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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28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인명>범악(範岳)인명> 놈이 그 형의 빚 때문에 마을에서 죄를 얻어 처자식을 버리고 달아날 때 그 처로 하여금 손가락을 베어 잊지 않겠다는 뜻을 표하여 올리게 했으니 그 극악한 성품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를 꾸짖어서 보냈다. <지명>하상(河上)지명>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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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7일
| 哲宗 13
| 壬戌
| 가랑비가 내리고 바람이 차다.
위장(衛將) <인명>김계한(金啓澣)인명>이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렀기에 아이들에게 편지를 부치고 아울러 얼마간 수작(酬酢)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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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10일
| 哲宗 13
| 壬戌
| 종일 비가 개지 않다.
새벽에 다시 인말(寅末)에서 묘초(卯初) 사이에 또 약간의 한기가 있었고 전처럼 열이 났다. 계아(季兒)가 또 <지명>연곡(淵谷)지명>에 약을 물으려고 갔는데 종일 비가 개지 않아서 온 몸이 흠뻑 젓을 것이다. 만약 <지명>저전(苧田)지명>에서 묵는다면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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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2일
| 哲宗 12
| 辛酉
| 맑고 춥다.
<지명>계상(溪上)지명> 정언 <인명>이만송(李晩松)인명>이 찾아 왔다. <지명>현애(玄厓)지명> <인명>이문여(李文如)인명> 형의 부음을 갑자가 들었다. 함께 늙어가는 사람이라 슬픔과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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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21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지명>하회지명> 류 첨추(柳僉樞)의 답장을 받았다. 계아(季兒)가 오늘밤에 또 어린자식의 상이 있었으니, 몹시 참담하고 측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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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27일
| 哲宗 13
| 壬戌
| 날씨가 조금 풀리다.
그저께 종손(從孫) <인명>낙중(洛中)[김낙중(金洛中)]인명>이 <지명>예안(禮安: 선성(宣城))지명>에서 돌아왔다. 전하기를 <지명>예안(禮安)지명> 수령이 그믐에서 초승사이에 나와서 면중(面中)에서 일을 만들고자 기약한다고 하니, 매우 잘못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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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17일
| 哲宗 12
| 辛酉
| 흐리다.
새벽에 아픈 몸으로 선고(先考)의 제사에 참석했다. 작년에는 벼슬살이로 참석하지 못했고 금년에도 참석하지 않는다면 내년 일은 알 수가 없으므로, 슬픈 마음이 밀어 닥쳐 병이 더치더라도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사를 지낸 후에 나와 누우니 숨이 차는 증상이 배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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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5일
| 哲宗 12
| 辛酉
| 아침부터 서남풍이 크게 일어나다. 사방의 산에 황사 기운이 있는 듯하다.
오후에 전해 들으니 올봄 감회시(監會試: 감시의 회시)에서 <지명>영남지명> 전역에 합격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지명>안동지명>은 방목(榜目)에서 빠졌다고 하니 전고에 없던 일이다. <지명>소산(素山)지명> <인명>김하균(金夏均)인명> 형이 이달 초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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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22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둘째 아이가 주아(周兒)와 함께 어제 밤에 <지명>도림(道林)지명>에 가서 잤다. 아침에 출발했는데, 대개 정과(廷科)가 내달 초 2일에 있어 곧 임박 했으나 말이 거듭 먼 길을 갔다 와 걱정이 적지 않다. 아침 식사 전에 계아(季兒)로 하여금 여러 가지 약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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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22일
| 哲宗 12
| 辛酉
| 아침에 한바탕 서풍이 불고 비가 내리다.
아침에 한바탕 서풍이 비를 불어 당으로 들어 왔고, 바람이 불어 계단 앞의 초목이 쓰러졌다. 오후에 <지명>황해도(黃海道) 서흥부(瑞興府) 동면(東面) 마산동(馬山洞)지명>에 거주하는 자가 윤일(允一) 이고 반남인(潘南人) 사인(士人) <인명>박현양(朴賢陽)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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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9월 18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또 안개 끼고 흐리다.
