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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3월 28일
| 정조13
| 기유
28일 본고을에칼과자[尺]를다루는늙은이한사람이나타나고,<지명>善山지명>府의禮吏도나타났다.아마도<관직명>善山府使관직명><인명>李厚源인명>가사액을맞이할때에都例差官이되었기때문에사람을보낸것같았다.이날각곳에서扶助하겠다는통문을보내왔다.<건물명>屛山書院건물명>에서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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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6월 22일
| 辛未
| 어제 밤부터 빗줄기가 삼마 같은데 이른 아침까지 그치지 않다.
봇도랑이 모두 가득 찼다. 아마도 농사는 비록 예측할 수 없지만 가을 추수가 없는 것을 면하길 바라기 어려울 듯하다. 조부가 행차한 이후 지금까지 보름 가까이 되었으나 돌아오시지 않으니 송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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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6월 30일
| 辛未
| 맑다가 구름 끼고 흐리다. 조금씩 서늘한 기운이 생기다.
말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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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8월 6일
| 辛未
| 볕이 나다.
물이 넘치는 것을 보았다. 구장(區長)이 아침을 먹은 뒤에 갔다. 아버지가 <지명>춘양(春陽)지명> 시장에 갔다가 밤에 돌아왔다. 고계(古界) 생원(生員) <인명>권효잠(權孝岑)인명> 장(丈)이 와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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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11월 9일
| 庚午
| 맑다.
조부님 형제와 삼동(三洞) 척조장(戚祖丈)께서 나란히 <지명>재산(才山)지명>에 행차하셨다. 우체부(郵夫)가 와서 묵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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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8월 19일
| 辛未
| 더러는 비가 내리고 더러는 볕이 나다.
재산 족인(才山族人)이 점심을 먹고 갔다. 오후에 <지명>유곡(酉谷)지명>의 스승께서 와서 유숙하셨다. <지명>양곡(陽谷)지명> <인명>안태인(安太仁)인명> 또한 점심을 먹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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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1월 1일
| 辛未
| 이른 아침 비가 내려 종일 개지 않을 듯하니, 마땅히 이는 큰 눈이 내릴 조짐이다. 이 날씨가 조화롭지 못한 것이 어찌 심한가?
유곡(酉谷) 권 척숙(權戚叔)께서 와서 묵으셨다. 사람들이 혹 "서풍(西風), 풍파(北波)가 험난한 것이 형상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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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6월 3일
| 辛未
| 맑다.
<인명>김명진(金明鎭)인명>이 참외 7~8개를 가지고 와서 조부께 드렸는데, 이 참외는 <지명>예천지명>에서 온 것이었다. 『시경』에는 7월에 참외를 먹는다고 했는데, 지금 6월인데 이 과실을 먹으니, 이는 실로 예전에 있지 않은 참으로 진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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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1월 22일
| 정조13
| 기유
22일 院長 <인명>李承延인명>가 <건물명>不換亭건물명>會에 편지를 보내 <지명>서울지명> 소식을 전했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지난번에 栗里의 <인명>孫潤慶인명>이 <지명>서울지명>에서 내려왔다는 소문을 듣고 가서 栗里의 편지를 보게 되었다.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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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1월 30일
| 정조13
| 기유
30일본 고을의 많은 선비들이 <건물명>白華書堂건물명>에 모였다. 院長 <인명>李禧遠인명>를 비롯해 齋任 <인명>金憲慶인명>, 進士 <인명>黃景幹인명>, 院長 <인명>黃瑞熙인명>, <인명>黃世休인명>, <인명>黃建中인명>, <인명>黃澣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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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9월 12일
| 辛未
| 볕이 나다.
아침에 <지명>후곡(後谷)지명> 김 참봉(金參奉)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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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0월 2일
| 辛未
| 볕이 나다.
운동(雲洞) 녹동(鹿洞) 권 척숙(權戚俶)께서 방문하고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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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6월 28일
| 辛未
| 빗소리가 종일 그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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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8월 4일
| 辛未
| 아침에 안개가 가득 끼다가 다시 걷혀 해가 나다.
콩을 찧는 일로 콩을 싣고 <지명>도천(刀川)지명>에 보냈다. 오후에 면장(面長) 이공(而公) 및 각구(各區)의 구장(區長) 다섯 사람과 함께 왔다가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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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11월 7일
| 庚午
| 맑다.
조부님께서 <지명>고감리(高甘里: 명호 고감리)지명>에 행차하셨다가 날이 저물녘에 돌아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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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11월 15일
| 庚午
| 개다.
부친께서 <지명>창평(昌坪: 봉성 창평)지명>의 계(稧) 모임에 행차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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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0월 6일
| 辛未
| 비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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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6월 1일
| 辛未
| 맑다.
조부께서 긴절한 볼일 때문에 <지명>신현(薪峴)지명>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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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8월 26일
| 辛未
| 볕이 나다.
<지명>부포(芙浦)지명> <인명>이중규(李中圭)인명> 씨가 와서 점심을 먹고 갔다. 조부주(祖父主) 형제분이 5~6일 동안 <지명>재산(才山)지명>을 소요하시다가 저물녘에 돌아오셨다. 아버지께서 <지명>춘양(春陽)지명> 시장에 가셨는데 돌아오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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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1월 27일
| 정조13
| 기유
27일<지명>서울지명>로 곧장 심부름을 갔던 사람이 疏首인 <인명>趙奎鎭인명>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그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지명>서울지명>에 머문 지가 어느 듯 새해와 묵은해가 교차하니 외로운 주막에 나그네의 회한을 어떻게 고하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