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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이이진(李頤鎭)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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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이이진,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0(헌종 6)추천(楸川)의 삼종(三從) 이이진(李頤鎭)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가 강릉부사(江陵府使)로 가는 것을 축하하는 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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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조술주(趙述周) 서간(書簡)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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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술주,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0년(헌종6)조술주(趙述周)가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재직 중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로, 강릉을 다스리는 당신의 안부와 정사(政事)에 대해 묻고, 세상에 홀로 남은 자신의 처지를 전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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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이우신(李祐信) 서간(書簡)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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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신,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0년(庚子,헌종6) 5월 10일 이우신(李祐信)이 강릉부사(江陵府使)인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 경계를 접하고 있으면서도 공첩(公牒)을 통하여 만날 수밖에 없는 심정을 전하고 해구신(海狗腎)을 구해달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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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이우신(李祐信) 서간(書簡) 별지(別紙)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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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신,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0년(헌종6) 5월 10일 이우신(李祐信)이 강릉부사(江陵府使)인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 응 0588 의 별지(別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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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진고(鎭庫)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답신.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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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고,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1년(헌종7) 12월 12일, 아우 진고(鎭庫)가 탐라백(耽羅伯)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동쪽 지방의 백성이 올린 소장(訴狀)은 한 두 명의 불만을 느낀 무리가 남을 속이는 것이니, 개의(介意)치 말라는 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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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박대수(朴大壽) 등 서간(書簡)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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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수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1년(헌종7) 8월, 박대수(朴大壽)·신석홍(申錫洪)·여중섭(呂重燮)·권대철(權大澈)이 수취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로, 본부(本府)에 펴놓은 병풍과 장막이 찢어지고 상하여 전례에 따라 돈 여섯 냥을 먼저 저리(邸吏)에게 들여 쓰게 하였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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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이원식(李源植) 서간(書簡)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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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식,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1년(헌종7) 6월 18일 족종(族從) 이원식(李源植)이 탐라현령으로 있는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 바다 건너 멀리서 정사(政事)를 보고 있어 쉽게 소식을 접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장습(瘴濕)으로 몸은 상하지 않았는지 걱정하였다. 백씨 형주(伯氏兄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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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이덕현(李德顯) 서간(書簡)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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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현,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1년(헌종 7) 삼종(三從) 이덕현(李德顯)이 제주목사(濟州牧使)로 재직 중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1)에게 보낸 간찰로 제수(祭需)와 마음을 표시한 물건들은 잘 받았지만 돈과 햇귤은 오지 않았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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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서영순(徐英淳)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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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순,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2년(헌종8) 4월 25일, 기복제(朞服弟) 서영순(徐英淳)이 영주목백(瀛洲牧伯:제주목사)으로 재직 중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영리(營吏)김재유(金載瑜)는 부이방(副吏房)에 합당한 인물이니, 아전으로 차출해 줄 것을 바라는 인사 청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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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한계원(韓啓源)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답신.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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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원,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2년(헌종8) 9월 26일, 시생 복인(侍生服人) 한계원(韓啓源)이 제주목사(濟州牧使)로 재직 중인 이원조(李源祚)에게 조부의 상사(喪事)를 당한 비통한 심정을 전하고, 정대손(鄭大孫)을 압송(押送)하는 일은 감영(監營)의 공문(公文)에 의하여 거행하니 잘 살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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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조술립(趙述立) 서간(書簡)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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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술립,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3년(헌종9) 9월 21일 인제(婚弟) 조술립(趙述立)이 대포(大浦)의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로,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한양으로 가려고 하느냐고 질책하고, 수다사(水多寺)에사 만나 자신의 선조 문집을 교정하자고 제의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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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조술립(趙述立) 서간(書簡) 별지(別紙)
1843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조술립,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3년 9월 21일 조술립(趙述立)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응 0561〉의 별지로, 평소 고을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두 형제는 예전에 자신의 선조 산소의 일도 문제를 일으켰으며, 이번에도 아전들과 결탁하여 나쁜 짓을 하니 징벌해달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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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정유성(鄭裕成)이 이원조(李源祚) 가족에게 보낸 간찰.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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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성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3년(헌종9) 8월 17일, 제복인(弟服人) 정유성(鄭裕成)이 대포(大浦)에 사는 이원조(李源祚) 가족에게 자신이 직접 한양로 가서 춘부장(春府丈)이원조를 모시고 와야 하는데, 아내의 병 때문에 가지 못하고 종을 먼저 보낸다는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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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장석충(張錫忠) 서간(書簡)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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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충,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5년(헌종 11)장석충(張錫忠)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로 일반적인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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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표종제복인(表從弟服人) 김동선(金東善) 서간(書簡)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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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선,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5년 5월 14일 표종제복인(表從弟服人) 김동선(金東善)이 당시 좌부승지(左副承旨)로 있던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로, 상대방의 상일(祥日)에 나아가 위로하지 못한 미안함과 사촌이 과거에 낙방하였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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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권대긍(權大肯) 서간(書簡)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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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대긍,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6년(헌종 12) 11월에 권대긍(權大肯)이 장현철(張鉉喆)을 잘 돌보아 달라며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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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권대긍(權大肯) 서간(書簡) 별지(別紙)
1846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권대긍,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6년(헌종 12) 11월에 권대긍(權大肯)이 장현철(張鉉喆)을 잘 돌보아 달라며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에 첨부된 별지(別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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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유도식(柳道軾) 서간(書簡)
1846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유도식,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6년 6월 6일유도식(柳道軾)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로, 딸의 혼인문제로 상대방에게 도움을 청하고 먼 길의 여행의 즐거움을 들려달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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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황원선(黃源善) 서간(書簡)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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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황원선,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6년황원선(黃源善)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의 별지로, 꿈에 전 제주목사(濟州牧使)와 함께 제주에서 소요한 일을 시로 쓰고 서문을 기록하여 자신이 제주를 방문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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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조병현(趙秉鉉) 서간(書簡)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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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생활-서간
| 조병현,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46년(헌종 12)조병현(趙秉鉉)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로, 일상의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