<지명>금곡(金谷)지명> <인명>박강수(朴崗叟)인명> 형이 그 손자를 시켜서 맏아들 <인명>박주종(朴周鍾)인명>이 임금이 전한 것을 받은 것에 대한 허실을 와서 알아보게 했으니 대개 삼아(三兒)의 편지 속에 정녕하게 여러 번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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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20일
| 哲宗 12
| 辛酉
| 아침부터 구름이 끼고 흐리다.
둘째아이의 서행(西行)이 오늘 아침 갑자기 결정되었다. 비단 감시(監試)를 보는 것이 오는 18일에 있고, 그의 아우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도기과(到記科)가 생각건대 다음 달 초에 있으니, 객지에서 서로 의지하는 도리가 이번 가는 것에 없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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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0월 24일
| 哲宗 12
| 辛酉
| 가랑비가 내리다.
<지명>하상(河上)지명>의 세덕사(世德祠) 입향(入享) 회문(回文)이 왔다. 이번 달 소회(小晦)에 입암(立岩) <인명>류 전서(柳典書)[류중영(柳仲郢)]인명>와 귀촌(龜村)을 병향(並享: 위패를 나란히 하여 제사함)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 것인데, 성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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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14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나는 아침부터 차가운 당(堂)에서 손님을 접대하여 스스로 한기(寒氣)에 닿았는데, 낮 동안에 크게 한기(寒氣)가 일어서 종일토록 음식을 폐하였으니 고통이 지극하다. 매우 괴이하게 여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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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6월 4일
| 哲宗 12
| 辛酉
| 흐리다가 볕이 나다가 하다. 가뭄 기운이 더욱 심해지다.
낮에는 농사일의 흉사를 고하고, 밤에는 혜성의 꼬리가 점점 길어졌다. 문외(門外)의 부세를 재촉하는 서리(胥吏)가 날마다 와서 감독하여, 괘상(卦象: 효상(爻象))이 매우 아름답지 않게 되니, 어찌하는가? 전해 들으니 양백(兩白: 소백산맥과 태백산맥) 사이의 여러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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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6월 3일
| 哲宗 12
| 辛酉
| 바람기 있고, 매우 덥다.
들으니 <지명>상계(上溪)지명> 이 태(李台)의 양례(襄禮: 장례)가 이달 9일이라, <지명>봉화현(奉化縣)지명> <지명>전역리(前驛里)지명>에 가는 일을 정했는데, 마땅히 문내(門內)에 한 명을 데려가야 하나, 더위가 이와 같고 비 또한 알 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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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27일
| 哲宗 12
| 辛酉
| 맑고 종일 바람이 불다.
둘째아이가 <지명>서울지명> 길을 떠난 노정을 헤아려보니 오늘 성에 들어갔을 것 같은데, 타고 간 말은 매우 지쳤을 것이고 또 어제 비가 내렸으니 뜻대로 되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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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2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비가 내리다가 늦은 아침 뒤에 조금 개고 저녁에 또 비가 내리다.
내가 가슴속에 체기가 있어서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 둘째아이가 <지명>오천(浯川)지명>에 가서 약 두 첩을 지어서 저물녘에 돌아왔다. 대개 나의 병은 온전히 풍화로서 치료하는 것이 옳을 듯한데, 박 의원(朴醫員)의 말은 매번 상반되니 이것이 근심스럽다. 한 달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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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1월 14일
| 哲宗 14
| 癸亥
| 조금 춥다.
아침 전에 고르지 않은 기운이 있더니 아침 후에 오한이 일어나고 이어서 열이 나서 수 식경 동안 혼절했다. 이는 열 달 동안 병을 앓으면서 처음 있는 일이고, 또 침이 아교와 같으니, 그 원기가 적패했음을 생각할 수 있다. 크게 변한 위의 기운이 점점 완전히 막히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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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3일
| 哲宗 12
| 辛酉
| 흐리다.
저녁에 족제(族弟) <인명>중칠(重七)인명>이 <지명>화천(花川)지명>에서 돌아와 영선(瀛選)의 소식을 전했는데 가질(家姪)은 또 들지 못하였으니 듣고는 분하고 부끄러움을 이길 수 없었다. 저녁밥을 먹지 못하고 이어서 밤에 잠들지 못했으니, 여러 달 앓아누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