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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0월 3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다가 오후에는 개었지만 흐리다.
집에는 3명의 장정이 있었으나 계수나무 장작의 탄식은 노비 한명을 면하지 못했다. 집안의 호번(浩繁)함을 이를 들어 알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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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30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크게 안개가 끼고, 개지 않다.
부주인(府主人) <인명>순철(順哲)인명>이 와서 말하기를 주관(主官: 안동부사)이 부(府)의 사방마을에 엄하게 명령하여 밤에 다니지 못하게 하니, 대개 밤중의 독기는 반드시 사람을 많이 상하게 한다고 했다. 나는 깊은 밤중에 노강양위탕(露薑養胃湯)을 복용하였고,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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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0월 7일
| 哲宗 13
| 壬戌
| 종일 비가 내리다.
<지명>영천(榮川)지명> <지명>괴정(槐亭)지명>의 박 형(朴兄)이 내방했다. <지명>오치(梧峙)지명> 묘지기가 이른 아침에 와서 <인명>순근(順根)인명>이 어젯밤에 식솔들을 데리고 달아났다고 전했다. 아이들의 곡수(穀數), 목화 따는 역수(役數)를 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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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23일
| 哲宗 13
| 壬戌
| 서늘한 바람에 매우 쌀쌀하다. 시시때때로 가랑비가 내리다.
아침에 의원이 진맥을 하러 왔다. 담화(痰火)가 병의 원인이었다. 온담탕(溫痰湯) 15첩을 처방하여 부내약방(府內藥局)에서 집안 심부름꾼에게 지어오게 하였다. 명포족제(明浦族弟) <인명>중옥(重玉)인명>이 방문하여 오랫동안 수작(酬酢)을 하였는데 나와는 동갑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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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15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마침 <지명>우천(愚川)지명>의 인편이 있어 류 숙빈(柳淑彬)이 가지고 온 종손의 편지를 보았다. 편지 말미에 소위 시사(時事)는 이제 다시 가망이 없고 <지명>상주지명> 읍에도 불로 공격하는 것이 어제부터 시작되어 오늘 엄청 퍼졌는데 말소될 지경을 아직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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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6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부터 비가 내리다.
시간과 끊어짐이 없이 괴롭다. 듣건대 <지명>하상(河上)지명> <인명>류치흠(柳穉欽)인명>이 진주목사(晉州牧使)가 되었다고 한다. 일개 현감이 네 품계를 뛰어넘었으니 분명히 이러한 이치는 없으니, 또한 <지명>하상지명>의 말이다. <지명>서울지명> 소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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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0월 2일
| 哲宗 13
| 壬戌
| 날씨가 조금 풀리다.
교리 <인명>류겸수(柳謙叟)인명>가 어제 저녁에 찾아 왔다가 오늘 아침에 또 왔다. 연이어 서원일로 함께 걱정하고 탄식하고, 별도로 오는 20일 사이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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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29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안개가 끼다. 해를 보지 못한 것이 이미 여러 날이다.
지금 마을이 황폐하고 집안이 군색한 때를 당한 것이 비교할 만한 때가 없다. 들녘의 벼가 아직 익지 않은 것도 작은 근심이 아니다. 황 의원(黃醫員)이 조제한 온담탕(溫痰湯)을 이미 6, 7첩을 복용하였는데, 열을 더하는 바탕이 될 듯하여 오늘부터 그것을 그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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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2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비로소 한 달 남짓 구름이 끼고 흐린 뒤끝에 하늘에 뜬 해를 보았으니 <지명>촉(蜀)지명> 땅의 개가 짓을 만하다.[蜀犬可吠] 오늘 아이들이 사랑방과 퇴방(退房)의 구들을 고쳤다. 퇴방(退房)은 날이 저물도록 마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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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9월 4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밥을 먹은 뒤에 <지명>사곡(寺谷)지명>에 가서 조고(祖考) 묘에 배알하였다. 차아(次兒)는 우 우(禹友)와 함께 산소를 찾는 길을 떠났다. 오늘이 5일 째인데 돌아오지 않으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의 다리 종기는 낫지 않았는데 여러 날 동안의 산행은 실로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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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4일
| 哲宗 13
| 壬戌
| 지난밤의 비가 오늘 아침까지 한결같다.
