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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이진상(李晉祥) 서간(書簡) 별지(別紙)
1851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진상,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1년(철종2년)이진상(李晉祥)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별지로, 자신의 친척집 행랑채에 붙어살던 하인이 억울한 일로 끌려가자 구원을 청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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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 이인량(李寅亮) 서간(書簡)
1852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인량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2년(철종 3) 기하(記下) 이인량(李寅亮)이 보낸 서찰로 상대의 시를 판각하여 보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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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유병기(柳柄基) 서간(書簡)
1854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유병기, 김인섭
| 산청 단계 상산김씨 김인섭후손가
1854년(철종4) 11월 14일 유병기(柳柄基)가 단계(端磎) 김인섭(金麟燮)에게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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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신우(愼愚)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
1854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신우,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4년(철종 5)에 신우(愼愚)가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상대의 아들이 과거에 급제한 사실을 축하하고 자신의 조카가 과거에 급제한 사실을 전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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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이해상(李海祥)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
1854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해상,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7년(철종 8)이해상(李海祥)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오른 것을 축하하며 보낸 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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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조석우(曺錫雨) 서간(書簡)
1854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조석우, 수취인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4년(철종 5) 기하(記下) 조석우(曺錫雨)가 보낸 서찰로, 자신이 잉임(仍任)어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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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이재우(李在羽)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185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재우,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5년(철종6) 11월 초 6일, 시하생(侍下生) 이재우(李在羽)가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탐라록(耽羅錄)』을 빌려줄 수 있는지, 이연서원(伊淵書院)의 도회(道會)와 소행(疏行)은 괜찮았는지, 최치홍(崔致弘)의 서찰을 전하려 했는데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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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이재우(李在羽)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별지(別紙).
185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재우,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5년(철종6) 11월 초 6일, 시하생(侍下生) 이재우(李在羽)가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강경(講經)에 대한 문의(文義)를 초록해 두었으니, 한 번 비평해 달라는 별지(別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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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김학성(金學性) 서간(書簡)
185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김학성,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5년(철종 6) 기하(記下) 김학성(金學性)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로 자신의 시를 고쳐 판각하여 보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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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김학성(金學性) 서간(書簡) 별지(別紙)
185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김학성,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5년(철종 6) 기하(記下) 김학성(金學性)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에 첨부된 별지로, 박(朴)·권(權) 두 사람의 송사문제에 관하여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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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김진형(金鎭衡)이 수취자 미상(未詳)에게 보낸 간찰.
1856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김진형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6년(철종7) 4월 18일, 세소제(世小弟) 김진형(金鎭衡)이 수취자 미상(未詳)에게 내달 초에 시골 행차가 있을 터인데, 행장을 꾸릴 자금이 없다고 하고, 9월쯤에 혹시 서울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심정을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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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문진(文鎭)이 수취자 미상(未詳)에게 보낸 답신.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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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문진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6년(철종7) 10월 16일, 아우 문진(文鎭)이 수취자 미상(未詳)에게 초건(草件) 1책과 「노성부(盧城賦)」와 「백운루 상량문(白雲樓上樑文)」 을 보내니, 친구사이의 정으로 봐달라는 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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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이휘찬(李彙纘) 서간(書簡)
1856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휘찬,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6년(철종7)이휘찬(李彙纘)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로 선고(先考)의 상(喪) 때문에 힘든 삶을 이어가는 자신의 심정을 읊고, 이원조가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제수(除授)된 것을 축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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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이휘찬(李彙纘) 서간(書簡) 별지(別紙)
1856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휘찬,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6년(철종7)이휘찬(李彙纘)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에 첨부된 별지(別紙)로 자신을 오위장(五衛將)에 주선해달라고 청탁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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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이휘찬(李彙纘) 서간(書簡) 별지(別紙)
1856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휘찬,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6년(철종7)이휘찬(李彙纘)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에 첨부된 별지(別紙)로 신주(神主)를 만드는 나무[主材]가 결함이 있으니, 바르는 분 한 통을 보내달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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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某年) 모월 8일에 경(敬)이 수취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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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경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모년(某年) 8일, 아우 경(敬)이 수취자 미상에게 이 모임이 초 열흘 경이라면 내일 나가겠으며, 신곡(新谷)의 일은 사▣(士▣)가 움직여 나아가는 데에서 나온 것이니, 세상의 일을 헤아릴 수 없다고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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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장석우(張錫愚)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185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장석우,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7년(철종 8) 7월 23일, 기하(記下) 장석우(張錫愚, 1787-?)가 대포(大浦)에 사는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1) 정자(亭子)의 기문(記文)을 지어 보내니 이 본 그대로 각수(刻手)에게 부쳐서 새겨 걸어 놓으라는 내용의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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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신석우(申錫愚)가 수취자 미상(未詳)에게 보낸 답신.
185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신석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7년(철종8) 3월 19일, 기하(記下) 신석우(申錫愚)가 수취자 미상(未詳)에게 세도(勢道)있는 집안을 끼고 족당(族黨)을 침범한 임백학(林白鶴)을 궁 밖으로 보냈으니, 멋대로 침범하는 근심이 없어질 것이라고 보낸 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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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김노선(金魯善) 서간(書簡)
185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김노선,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7년(철종 7)김노선(金魯善)이 참판(參判)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로, 이원조의 집안이 추영(追榮)된 것을 축하하며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의 글을 손을 보아 달라면 부탁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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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조기석(趙基碩) 서간(書簡)
185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조기석,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7(철종 8) 11월 15에 조기석(趙基碩)이 이원조(李源祚)의 형인 원호(源祜)에게 보낸 혼서(婚書)로, 지난번 계씨 대감에게 사주단자를 받았고, 연길(涓吉)을 보내니, 의제(衣製)를 보여 주기를 바라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