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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김학성(金學性) 서간(書簡)
185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김학성,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5년(철종 6) 기하(記下) 김학성(金學性)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로 자신의 시를 고쳐 판각하여 보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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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김학성(金學性) 서간(書簡) 별지(別紙)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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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김학성,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5년(철종 6) 기하(記下) 김학성(金學性)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에 첨부된 별지로, 박(朴)·권(權) 두 사람의 송사문제에 관하여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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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김진형(金鎭衡)이 수취자 미상(未詳)에게 보낸 간찰.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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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형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6년(철종7) 4월 18일, 세소제(世小弟) 김진형(金鎭衡)이 수취자 미상(未詳)에게 내달 초에 시골 행차가 있을 터인데, 행장을 꾸릴 자금이 없다고 하고, 9월쯤에 혹시 서울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심정을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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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문진(文鎭)이 수취자 미상(未詳)에게 보낸 답신.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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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진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6년(철종7) 10월 16일, 아우 문진(文鎭)이 수취자 미상(未詳)에게 초건(草件) 1책과 「노성부(盧城賦)」와 「백운루 상량문(白雲樓上樑文)」 을 보내니, 친구사이의 정으로 봐달라는 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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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이휘찬(李彙纘) 서간(書簡)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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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이휘찬,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6년(철종7)이휘찬(李彙纘)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로 선고(先考)의 상(喪) 때문에 힘든 삶을 이어가는 자신의 심정을 읊고, 이원조가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제수(除授)된 것을 축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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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이휘찬(李彙纘) 서간(書簡) 별지(別紙)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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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이휘찬,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6년(철종7)이휘찬(李彙纘)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에 첨부된 별지(別紙)로 자신을 오위장(五衛將)에 주선해달라고 청탁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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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이휘찬(李彙纘) 서간(書簡) 별지(別紙)
1856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휘찬,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6년(철종7)이휘찬(李彙纘)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에 첨부된 별지(別紙)로 신주(神主)를 만드는 나무[主材]가 결함이 있으니, 바르는 분 한 통을 보내달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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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某年) 모월 8일에 경(敬)이 수취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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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경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모년(某年) 8일, 아우 경(敬)이 수취자 미상에게 이 모임이 초 열흘 경이라면 내일 나가겠으며, 신곡(新谷)의 일은 사▣(士▣)가 움직여 나아가는 데에서 나온 것이니, 세상의 일을 헤아릴 수 없다고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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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장석우(張錫愚)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185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장석우,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7년(철종 8) 7월 23일, 기하(記下) 장석우(張錫愚, 1787-?)가 대포(大浦)에 사는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1) 정자(亭子)의 기문(記文)을 지어 보내니 이 본 그대로 각수(刻手)에게 부쳐서 새겨 걸어 놓으라는 내용의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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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신석우(申錫愚)가 수취자 미상(未詳)에게 보낸 답신.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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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신석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7년(철종8) 3월 19일, 기하(記下) 신석우(申錫愚)가 수취자 미상(未詳)에게 세도(勢道)있는 집안을 끼고 족당(族黨)을 침범한 임백학(林白鶴)을 궁 밖으로 보냈으니, 멋대로 침범하는 근심이 없어질 것이라고 보낸 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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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김노선(金魯善) 서간(書簡)
185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김노선,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7년(철종 7)김노선(金魯善)이 참판(參判)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로, 이원조의 집안이 추영(追榮)된 것을 축하하며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의 글을 손을 보아 달라면 부탁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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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조기석(趙基碩) 서간(書簡)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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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조기석,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7(철종 8) 11월 15에 조기석(趙基碩)이 이원조(李源祚)의 형인 원호(源祜)에게 보낸 혼서(婚書)로, 지난번 계씨 대감에게 사주단자를 받았고, 연길(涓吉)을 보내니, 의제(衣製)를 보여 주기를 바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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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허좌(許佐) 서간(書簡)
185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허좌,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7년 3월 8일 허좌(許佐)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로, 가묘(家廟)에 분황(焚黃)할 때에 상중(喪中)이라 참석하지 못함을 전하고, 새로 부임한 수령을 언급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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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정유성(鄭裕成) 서간(書簡)
185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정유성,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7년(철종8) 2월 23일에 정유성(鄭裕成)이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지 15년 만에 특별히 왕의 첨서낙점(添書落點)에 의하여 종2품의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가 오르고, 선조에게까지 증직되어 가묘(家廟)에 추은분향(追恩焚黃)하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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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조기석(趙基奭) 서간(書簡)
1858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조기석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8년(철종 9) 사시생(査侍生) 조기석(趙基奭)이 보낸 서찰로 자신의 일상의 안부를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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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심경택(沈敬澤) 서간(書簡)
1858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심경택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8년(철종 9) 기하(記下) 심경택(沈敬澤)이 보낸 서찰로 원자(元子)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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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장복원(張福遠) 서간(書簡)
1858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장복원,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8년(철종9) 4월 9일 장복원(張福遠)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로, 상대방의 아들과 조카가 과거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고 자신의 선친의 유고를 정리하여 서문을 부탁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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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배치면(裴致冕) 서간(書簡)
1858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배치면,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8년 12월 9일에 배치면(裴致冕)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자신의 자식인 준경(俊絅)의 일자리를 부탁한 것이 세말(歲末)이 가까웠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음을 말하고, 올해 안에 선처해 줄 것을 바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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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심경택(沈敬澤) 서간(書簡)
1858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심경택,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8년 4월 28일에 심경택(沈敬澤)이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과 별지. 상대방의 안부와 자신은 새로 공무를 옮겨 소란스러우나 부모님은 평안하심을 전하고 단오절에 앞서 부채를 선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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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정상진(鄭象晉)과 정승관(鄭升觀)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
1859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정상진, 정승관,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9년(철종 10)정상진(鄭象晉)과 정승관(鄭升觀)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일상의 소식을 전한 서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