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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남희중(南羲重) 서간(書簡)
186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남희중,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고종2) 8월 20일, 성주목사로 있던 남희중이 응와 이원조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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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남희중(南羲重) 서간(書簡)
1867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남희중,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7년(고종4) 8월 5일, 성주목사남희중이 사창 등의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공조판서 응와 이원조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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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남희중(南羲重) 서간(書簡)
1868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남희중,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8년 윤4월 21일, 남희중이 편지를 붙이겠다는 약속에 대하여 인편을 기다렸다가 보낼 것임을 알리기 위해 응와 이원조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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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남희중(南羲重)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186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고종2) 4월 28일, 시생(侍生) 남희중(南羲重)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회연서원(檜淵書院)의 백일장(白日場)에 가는 지를 묻고, 아울러 환정(還政)의 일은 편리하게 잘되었으니, 향회(鄕會)에서 설명을 해달라고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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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남희중(南羲重)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별지(別紙).
1865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남희중,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5년(고종2) 4월 28일, 시생(侍生) 남희중(南羲重)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공납(公納)을 갈취한 간사한 아전과 서원(書員)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이들을 중형(重刑)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하고,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한 대책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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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남희중(南羲重) 서간(書簡)
1866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남희중,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6년 11월 25일 성주 목사(星州牧使)인 남희중(南羲重)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로, 10여 년간이나 군기(軍器)를 점검하지 않아 대다수의 총기들은 폐물이 되어버렸고, 또 색리배(色吏輩)들이 몰래 훔쳐 팔아버렸기 때문에 일부는 정비하고 고치는 중이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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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남희중(南羲重)이 수취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
1868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남희중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8년(고종 5) 4월(윤) 6일, 남희중(南羲重)이 수취자 미상에게 배가 없어서 세(稅)를 완납하지 못한 사실, 덕산묘소(德山墓所)에서 양이(洋夷)가 난동을 부린 일, 장치선(張致善)의 공초(供招)를 언급하는 등 당시의 어수선한 시대상황을 담은 간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