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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29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을 먹기 전에 구름이 끼고 흐리다가 늦은 아침 뒤에 쨍쨍한 해가 나오다.
듣건대 부내(府內) 권 병방(權兵房)이 환갑이 내일 있다고 하여서 소실(小室)이 하인을 보냈는데 저녁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이편에 <인명>재춘(在春)인명>에게 편지를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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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3일
| 哲宗 12
| 辛酉
| 맑고 바람 불다.
진사 재종형이 <지명>하회(河回)지명>에서 돌아왔는데, 참판 <인명>이원조(李源祚)인명>의 소초(疏草)를 베껴왔다. 그 내용은 <인명>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인명>의 추증을 청하고 또한 <인명>대산 이상정인명>의 문인 <인명>정남대(鄭南臺)인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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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26일
| 哲宗 13
| 壬戌
| 매우 춥다.
아침에 중거(仲擧)의 성복제(成服祭)를 지냈는데, 제(祭)를 마치기 전에 추위를 매우 견디기 어려워서 빨리 돌아왔다. 나 또한 올해 66세의 노인이다. 인간이 세상에서 살고 죽는 것은 살면서 면하기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세상을 살아가는 자의 마음속의 생각이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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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23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내가 설사기운이 있어 아이들이 연한 닭 몇 마리를 삶아서 억지로 올리기에 먹었는데, 저녁 후에 가슴 속이 음식이 쌓인 것 같았고 밤에 이윽고 마른 곽란(癨亂)이 되어 거의 죽을 뻔하였다. 목유회소산(服木萸回蘇散)을 복용하였는데, 갑자기 가슴에 위로 찌르는 기운이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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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12일
| 哲宗 13
| 壬戌
| 날이 갈수록 추위가 점점 풀리다.
각 서원의 임원의 임명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치 과거를 쳐서 관직을 다투는 것과 같으니, 결코 발을 내딛을 때가 아니다. 결코 다시 벼슬길에 나아갈 때가 아니다. 사종제(四從弟) <인명>중범(重範)[김중범(金重範)]인명>이 고함을 지르는 데에서 알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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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20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오늘 <지명>하상(河上)지명>의 인편으로 비로소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편지를 받았다. 춘도기는 또 상격에만 참여했다. 삼년동안 객지의 괴로운 생활에 헛되이 내던져진 나머지에 모든 것이 이와 같으니 집에 돌아오는 것이 최상이 되는 것만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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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4월 4일
| 哲宗 13
| 壬戌
| 새벽부터 종일 비가 내리다. 또 을풍(乙風)이 몹시 좋지 않다.
근래의 비가 너무 많음을 면치 못했는데 봄 농사에 해가 없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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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28일
| 哲宗 13
| 壬戌
| 가뭄과 열기로 찌는 듯이 무덥다. 비가 올 기미가 전혀 없다.
올해의 추수는 마치 풍년이 아닌 듯하였다. 온 세상이 도둑이 되어 포악을 멈추게 한 이후에야 그치니 염려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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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2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한양지명>의 시험은 또한 매우 공정하게 하여 <지명>한양지명> 사람 중에 합격자가 거의 없었다. 장차 복방(覄榜)을 두 곳에서 돌아가며 행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타당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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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6월 15일
| 哲宗 12
| 辛酉
| 매우 덥다.
나의 병이 더위에 구토와 설사가 생겼는데, 설사는 물이 쏟아지는 것과 같아서 하루에 대여섯 차례였다. 입맛이 크게 변하고 정신이 이미 수습할 수 없는데, 이것이 어찌 일흔의 노쇠한 나이에 감당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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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23일
| 哲宗 12
| 辛酉
| 맑고 흐리다.
아침에 면내(面內)의 산을 유람하는 벗들과 동사(洞舍)에 모여서 식사를 하였다. 계아(季兒)는 형들의 소식을 물으려고 <지명>송지(松枝)지명>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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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2월 23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어제 저녁에 하상(河上) 인편으로 온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편지를 보니 이번 달 11일에 보낸 것이었다. 편지 내용에 편안히 독서를 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유곡(酉谷) 진사(進士) <인명>권평중(權平仲)인명>이 10일에 <지명>한양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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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9일
| 哲宗 13
| 壬戌
| 날이 조금 풀리다.
낙연서원(洛淵書院)에 정알사(正謁事)로 서원에 들어가니 모인 사람이 11명이었다. 족제(族弟) <인명>군탁(君鐸)인명>이 말을 전해와 그와 더불어 막혔던 회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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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4월 10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늦은 아침 뒤에 아이들이 성묘하는 일로 모음(慕音)에 갔다가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절에서 유숙했으니 내일이면 일찍 도착하리라 예상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전하기를 <지명>진양(晉陽)지명> 난민이 도내의 모모 폐읍을 사통한 것이 11개, 또는 13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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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25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중거(仲車)의 장례가 모레 있는데 면내의 알고 지내던 친구들 중에 일로 인해 방문한 사람들이 많아서 종일 어수선했다. 아침에 <인명>수 아(守兒)[김수흠(金守欽)]인명>, 제 아(濟兒) 두 아이와 우 형(禹兄)이 모음사(慕音寺) 동구에 가서 새로 정해진 터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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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12일
| 哲宗 13
| 壬戌
| 종일 바람이 불고 바람 끝에 서늘한 기운이 있다.
도처의 소문이 모두 흉년으로 판가름 났다고 하니 식구가 많은 집에 원래 군색하고 급급한 나머지 미리 시름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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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6월 4일
| 哲宗 13
| 壬戌
| 또한 몹시 덥다.
스스로 마른 곽란의 증세를 헤아려보니, 어제 또 발병하였다. 의원을 불러 약을 묻지 않을 수 없어서 <인명>제아(濟兒)인명>를 보내서 오천(浯川) 박 의원[朴醫]을 불러 와서 증상을 논하고 약을 조제하여 내어주었다. 듣건대 상주에서 변을 당한 집은 상원(上員)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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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7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저동(芋洞)지명>의 <인명>이택견(李宅鍵)인명>이 보러왔다. 올해 낙연서원(洛淵書院)의 재석(齋席)으로 향례가 멀지 않아 와서 의논할 것이 있었다. 그로 하여금 여차여차하게 했다. 둘째 아이는 집의 담장 공사를 시작했고, 막내 아이는 <지명>오천(浯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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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15일
| 哲宗 13
| 壬戌
| 흐리고 춥다.
진사(進士) 재종형(再從兄)이 병산서원의 분향으로부터 돌아와서 회중의 경개를 전해주었는데, 접소의 일은 모두 <지명>하상(河上)지명>로 탓을 돌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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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2월 11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니 크게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릴 징조이다.
듣기로 <지명>오동(烏東)지명> 등지에 7, 8일 간에 병으로 죽은 자가 있다고 하였다. 생령(生靈)의 액회(厄會)가 어찌 갈수록 더욱 이와 같으리오. 봄이 오면 전염병이 심해질 것인데 어찌하겠는가! 밤에 바람이 크게 불고 춥다. 내 감기는 이미 한 달 가량 낫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