이 별다른 것이 없어 한탄할 만하다. 호소문의 초안을 작성했는데, 狀頭는 <인명>孫晉念인명>, <인명>權宜升인명>, <인명>李道久인명>였다.
삼가 생각건대, 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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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4월 2일
| 정조13
| 기유
다음날아침,본고을의禮吏가사사롭게소식을통고하기를,<관직명>承旨관직명>令監께서이번에사액을내릴때到記를임금께보여드리고자하니,별도의좋은종이에책자를만들어精書하여올려보내라고분부하였다고했다.그래서그날로到記를정리하여보냈다.貞洞에사는<관직명>承旨관직명>洪仁浩가편지를보내왔다.삼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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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8월 15일
| 高宗 20
| 癸未
| 맑음
15일 맑음
향례를 마친 후 차례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8일에 다시 모임을 갖는 다는 뜻을 정하고 각 마을의 여러 회원들에게 단단히 약속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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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8월 25일
| 高宗 20
| 癸未
| 맑음
25일 맑음
저 감영에서의 제음이 이르렀다. 감당할 수 없는 뜻이 있어 마주 대응하여 변명하기를 결단코 그만둘 수 없어 <인명>李邁久인명>를 통해 관찰사에게 民願書를 보냈다. 저들에게서 듣자니 감영의 제음 가운데 먼저 溪亭 문중에서부터 특별히 가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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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2월 11일
| 高宗 21
| 甲申
| 비가 오다가 갬
11일 비가 오다가 갬
숙소에서 文報를 작성하여 관청에다 변고를 알렸다. 그것을 바탕으로 각 마을에 통문을 돌려 당일로 府에 일제히 나아가기를 기대하였다. 앞서 간 여러 사람은 이미 말을 하고, 뒤에 간 사람들은 文報를 올렸는데, 마당에서 몰아내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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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8월 20일
| 高宗 20
| 癸未
| 맑음
20일 맑음
享禮가 순조롭게 거행되었다. 저들이 또 감영의 題音을 얻었다는 뜻으로 이따금 소리 높이 외치거나 겁박하듯이 간단한 구절을 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끝내 꺼내어 보여주지 않아 도리어 의아스럽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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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8월 4일
| 高宗 20
| 癸未
| 비
4일, 비
감영에서 보내온 관문[營關]의 말에는 심히 한쪽 편에서 절실하게 호소하는 하소연을 말만 듣고 신용하는 것이 있다. 생각건대 (부윤을) 직접 만나서 院規의 전말과 저들의 탄원서가 증거를 꾸며낸 것이라는 단서를 말해서 잘못을 뉘우치고 깨닫기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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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10월 4일
| 高宗 20
| 癸未
| 맑음
4일 맑음
관청으로부터 都色과 首奴, 그리고 都掌務 등을 붙잡아다가 일의 사실에 대해 심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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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2월 25일
| 高宗 21
| 甲申
| 맑음
25일 맑음
지금 사람이 돌아와서 英可가 감영에서 쓴 편지를 보였다. 감영에서는 신중을 기하며 공적인 일을 무시하고, 회답하는 제음으로 오히려 상의하며 고민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저들의 무리 역시 호소문을 맡겼는데, 한 사람이 나와서 나중에 幕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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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2월 26일
| 高宗 21
| 甲申
| 맑음
26일 맑음
狀本에 대해 답이 주어졌다는 英可의 편지가 심부름꾼을 통해 보내와서 급히 감영으로 달려갔다. 저들 편에서 올린 감영의 호소문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인명>李能挺인명>, <인명>李秉壽인명>, <인명>孫永昌인명> 등이 작성하였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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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1월 16일
| 정조13
| 기유
16일進士 <인명>黃景幹인명>와 일가의 여러 사람들이 <건물명>不換亭건물명>에 모여 疏廳의 경비를 처리하기 위해 7~8일을 머물렀다. 疏廳의 소식을 듣지 못해 울적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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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8월 24일
| 高宗 20
| 癸未
| 맑음
24일 맑음
문중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 宗堂에 모여 차후의 변화에 대응하려 하였다. 그런데 세금의 부과를 어디에 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맡은 일의 도리를 위하여 이치를 헤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작년 문중의 契에서 예전에 11등으로 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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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8월 10일
| 高宗 20
| 癸未
| 흐림
10일, 흐림
齋任이 제사에 쓸 술이 잘 빚어졌는지를 보기 위해 서원에 올라왔다가 자고서 즉군이 감영의 마음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만났다. 감영의 대략적인 내용과 편지의 뜻이 대략 같았다. 오랜 후에 도색이 告目 속에서 本村의 여러 회원이 有司를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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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10월 1일
| 高宗 20
| 癸未
| 맑음
10월 1일 맑음
향례를 빠트린 여러 사람들이 즉시 慶州府에 들어가 변고를 고하는 공문을 올리고, 좌우에 공문을 돌려 당일 구강서원에서 鄕會를 개최한다는 뜻을 각 문중에 두루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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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2월 16일
| 高宗 21
| 甲申
| 맑음
16일 맑음
英可에게 행장을 꾸려 감영에 보내려고 하여 보내는데 드는 비용을 의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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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2월 10일
| 高宗 21
| 甲申
| 비
10일 비
밖에서 재빠르게 여러 사람들이 의론하였다. 저들 무리의 위협하는 모습으로 안전하게 大祭를 지낼 길이 없다고 여겨 校卒을 풀어 금지시키자는 뜻에 합의를 보고 官에다 文報를 올렸다. 이에 文報를 작성하고서 비를 무릅쓰고 달려갔다. 文報의 초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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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3월 1일
| 高宗 21
| 甲申
3월 1일
감영에 能章 한 사람에게 행장을 차려 길을 떠나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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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4월 2일
| 高宗 21
| 甲申
| 큰 비바람이 불다가 늦게 맑음
4월 2일 큰 비바람이 불다가 늦게 맑음
감영에서 회답한 題辭가 당도했다. 말의 뜻에는 심부름꾼을 내려 보낸다고 하여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조사하여 보고한다.[査報]"라는 말이 다시 일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되어 한탄스럽다. 감영에 보내는 호소문의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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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8월 11일
| 高宗 20
| 癸未
| 흐림
11일, 흐림
관청에 또한 다음과 같은 공문을 올렸다. 이제 향례의 시일이 가까워져 재임이 향례에 쓸 술을 빚은 것을 보기 위해 서원에 들어오자 저 무리 10여 명이 서원에 난입하여 재임을 포위하여 핍박하며 일제히 큰 소리로 "새로운 재임이 여기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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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8월 16일
| 高宗 20
| 癸未
| 흐렸다가 맑음
16일 흐렸다가 맑음
듣자니, 저들은 다음날 溪堂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다고 한다. 어떤 폐해[機括]를 끼칠지 모르지만, 스스로를 위해 일을 돈독하게 해야 한다. 염려스러운 것은 보름 때 무사한 것으로 인해 각자 해이한 마음을 품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