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1년 12월 6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면순(面巡)의 초초(初抄)는 이미 시권을 거두는 데에 이르렀지만 류 예안(柳禮安)이 영문(營門)의 수판(壽板)하는 일로 이달 초에 <지명>봉화(奉化)지명>에 들어가 그 돌아오는 것이 정확히 어느 때인지 모른다. 이에 재초(再抄)한 다섯 수를 다시 내어 막내아이로 하
-
1862년 1월 24일
| 哲宗 13
| 壬戌
곧 친기(親忌)이다. 어제 저녁에 뜻하지 않게 발걸음이 중거(仲擧)의 고복(皐復)할 때에 미쳤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니, 또한 정리가 지극한 것이다. 아침 늦게 <인명>류의백(柳懿伯)인명> 형이 왔다. 그의 사돈 중거(仲擧)의 시상(屍床)의 앞에서 곡하고,
-
1861년 12월 24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한 해가 조금 남아 온갖 감회가 마음에 교차하는데 날마다 글을 쓰는 일도 적막함을 깨트리지 못하니 매우 감당하기 어려웠다. 깊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인명>김철(金鐵)인명>이 <지명>매원(梅院)지명>에서 돌아왔다.
-
1862년 1월 10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눈이 내리고 이내 바람이 크게 불고 차다.
정알례(正謁禮)를 행하고 강당에 나와 앉았는데 장차 임원을 바꿀 쯤에 재석(齋席)을 뽑는 논의가 좌중의 물의에 미쳤다. <인명>경휴(景休)인명>의 맏아들 <인명>이형좌(李衡佐)인명>는 나이가 지금 노성(老成)하고 또한 이름 난 선비이다. 부형(父兄)이 몸이 좋지
-
1862년 4월 11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동(洞)의 하임(下任)이 와서 수영(水營)의 관문을 보여주었다. 바로 병조 서리청(書吏廳)이 지난달 사이 군액장부를 모조리 불태워 급급하게 수정하려고 각 영문으로 하여금 베껴 합치게 했다. 해당 도와 열읍의 군총(軍摠)은 5월내로 상납하기로 되어있었고, 또 관의 전령으
-
1862년 2월 26일
| 哲宗 13
| 壬戌
| 바람이 불다.
상을 따라서 백산(白山)에 갔다가 저녁 무렵 돌아왔다. 기운이 빠져 나른한데 한 늙은 여종이 다리 안마를 잘 해서 몇 경 동안 편히 잠들었다. 저녁에 류 예안(柳禮安)이 한 마디 말도 없이 지레 돌아갔다고 들었으니 애통하다.
-
1862년 1월 25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크게 바람이 불고, 밤낮이 지나도록 세밑의 추위와 다를 게 없다.
<지명>노가리(老稼里)지명>의 <인명>류정조(柳靖祚)인명> 형이 방문하였다. 한참 대화를 나눴다.
-
1862년 5월 22일
| 哲宗 13
| 壬戌
| 맑고 바람이 불다.
듣건대 <지명>한양지명> 안은 가뭄이 매우 심하다고 하였다. 요사이의 날씨를 살펴보니, 산남(山南)도 가뭄 기운이 있고 또한 도처에 일부러 불을 지르는 변고가 큰 가뭄의 조짐이 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
1862년 1월 11일
| 哲宗 13
| 壬戌
| 조금 풀리다.
