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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정유성(鄭裕成) 서간(書簡)
185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정유성,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7년(철종8) 2월 23일에 정유성(鄭裕成)이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지 15년 만에 특별히 왕의 첨서낙점(添書落點)에 의하여 종2품의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가 오르고, 선조에게까지 증직되어 가묘(家廟)에 추은분향(追恩焚黃)하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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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심경택(沈敬澤) 서간(書簡)
1858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심경택,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8년 4월 28일에 심경택(沈敬澤)이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과 별지. 상대방의 안부와 자신은 새로 공무를 옮겨 소란스러우나 부모님은 평안하심을 전하고 단오절에 앞서 부채를 선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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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김호성(金昊誠)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1861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김호성,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1년(철종12) 4월 20일에 아우[弟] 김호성(金昊誠, 1791~?)이 호우(毫宇)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아드님이 벼슬에 제수 된 것을 축하하고, 아울러 병든 몸으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한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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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이종상(李種祥) 서간(書簡)
1863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종상,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3년(철종14) 8월 26일 이종상(李種祥)이 이원조에게 보낸 서찰로, 상대방이 노년에도 귀성(龜城)과 무흘(武屹)등으로 유람하는 왕성한 기력을 부러워하며 적벽에서 노닌 소동파에 비유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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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이종상(李種祥) 서간(書簡)
1863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종상,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3(철종14)이종상(李種祥)이 이원조에게 보낸 서찰이다. 공납(公納)을 맡아서 심문하였으나 끝내 비리를 밝혀내지 못하였으며, 선조의 유집(遺集)은 교정에 참여할만한 수준이 못되고, 화답하는 시 한수를 보낸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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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신석우(申錫愚) 서간(書簡)
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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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우,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3년 8월 26일에 신석우(申錫愚)가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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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최영록(崔永祿) 서간(書簡)
1863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최영록,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3년(철종14) 4월 1일 최영록(崔永祿)이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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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이지운(李芝運) 서간(書簡)
1863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지운,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3년(철종14) 6월 2일에 이지운(李芝運)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답신. 만년에 귀향하여 만귀정(晩歸亭)에서 자연을 벗 삼아 정양하고 있는 상대방과 선현들의 유적을 돌아 본 내용과, 수창한 시들을 기록하여 보내달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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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장복원(張福遠) 서간(書簡)
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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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복원,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4년(고종1)장복원(張福遠)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자신이 체직(遞職)당한 일과 아들이 국장(國葬) 감독으로 몹시 바쁘다는 근황을 전하고, 부탁한 일은 황하가 맑아지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임을 전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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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남희중(南羲重)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186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고종2) 4월 28일, 시생(侍生) 남희중(南羲重)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회연서원(檜淵書院)의 백일장(白日場)에 가는 지를 묻고, 아울러 환정(還政)의 일은 편리하게 잘되었으니, 향회(鄕會)에서 설명을 해달라고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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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이급상(李汲祥) 서간(書簡)
186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급상,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고종2) 사생(査生) 이급상(李汲祥)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로 부인 상(喪)을 당한 것에 대해 위로하고, 자신의 여러 일상을 기록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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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이승보(李承輔) 서간(書簡)
186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승보,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고종2) 시생(侍生) 이승보(李承輔)가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로 당신이 한성부판윤(漢城判尹)으로 발탁된 것에 대해 축하를 드려야 하지만, 휴가를 낼 틈이 없어 서찰로 대신하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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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조술립(趙述立)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186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조술립,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7년(고종 4) 인제(姻弟) 조술립(趙述立)이 대포(大浦)의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선고(先稿)를 손보아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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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이해상(李海祥)과 이연상(李淵祥)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
186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해상, 이연상,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6년(헌종 12)이해상(李海祥)과 이연상(李淵祥)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일상의 안부를 전하는 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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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김희영(金熙永)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1869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김희영,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9(고종 6년)김희영(金熙永)이 판서(判書)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아들이 죽은 것에 대한 위로하며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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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장복추(張福樞)ㆍ장희추(張禧樞) 형제 서간(書簡)
1869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장복추, 장희추, 이정상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9년(고종9)장복추(張福樞)ㆍ희추(禧樞)형제가 이원조(李源祚)의 아들인 정상(鼎相)에게 보낸 간찰로, 상대방이 오래도록 병상에 있음을 알고서도 문안하지 못한 미안함을 전하고, 자신은 형수가 풍담(風痰)으로 폐물이 되었으며, 중형(仲兄)은 오랜 병에 오래도록 이맛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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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충거,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70년(고종 7) 12월 그믐 충거(忠擧)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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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조성교(趙性敎)가 이관희(李觀熙)에게 보낸 답신
1874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조성교, 이관희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74년(고종11)에 아우 조성교(趙性敎, 1818∼1876)가 이관희(李觀熙, 1824~1892)에게 조부(祖父) 이원조(李源祚, 1792~1871)의 시장(諡狀)을 지어 올렸으나, 고인의 훌륭한 행적을 치켜세우지 못하여 부끄럽다고 보낸 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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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장석유(張錫裕) 서간(書簡)
1879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장석유,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79년 6월 21일에 장석유(張錫裕)가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서찰. 연이은 문안편지에 고마움을 전하고 상대방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6월의 도목정사(都目政事)에서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영남에서는 한 사람도 없음을 알리고, 남쪽지방의 차를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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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이태로(李泰魯)가 보낸 서찰.
188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태로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87년(고종 24) 3월 8일 이태로(李泰魯)가 보낸 서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