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2년 2월 9일
| 哲宗 13
| 壬戌
| 눈이 조금 내리다.
<지명>임하(臨河)지명>의 <인명>권성지(權誠之)인명> 형이 방문하여 반나절 동안 대화하였다. 이 형은 <지명>상주(尙州: 상산(商山))지명>에서 왔으므로, <지명>우천(愚川)지명>의 사형(査兄) 형제가 함께 내려오지 못했다고 전했다.
-
1862년 11월 16일
| 哲宗 13
| 壬戌
눈이 대지를 덮어서 땔나무를 할 길이 없는 탄식이 이처럼 극심한 데에 이르렀다. <인명>수아(宇兒)[김수흠(金守欽)]인명>은 어느 곳에서 머무르는지 모르겠고, <인명>우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지명>한양지명> 소식도 용이하게 계속 듣기 어려우니
-
1862년 8월 9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내 한기는 5일 마다 일어났는데 급기야 처음 4일 만에 한기가 일어났다. 사시(巳時)에 갑자기 정신이 희미해져 자고 싶어서 청방(廳房)에 들어가 편안하게 잤다. 이것은 약효인 것 같다.
-
1862년 9월 24일
| 哲宗 13
| 壬戌
| 풍세가 매우 춥다.
<지명>천전(川前)지명> 내행이 필시 저녁에 닿을 것이므로 미리 분부하여 집 근처 10리 안에 불을 피우게 했으나 저물지 않아 잘 도착했다. 그 집의 근검함을 상상할 만 했다. 사형이 데리고 왔는데 여러 만에 얼굴을 대하니 위로와 기쁨을 느꼈다. 가질(家姪)이 오늘
-
1862년 11월 10일
| 哲宗 13
| 壬戌
| 먹구름이 끼고 춥다.
나는 감기가 더쳐서 기침을 많이 했고 밤에는 두통이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한밤중에는 잘 잤다.
-
1862년 4월 8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가 비가 조금 내리다. 저녁에 또 비가 내리다.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오늘 모음사에 성묘하고자 포(脯), 과일, 고유문(告由文)을 갖추었으나 비올 기미가 있어 하지 못했다. 가질(家姪)이 <지명>원곡(原谷)지명> 송호서원의 입향 모임에 갔다. <지명>원촌(遠村)지명> 척손(戚孫)
-
1861년 11월 2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우천(愚川) <인명>류주목 숙빈(柳疇睦淑彬)[류주목(柳疇睦)]인명>이 그의 삼종제와 함께 찾아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듣건대 그의 막내숙부가 조정에 들어가 제용감부봉사(濟用監副奉事)가 되었다고 하니, 매우 다행이다.
-
1861년 12월 28일
| 哲宗 12
| 辛酉
| 또한 추위가 심하다.
아침에 답장을 쓰고 망천(忘川) 하인을 보냈다. 듣기로 조정으로부터 별천(別薦: 별도로 관리 후보를 천거)한다는 공문이 있다고 하니 세상이 어찌 공론이 있겠는가.
-
1862년 2월 6일
| 哲宗 13
| 壬戌
| 바람이 불다.
저녁에 들으니 <지명>유곡(酉谷: 봉화 유곡리)지명>의 <인명>권수도(權燧度)인명> 형이 노병(老病)으로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사람됨이 매우 애석하다. 그 장손(長孫)의 혼인은 우리 마을의 족질(族姪) 집으로 정했는데, 어떠할지 모르겠다.
-
1862년 6월 25일
| 哲宗 13
| 壬戌
| 또 바람이 불다.
또 바람이 부니 큰 비가 내릴 조짐인 듯하다. 밤에 아이들이 청당(廳堂)에 모였다가 묵었는데, 도둑이 옷가지를 모두 가지고 갔다. 자처한 점이 없지 않으니 책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1862년 9월 20일
| 哲宗 13
| 壬戌
| 화창하다.