마침 판교(板橋)를 떠나는 심부름꾼 편이 있어서 귀정(龜亭)에 안부편지를 붙이고 아울러 세 권의 책을 보냈다. 그 중 2 책은 『재조번방지(再造藩邦誌)』 이고 1 책은 『기효신서(紀效新書)』이다. 지난번에 빌려온 것인데 잃어버릴 단서가 없겠는가? 또한 백암(栢岩) 1권
-
1862년 4월 12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오늘은 <인명>규징(奎徵)인명>의 관례이다. 혈혈 성정한 아이가 변수(弁首)에 이르렀으니 다행이었다. 들으니 사일(沙日) 족종 군(族從君)이 <지명>한양지명>에서 비로소 돌아와 <지명>반촌지명> 주인 <인명>문환(文煥)인명>이 월초에 죽었다고 전하니 매우
-
1862년 4월 3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지명>선성(宣城)지명>의 기별을 들으니 우리 문중의 한 사람이 낙천사(洛川社) 개제(改題)하는 모임에 가서 참석한 것 때문에 구설이 많았다. 이름을 추심하게 하고 싶었으나 과연 마땅한지 모르겠다. <지명>법전(法田)지명>에 반정(半程) 가는 날이 되어, 인마(
-
1862년 5월 27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구름이 끼고 흐리다. 늦게 해가 나다.
차아(次兒)가 또 들을 살피러 갔다. 삼남(三南)의 나쁜 소문은 날이 갈수록 기세가 두려웠고 <지명>공주(公州)지명>의 변은 여러 도에 떠도는 것이 이와 같으니, 얼사(臬司)와 수령은 이미 위엄이 있는 명령을 내릴 수 없어서 왕법이 장차 시행되는 바가 없으니, 지금
-
1861년 3월 1일
| 哲宗 12
| 辛酉
종손 <인명>김낙주(金洛周)인명>가 <지명>달성(達城)지명> 감영에서 돌아와서 과거 시험장에 관하여 대략적인 것을 들었다. 감사(監司)는 매우 괴이하고 망령되다고 이를 만하고, 또한 지금 세상에 권세가 있는 사람이다.
-
1861년 5월 2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새벽에 꿈을 꿨는데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법전(法田) 강 참판(姜參判)의 아들 교리(校理)와 더불어 집으로 돌아와서 얼굴을 보고 사돈을 맺기를 약속했다고 하였는데 마음이 매우 미안하였고 깼다. 식사를 한 후에 어린 종이 교외로 나가 <인명>
-
1861년 12월 9일
| 哲宗 12
| 辛酉
| 따뜻하다.
명포(明浦) 족제(族弟) <인명>중옥(重玉)인명>은 그 아들에게 편지를 소매에 넣어 와서 <지명>학산(鶴山)지명> 뒤 <지명>시곡(柿谷)지명>에 사는 <인명>김필운(金必雲)인명>이 단지(丹地)의 논을 물리는 일을 청하였다. 그 청이 불미스러울 뿐만 아니라
-
1862년 2월 19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지명>하상(河上)지명> 류공후 치문(柳致文公厚) 형이 내방했다. 새 사돈 사옹 형(士翁兄)의 다섯째 동생이 갑자기 광증이 발병해서 매우 견디기 어렵다고 전했으니 불행이 심하다.
-
1862년 5월 24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인명>우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지명>망천(忘川)지명>에서 비로소 돌아왔는데, 또한 병을 얻어 간신히 부(府)에 도착하여 유숙하고 왔다. 나의 병도 온 몸이 모두 아파 종일 정신이 아득했다.
-
1862년 1월 13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눈이 꽃이 흩날리듯 땅에 떨어지다. 아침 늦게 개다. 날씨가 종일 낮 동안 구름이 끼고 흐리다. 저녁에 큰 눈이 내리고 큰 바람이 불다.
-
1862년 2월 21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지명>임하(臨河)지명> 우 형(禹兄) 댁에 종과 말을 보냈고 겸하여 <지명>망천(忘川)지명>에 편지를 부쳐서 하여금 권기하게 했다. 종증손(從曾孫) 을아(乙兒)가 <지명>우천(愚川)지명>에서 돌아와서 말하기를, ‘어제 <지명>구담(九潭)지명> 김 실(金
-
1862년 4월 5일
| 哲宗 13
| 壬戌
| 늦은 아침 뒤에 개고 해가 보이다.
<지명>법전(法田)지명>에 간 노정(奴丁)이 어둠을 타고 도착하여 들어보니 반정(半程)하는 일은 척동(尺童)이 오지 않아 우리 집의 말을 내일 내보낸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