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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9월 30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수령에게 물러남을 고했다. 돌아가는 길에 진장(鎭將)을 보고 대략 읍의 일을 언급하였다. 저물녘에 집으로 돌아왔다. 나른하고 피곤함을 떨칠 수 없었는데, 오랫동안 출입하지 않은 나머지에 처음 일어나 움직이는 데에서 나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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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1월 9일
| 哲宗 12
| 辛酉
| 새벽부터 눈이 내리다.
둘째아이가 <지명>유평(楡坪)지명>에 재목을 나르는 일이 매우 낭패스러우니 단연코 일을 멈추어야 한다. 막내아이가 부(府)에 가는 것 또한 중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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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18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소식을 듣지 못한 지가 이미 70여일이 되었으니 쓸쓸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또 그 아내가 지난 번 증상이 다시 발병했다고 한다. 심력에 한계가 있으니 실로 억누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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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23일
| 哲宗 13
| 壬戌
| 얼음이 녹아 풀릴 듯하다.
오후에 중거(仲擧)의 병이 시각(時刻)을 다투는 근심이 있다고 들어서, 또 갔는데 이미 곡소리가 방에서 나왔다. 끝내는 다시 깨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니, 고복(皐復: 초혼(招魂)하고 발상(發喪)하는 의식)한 후에 여러 번 소리 내어 통곡하고 돌아왔다. 대개 나와 중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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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6월 10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벼 뿌리에 충해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흔히 다 그러하였다. 어제 폭우가 내린 끝에 제거하지 않으면 반드시 무자년(1828) 가을과 같을 것이니, 어찌 백성들에게 재앙이 닥치는 고비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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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30일
| 哲宗 12
| 辛酉
| 가뭄 기운이 날로 심하다. 오후에는 타는 듯 더워 발광이었다.
사방에 전해 들으니 천수답에 거의 푸른 것이 없고, 콩과 태(太)도 씨가 말랐으며, 목화씨는 여물지 않았으나 너무 더워 미리 핀 꽃잎이 다 말라 떨어졌다고 했다. <지명>묘동(竗洞)지명>에 간 하인이 돌아왔는데, 들으니 <지명>칠곡지명> 등지에는 6월 초에 하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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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1월 3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판교(板橋)지명> 상답(床答)이 돌아왔다. 오계(梧溪) 교리 족숙(校裡族叔)이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는데, 인편이 없어서 답장을 못했다. 우동(芋洞) 이 아 댁(李雅宅)이 접유사(接有司)로 보러 와서 제(題)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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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9월 29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다.
봄과 여름 사이에 수령 <인명>김상현(金商鉉)인명>이 누차 한번 보기를 청했다. 더울 때는 병이 들어 꿈적거리다가 서늘해서는 연달아 집안의 연고를 만나서 과행하지 못했다. 비로소 오늘 힘써 부에 들어갔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다. 인사를 나누고 들어가 뵈었는데 도결(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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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1월 8일
| 哲宗 12
| 辛酉
| 날씨가 매우 화창하다.
장차 내일 계아(季兒)를 부중(府中)에서 고복(考卜)하는 데에 보냈다. 그가 가는 길에 수령에게 편지를 부쳐서 결가(結價)를 줄여주기를 원했지만, 어찌 기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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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17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접소성상이 와서 각처의 고제(告題)를 들였는데 돌아온 패의 내용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침 먹은 후에 계아(季兒)를 <지명>원당(元塘)지명>에서 전송했다. 옛 묘를 파내는 날짜를 물었는데 이달 29일로 정해져서 왔으나 신산은 아직도 정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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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2월 12일
| 哲宗 12
| 辛酉
| 매우 춥다.
포내(浦內) 전 우(全友)가 방문을 하여 전하길 <지명>상주(尙州)지명>는 고을의 폐단 때문에 각 면(面)의 대소민인(大小民人)이 여러 달 관(官)에 하소연을 했고 마침내 송 모(宋某)가 장형으로 죽었다고 하였다. 매우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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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2월 22일
| 哲宗 12
| 辛酉
| 아침부터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다.
방복(防卜: 세금)의 일 때문에 <인명>전재춘(田在春)인명>의 집에 <인명>만수(萬壽)인명>를 들여보냈다. 듣기로 상주목사(尙州牧使) <인명>홍한주(洪翰周)인명>가 각 면(面)의 백성들이 무리를 지어 관에 들어와 고쟁(苦爭)한 일 때문에 숙정패(肅靜牌)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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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28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한양지명> 편지 중에 <지명>의인(宜仁)지명>의 정언(正言) <인명>이만기(李晩耆)인명>가 시폐에 대한 소를 올린 것이 있었는데, 소 가운데에 역례와 서얼들이 조적(朝籍: 관직자 명단을 기록한 문서)을 뒤섞어 더럽힌다는 내용이 있으니 매우 불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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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0월 22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다.
김 판서(金判書) 계산 옹(溪山翁)의 기일이 다음 달 초4일에 있기 때문에 문중에서 심부름꾼을 보냈다. 그러므로 편지를 써서 훈 태(訓台)에게 올렸고, 겸하여 <인명>우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에게 편지를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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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9월 27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가 흐리다. 낮에 가랑비가 내리다.
저녁에 동문(東門) 안의 <인명>평이(平伊)인명>가 와서 <인명>재춘(在春)인명>의 편지를 주었다. 또한 약값을 독촉하였다. 괴이하도다. 집의 근심이 세월이 지나도 평안하지 못하여 좌우의 약값이 또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니, 이에 이르러 경영을 돌아보고 날마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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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1월 6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밤에 큰 바람이 불다.
아침을 먹은 뒤에 심부름꾼을 <지명>유평(楡坪)지명>으로 보냈는데,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니 무슨 사고가 있는지 모르겠다. 양곡(良谷) 며느리는 또 흉통 때문에 음식을 전혀 들지 않았으니 답답하기가 말할 수 없었다. 밤에 큰 바람이 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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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14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흐리고 바람이 불다.
삼구정(三龜亭)의 <인명>덕오(德吾)인명> 형 부자가 편지로 안부를 물었으나 바빠서 다만 <인명>덕오(德吾)인명>에게만 답장하였다. <인명>김휘발(金彙發)인명> 형이 편지로 안부를 묻고 <지명>매원(梅院)지명>의 <인명>이상선(李相善)인명> 형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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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2월 10일
| 哲宗 12
| 辛酉
| 따뜻하다.
가질(家姪)의 말을 들으니 연계(蓮桂)에 모인 사람들이 적을 뿐만 아니라 하상(河上)의 지절(支節)이 매우 적합하지 않아 심히 난처하다고 하였다. 청력(靑曆: 새 달력)은 본소(本所)에서 온 것인데 금년부터 큰집으로 보냈다. 병산서원을 청액(請額)한 일은 지금까지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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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21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수동(壽洞) <인명>석장(席匠)인명>이 또 <지명>한양지명>에서 내려와 이어서 함군(咸君)의 편지를 받았다. 호서(湖西)의 <지명>공주(公州)지명>에서도 변란이 일어났다고 하니, 만약 그러하다면 삼남(三南)에서 모두 난리이니, 어찌하겠는가? <지명>회덕(懷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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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25일
| 哲宗 13
| 壬戌
| 바람이 불다.
나는 지절통(支節痛)으로 매우 아팠고, 또한 소변이 적황색이었다. 혹 황달기가 있는 듯하였다. 칠십 노인의 쇠모한 지경의 한번 진탕은 그 해로움이 이와 같으니 크게 한탄하기가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