맹일(孟逸), 중일(仲逸) 형제가 방문했으니 대개 예전에 같은 면의 오래된 친구이다. 한나절동안 이야기 나누었다. <지명>원촌(遠村)지명> <인명>이만설(李晩卨)인명> 형이 또한 방문했다. 오전에 또 기운이 좋지 못했다.
-
1862년 9월 22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차아(次兒)가 아침에 초택 걸음을 떠났다. 법전(法田) 강 랑(姜郞)이 또 여기서 부에 들어와 그 편에 권 병방(權兵房)과 전 생(田生)에게 보내는 서봉을 부쳤다.
-
1862년 9월 29일
| 哲宗 13
| 壬戌
| 온화하다.
저녁에 들으니 수아(守兒)가 초택(抄擇) 비화(比畫)에 들었으나 끝내 산 밖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그 아우가 반년 동안 복과(覆科)에 마음을 수고롭게 한 일이 매우 분탄할 했다. 게다가 반 천리 밖에 있으며 필시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심야에 심부름꾼을
-
1862년 1월 3일
| 哲宗 13
| 壬戌
| 또 바람이 춥고 눈이 조금 내리다.
어제 저녁에 우리 마을도 화로를 가지고 종을 때려 머리가 터져서 거의 죽을 지경에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진실로 서종질(庶從姪)을 가르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위태롭고 두려운 소문이 <지명>소산(素山)지명>, <지명>현애(玄厓)지명> 보다 밑돌지는 않을 것이
-
1861년 10월 28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저녁에 비가 내리다.
<지명>하상(河上)지명> 세덕사(世德祠) 입향회(立享會)에 가서 참석하였다. 열흘이나 이가 아픈 나머지 여럿이 함께 있는 것이 실로 어렵지만 힘써 병든 몸을 끌고 나아가 참석하였다. 저녁에 비가 내리다.
-
1861년 12월 4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사급 족질(泗汲族姪) 저동 빈(楮洞賓)이 찾아왔다. 부모를 여의고 홀로 남은 인생이 자못 성립할 희망이 있으니 위안이 되었다. 듣기에 <지명>감현(甘縣)지명>의 은항아리가 지금까지 값을 기다린다고 하니 매우 우스울 만하다.
-
1862년 1월 4일
| 哲宗 13
| 壬戌
| 또 춥다.
망천(忘川)의 대상(大祥)이 내일 있으나 아이들은 기일에 구애되어 내일 새벽에 제사를 파한 후 들어가려고 했다. 그래서 편지를 여러 상중의 형들에게 썼고, 아울러 임하(臨河) 우 형(禹兄)과 천전(川前) 진사(進士) <인명>김문옥(金文玉)인명> 형에게 부쳤다. 대게
-
1862년 2월 11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아침에 접소(接所)의 성상(城上)이 유사(有司)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편지 중에 말하기를 ‘<지명>예안[宣城]지명>에서 시권(詩卷)을 들이기를 독촉함이 있는데, 자신이 처한 바에 매우 감당하기가 어려우므로 장차 문기를 수정하고 겸하여 삼단(三單: 세번째 단자)을
-
1862년 3월 24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지명>소호(蘇湖)지명>의 행상(行喪)에 일꾼을 빌리는 일로 촌중에 갔다. <지명>형호(衡湖)지명>로 돌아오는 노목(老牧) 이 진사(李進土)에게 들으니 재종형에게 남의 불행을 다행으로 여기고 수탈했다는 등의 말이 있어 분판(粉板)에 써서 보인다는 거조가 있다고
-
1861년 11월 1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남흥(南興) <인명>안이온(安而溫)인명> 형이 찾아왔다. 중대사(中臺寺) 존승(尊僧) <인명>회은(晦隱)인명>이 보러 왔다. 한양 하인의 노정(路程)을 계산하니 오늘은 성균관에 들어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