땔나무가 떨어진 탄식은 고사하고 이렇게 농사철을 만나 <인명>영노(英奴)인명>가 돌아오지 않으니 더욱 걱정스럽다. 내 병은 쌓여서 가슴과 배 사이에 매번 먹고 마신 뒤에 역력하게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난다. 세 차례의 관격(關格)으로 화기가 이를 말미암아서 올라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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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15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또 매우 서늘하다.
뒤늦게 들으니 곤신방(坤申方)의 성운(星隕)이 비처럼 내렸다고 한다. <지명>풍산(豊山)지명>의 인척 <인명>이귀수(李龜叟)인명>가 『설문청독서록(薛文淸讀書錄)』과 『해좌유고(海左遺稿)』 한 책을 가져와서 주니 매우 애쓴 것이라서 받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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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27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가랑비가 내리고, 이어서 크게 안개가 끼었다.
나는 또 오전에 고통이 있었다. 차아(次兒)가 오늘 낮에 갑자기 회증(蛔症: 회충으로 인한 배앓이. 거위배)이 일어나 정신없이 날을 보냈다. 계아(季兒)가 <지명>오천(浯川: 예천 호명 오천리)지명>에 약을 지으러 가서 두 첩을 지어왔다. 제때 복용시켰으나 효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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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6월 8일
| 哲宗 13
| 壬戌
| 맑고 종일 바람이 불다. 바람 끝이 매우 서늘하니 이상할 만하다.
오후에 집 하인이 돌아와 <인명>김여용(金汝用)인명>의 답장을 받아 보았다. 오늘 오후에 출발하여 내일 아침에 귀촌(貴村) 앞을 지나갈 것 같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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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29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어젯밤 꿈속에서 한 귀인과 만나 조용히 이야기를 했으니 내가 실직(實職)을 얻을 조짐이 아니겠는가! 거촌(巨村) 김 척손(金戚孫)이 보러왔다. 유곡(酉谷) 사가(査家)에 편지를 부쳐서 계아(季兒)가 병 때문에 오랫동안 문후를 드리지 못한 것을 대략 말했다. 어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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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9월 10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다.
늦은 아침에 <인명>우이원(禹以遠)인명> 형이 내년 봄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수동(繡洞) 오한(吳漢)이 자리를 지고 상경하여 돌아오는 길에 들어와 <인명>우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이번 달 2일에 보낸 편지를 전했다. 또 부한(府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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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26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가 구름이 끼고 흐리다.
오늘 내간(內間)으로 하여금 또 팔선주(八仙酒)를 빚게 했다. 부주인(府主人) <인명>서운(西雲)인명>이 소리(所吏)의 고목을 가지고 왔다. 대개 포저(浦底) 홍 별감(洪別監)의 아들 <인명>대유(大裕)[홍대유(洪大裕)]인명>는 그의 아비가 감영에 올린 소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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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9월 7일
| 哲宗 12
| 辛酉
| 바람의 기세가 조금 그쳤다. 추위가 또한 덜했다.
여름을 지낸 아이들에게 모두 이증(痢症)이 문득 한꺼번에 왔는데, 이 증세 때문에 사망한 자가 많았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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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6월 13일
| 哲宗 12
| 辛酉
| 매우 덥다.
오늘은 초복이다. 전부터 초복의 전에는 이같이 찌는 듯한 더위가 없었으니, 이에 가을의 기운이 점차 생겨날 듯하다. 오늘부터 가뭄이 매우 극심하였다. 수답(水畓)은 다 충해를 입었고 천수답(天水沓)은 모두 한재(旱災)를 입었으니, 농사일의 흉흉함이 날로 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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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8월 3일
| 哲宗 12
| 辛酉
| 종일 바람기가 있었고 매우 찌는 듯 무더워 큰 비가 내릴 징조가 있는 것 같았으나 한 방울도 내리지 않다. 밤에 바람 소리가 크게 나다.
저녁에 <인명>구정(龜亭)인명> 하인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