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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이종상(李種祥) 서간(書簡)
1863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종상,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3(철종14)이종상(李種祥)이 이원조에게 보낸 서찰이다. 공납(公納)을 맡아서 심문하였으나 끝내 비리를 밝혀내지 못하였으며, 선조의 유집(遺集)은 교정에 참여할만한 수준이 못되고, 화답하는 시 한수를 보낸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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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이종상(李種祥) 서간(書簡) 별지(別紙)
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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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이종상,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3년(철종14) 8월 26일에 이종상(李種祥)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응 0542〉의 별지(別紙). 종이와 먹을 받았는데 그냥 하사하는 것이라면 사양할 수 없지만, 폐백으로 주는 것은 받을 수 없다며 되돌려 준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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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이종상(李種祥) 서간(書簡) 별지(別紙)
1863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종상,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3년(철종14) 8월 26일에 이종상(李種祥)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응 0542〉의 별지로, 상대가 보내준 시에 칠언율시(七言律詩)로 화답(和答)한 시를 적은 시고(詩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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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신석우(申錫愚) 서간(書簡)
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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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우,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3년 8월 26일에 신석우(申錫愚)가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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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최영록(崔永祿) 서간(書簡)
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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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록,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3년(철종14) 4월 1일 최영록(崔永祿)이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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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이지운(李芝運) 서간(書簡)
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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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운,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3년(철종14) 6월 2일에 이지운(李芝運)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답신. 만년에 귀향하여 만귀정(晩歸亭)에서 자연을 벗 삼아 정양하고 있는 상대방과 선현들의 유적을 돌아 본 내용과, 수창한 시들을 기록하여 보내달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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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이재목(李在穆) 서간(書簡)
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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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이재목,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4년(고종1)이종목(李在穆)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로 늘그막에 고향에서 지내는 상대의 안부를 묻고, 동학(東學)의 교세가 점차 확장되는 것에 대해 염려하며, 유림이 이단을 물리쳐야 된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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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장복원(張福遠) 서간(書簡)
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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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장복원,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4년(고종1)장복원(張福遠)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자신이 체직(遞職)당한 일과 아들이 국장(國葬) 감독으로 몹시 바쁘다는 근황을 전하고, 부탁한 일은 황하가 맑아지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임을 전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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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남희중(南羲重)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별지(別紙).
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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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희중,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고종2) 4월 28일, 시생(侍生) 남희중(南羲重)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공납(公納)을 갈취한 간사한 아전과 서원(書員)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이들을 중형(重刑)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하고,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한 대책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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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한진호(韓鎭㦿) 서간(書簡)
186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한진호,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고종2) 6월 15일에 한진호(韓鎭㦿)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로, 산수 간에 노니는 상대방을 부러워하면서도 상대방의 재기(才器)는 끝내 칩거할 사람의 아니니 빨리 나와서 함께 문필(文筆)로 교유하기를 원하면서 먹 두 자루를 보낸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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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이급상(李汲祥) 서간(書簡)
186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급상,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고종2) 사생(査生) 이급상(李汲祥)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로 부인 상(喪)을 당한 것에 대해 위로하고, 자신의 여러 일상을 기록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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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이원조(李源祚) 서간(書簡)
186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고종2) 하생복인(下生服人) 이원조(李源祚)가 수취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로 별지(別紙)에서 아뢴 내용은 사사로움이 없고, 또한 감옥에 가두어두었으며 모두 받치지 않은 자는 구별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 일로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지를 묻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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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이원조(李源祚) 서간(書簡) 별지(別紙)
186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고종2) 하생복인(下生服人) 이원조(李源祚)가 수취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에 첨부된 별지(別紙)로 세금을 포탈한 농리(農吏)를 놓아주지 말아야 하고, 농리(農吏)술갑(述甲)과 이방 자리를 두고 다투는 자가 그를 비난한다고 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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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이승보(李承輔) 서간(書簡)
186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승보,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고종2) 시생(侍生) 이승보(李承輔)가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로 당신이 한성부판윤(漢城判尹)으로 발탁된 것에 대해 축하를 드려야 하지만, 휴가를 낼 틈이 없어 서찰로 대신하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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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진선(鎭宣) 서간(書簡)
186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진선,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철종12) 9월 20일 진선(鎭宣)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로 치질의 완치가 늦느냐고 묻고, 아울러 지주고[蜘(虫+廚)膏, 거미 기름]를 복용해보라고 권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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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남희중(南羲重) 서간(書簡)
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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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희중,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6년 11월 25일 성주 목사(星州牧使)인 남희중(南羲重)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로, 10여 년간이나 군기(軍器)를 점검하지 않아 대다수의 총기들은 폐물이 되어버렸고, 또 색리배(色吏輩)들이 몰래 훔쳐 팔아버렸기 때문에 일부는 정비하고 고치는 중이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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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조술립(趙述立)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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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조술립,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7년(고종 4) 인제(姻弟) 조술립(趙述立)이 대포(大浦)의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선고(先稿)를 손보아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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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이해상(李海祥)과 이연상(李淵祥)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
186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해상, 이연상,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6년(헌종 12)이해상(李海祥)과 이연상(李淵祥)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일상의 안부를 전하는 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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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장석준(張錫駿) 서간(書簡)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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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장석준,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7년 8월 25일 장석준(張錫駿)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답신으로, 가묘(家廟)에 분황(焚黃)할 때에는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으니 한양으로 행차하는 길이 있으면 꼭 만나서 회포를 풀자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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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이재목(李在穆) 서간(書簡)
1868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재목,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8년(高宗5) 윤4월 15일 사돈인 이재목(李在穆)이 고향 포천 계곡에 은거하고 있는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둘째 아들이 화성 원침((華城 園寢)으로 임명된 것을 축하하며, 자신은 중춘(仲春)에 호상(湖上)으로 가서 여러 벗들과 조용히 강토(講討)하여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