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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24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우 형(禹兄)이 오후에야 도착했다. 밤에 함께 마주해서 이야기했는데, 모음사(慕音寺) 안산(案山)의 유좌(酉坐) 한 곳에 대해서 아주 찬양했다. 이 때문에 내가 가서 보려고 했나 병으로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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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26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조금 흐리다.
오늘은 하지(夏至)이다. 차아(次兒)가 <지명>신양(新陽)지명> 등지에서 보리를 보고 저녁에 돌아와 봄보리는 흉년이 들었으나 밀은 조금 익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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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6월 3일
| 哲宗 13
| 壬戌
| 몹시 덥다.
나의 가슴 사이에 화가 올라오는 증세가 오후에 또 일어났다. 계아(季兒)가 황급히 오천(浯川)에 약을 물으러 갔다가 밤이 깊어 돌아왔다. 목유회생산(木萸回生散)을 복용하니 진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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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6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족제 <인명>김경회(金景會)인명>가 부중(府中)에 머물고 있다. 이번 달 초 10일 영저(營底)에서 향회를 하는 일로 통문을 썼는데, 고을 사람의 낭패이니, 차라리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어찌하고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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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18일
| 哲宗 12
| 辛酉
| 아침에 춥고 낮에 덥다.
<지명>송지(松枝)지명>의 벗 <인명>박상산(朴商山)인명>이 와서 전하기를 어제 <지명>서울지명>에서 내려온 <지명>소산(素山)지명> 사람을 만났는데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과거 일은 여론에 염려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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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6일
| 哲宗 12
| 辛酉
| 쨍쨍한 해가 매우 성하다.
시험 삼아 앞들에 나가서 심은 것을 보았다. 논에 물이 거의 없어서 이앙을 하지 못하고 전(田) 가운데 삼맥(三麥: 밀·보리·쌀보리)은 모두 하얗게 말랐다. 보기에 매우 근심되고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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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6일
| 哲宗 12
| 辛酉
<인명>우 아(宇兒)[김우欽(金宇欽)]인명>가 이른 아침에 행장을 꾸려 <지명>한양지명>길을 출발했다. 날씨는 비록 서늘하지만 험한 시기에 먼 여정을 가야하니 매우 염려됨이 적지 않다. 이어서 또 전고의 하인이 와서 원방(元方)의 답장을 보고 지난달 그믐쯤에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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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27일
| 哲宗 13
| 壬戌
| 황사가 종일토록 끼다.
기상이 매우 좋지 못하다. 또 바람 기운이 크게 일어나서 찬 기운이 사람을 핍박한다. 저녁에 <지명>백동(白洞)지명> 광숙(光叔) 형이 반혼(返魂)을 따라 왔다고 하기에 잠시 가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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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22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지사(地師) 우 형(禹兄)을 고대했으나 오지 않았다. 어그러질 염려는 없는 듯 하니 반드시 붙잡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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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4월 6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인명>칠복(七卜)인명> 종이 이른 아침에 보러 와서, 오늘 가족들을 데리고 영덕 <지명>진부리(進夫里)지명> 바로 해▣(海▣)로 간다고 하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놈의 일 또한 안타까웠다. 연전(年前)에 와서 행랑에 살았는데 굶주림과 추위로 죽으려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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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30일
| 哲宗 13
| 壬戌
| 가뭄 기운이 점점 심하다.
집 하인이 부(府)에서 낮에 돌아왔다. 듣건대 병방(兵房)이 집으로 돌아가 생일을 지냈다고 하였다. <인명>재춘(在春)인명>이 청육탕(淸六湯) 세 첩과 익원산(益元散) 열 두 개의 작은 봉지를 보냈으니 값을 매길 수 없는 충정(衷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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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4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감현(甘縣)지명>과 <지명>화계(花溪)지명>의 족숙이 내방했다. <지명>재산(才山)지명>의 족제 <인명>김경회(金景會)인명>는 부중(府中)에 머물렀다. 급하게 전한 편지가 있었는데, 관아에서 생각한 기한에 다시 징수하고자 했다. 향인(鄕人)이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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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16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막내아이가 <지명>오천(浯川)지명>에 가서 또 자기가 복용할 약 10첩을 지어 왔으니 전에 복용한 것이 조금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듣건대 <지명>상계(上溪)지명>에서 점유한 <지명>오천지명>의 산지는 무덤을 파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녁을 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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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4일
| 哲宗 12
| 辛酉
| 매우 덥다.
<인명>수 아(守兒)[김수흠(金守欽)]인명>,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 두 아이와 종손(從孫) <인명>낙주(洛周)[김낙주(金洛周)]인명>가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 원촌(遠村) 이 상서(李尙書), 온혜(溫惠) 이 홍주(李洪州), 부포(浮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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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8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내일은 곧 재종질부 하동실(河東室)의 장삿날이다. 빈객으로 시끄러워 아직 환재를 만들지 못하여 둘째 아이로 하여금 무게를 달아 안에서 가루로 만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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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21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위 아(渭兒)가 왔는데 그의 외종숙이 데리고 왔다. <지명>서울지명> 소식을 전하기를 "일소(一所)는 응강 유생이 소요를 일으켜서 상시관(上試官) 판서(判書) <인명>심경탁(沈敬鐸)인명>이 초기(抄記)하여 임금께 올렸다."라고 한다. 만약 그러하다면 <인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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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9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아침에 비복(婢僕)으로 하여금 셋째 아이의 집 뒤에 남초(南草) 모종을 옮겼다. 갑자기 당일에 햇볕이 쨍쨍하여 또 그들로 하여금 물대고 잎을 따서 그것을 덮게 하였다. 집의 심부름꾼이 <지명>망천(忘川)지명>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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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10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아침에 추위가 매우 심하다. 밤에 겨우 먼지를 적실 정도의 비가 내리다.
조정에서 윤차과(輪次科)를 행하여 글을 받았는데, 대과는 3인이고 소과에서는 10인이라고 전했다. 밤에 겨우 먼지를 적실 정도의 비가 내렸다. <지명>고산(高山)지명>의 스승이 내방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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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4일
| 哲宗 12
| 辛酉
| 춥다.
셋째며느리가 귀근(歸覲)한지 벌써 석 달이 되어 한번 하인을 보내고자 했으나 집에 일이 생겨 하지 못했다. 장차 내일 아침 보내려고 하기 때문에 편지를 써서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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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16일
| 哲宗 12
| 辛酉
| 잠깐 비가 내리고 잠깐 개더니 종일 구름이 끼고 흐리다.
뒤의 강물이 크게 넘쳤지만 <지명>오천(浯川)지명>의 뱃길은 통한다고 하였다. 종일 빈집만 지키면서 괴롭게도 말 상대가 없으니 무료함이 매우 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