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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18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소식을 듣지 못한 지가 이미 70여일이 되었으니 쓸쓸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또 그 아내가 지난 번 증상이 다시 발병했다고 한다. 심력에 한계가 있으니 실로 억누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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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23일
| 哲宗 13
| 壬戌
| 얼음이 녹아 풀릴 듯하다.
오후에 중거(仲擧)의 병이 시각(時刻)을 다투는 근심이 있다고 들어서, 또 갔는데 이미 곡소리가 방에서 나왔다. 끝내는 다시 깨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니, 고복(皐復: 초혼(招魂)하고 발상(發喪)하는 의식)한 후에 여러 번 소리 내어 통곡하고 돌아왔다. 대개 나와 중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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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17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접소성상이 와서 각처의 고제(告題)를 들였는데 돌아온 패의 내용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침 먹은 후에 계아(季兒)를 <지명>원당(元塘)지명>에서 전송했다. 옛 묘를 파내는 날짜를 물었는데 이달 29일로 정해져서 왔으나 신산은 아직도 정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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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14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흐리고 바람이 불다.
삼구정(三龜亭)의 <인명>덕오(德吾)인명> 형 부자가 편지로 안부를 물었으나 바빠서 다만 <인명>덕오(德吾)인명>에게만 답장하였다. <인명>김휘발(金彙發)인명> 형이 편지로 안부를 묻고 <지명>매원(梅院)지명>의 <인명>이상선(李相善)인명> 형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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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21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수동(壽洞) <인명>석장(席匠)인명>이 또 <지명>한양지명>에서 내려와 이어서 함군(咸君)의 편지를 받았다. 호서(湖西)의 <지명>공주(公州)지명>에서도 변란이 일어났다고 하니, 만약 그러하다면 삼남(三南)에서 모두 난리이니, 어찌하겠는가? <지명>회덕(懷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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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25일
| 哲宗 13
| 壬戌
| 바람이 불다.
나는 지절통(支節痛)으로 매우 아팠고, 또한 소변이 적황색이었다. 혹 황달기가 있는 듯하였다. 칠십 노인의 쇠모한 지경의 한번 진탕은 그 해로움이 이와 같으니 크게 한탄하기가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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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24일
| 哲宗 13
| 壬戌
곧 친기(親忌)이다. 어제 저녁에 뜻하지 않게 발걸음이 중거(仲擧)의 고복(皐復)할 때에 미쳤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니, 또한 정리가 지극한 것이다. 아침 늦게 <인명>류의백(柳懿伯)인명> 형이 왔다. 그의 사돈 중거(仲擧)의 시상(屍床)의 앞에서 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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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10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눈이 내리고 이내 바람이 크게 불고 차다.
정알례(正謁禮)를 행하고 강당에 나와 앉았는데 장차 임원을 바꿀 쯤에 재석(齋席)을 뽑는 논의가 좌중의 물의에 미쳤다. <인명>경휴(景休)인명>의 맏아들 <인명>이형좌(李衡佐)인명>는 나이가 지금 노성(老成)하고 또한 이름 난 선비이다. 부형(父兄)이 몸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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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4월 11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동(洞)의 하임(下任)이 와서 수영(水營)의 관문을 보여주었다. 바로 병조 서리청(書吏廳)이 지난달 사이 군액장부를 모조리 불태워 급급하게 수정하려고 각 영문으로 하여금 베껴 합치게 했다. 해당 도와 열읍의 군총(軍摠)은 5월내로 상납하기로 되어있었고, 또 관의 전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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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26일
| 哲宗 13
| 壬戌
| 바람이 불다.
상을 따라서 백산(白山)에 갔다가 저녁 무렵 돌아왔다. 기운이 빠져 나른한데 한 늙은 여종이 다리 안마를 잘 해서 몇 경 동안 편히 잠들었다. 저녁에 류 예안(柳禮安)이 한 마디 말도 없이 지레 돌아갔다고 들었으니 애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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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25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크게 바람이 불고, 밤낮이 지나도록 세밑의 추위와 다를 게 없다.
<지명>노가리(老稼里)지명>의 <인명>류정조(柳靖祚)인명> 형이 방문하였다. 한참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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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22일
| 哲宗 13
| 壬戌
| 맑고 바람이 불다.
듣건대 <지명>한양지명> 안은 가뭄이 매우 심하다고 하였다. 요사이의 날씨를 살펴보니, 산남(山南)도 가뭄 기운이 있고 또한 도처에 일부러 불을 지르는 변고가 큰 가뭄의 조짐이 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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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11일
| 哲宗 13
| 壬戌
| 조금 풀리다.
마침 판교(板橋)를 떠나는 심부름꾼 편이 있어서 귀정(龜亭)에 안부편지를 붙이고 아울러 세 권의 책을 보냈다. 그 중 2 책은 『재조번방지(再造藩邦誌)』 이고 1 책은 『기효신서(紀效新書)』이다. 지난번에 빌려온 것인데 잃어버릴 단서가 없겠는가? 또한 백암(栢岩)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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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4월 12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오늘은 <인명>규징(奎徵)인명>의 관례이다. 혈혈 성정한 아이가 변수(弁首)에 이르렀으니 다행이었다. 들으니 사일(沙日) 족종 군(族從君)이 <지명>한양지명>에서 비로소 돌아와 <지명>반촌지명> 주인 <인명>문환(文煥)인명>이 월초에 죽었다고 전하니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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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4월 3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지명>선성(宣城)지명>의 기별을 들으니 우리 문중의 한 사람이 낙천사(洛川社) 개제(改題)하는 모임에 가서 참석한 것 때문에 구설이 많았다. 이름을 추심하게 하고 싶었으나 과연 마땅한지 모르겠다. <지명>법전(法田)지명>에 반정(半程) 가는 날이 되어,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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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27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구름이 끼고 흐리다. 늦게 해가 나다.
차아(次兒)가 또 들을 살피러 갔다. 삼남(三南)의 나쁜 소문은 날이 갈수록 기세가 두려웠고 <지명>공주(公州)지명>의 변은 여러 도에 떠도는 것이 이와 같으니, 얼사(臬司)와 수령은 이미 위엄이 있는 명령을 내릴 수 없어서 왕법이 장차 시행되는 바가 없으니,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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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19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지명>하상(河上)지명> 류공후 치문(柳致文公厚) 형이 내방했다. 새 사돈 사옹 형(士翁兄)의 다섯째 동생이 갑자기 광증이 발병해서 매우 견디기 어렵다고 전했으니 불행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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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24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인명>우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지명>망천(忘川)지명>에서 비로소 돌아왔는데, 또한 병을 얻어 간신히 부(府)에 도착하여 유숙하고 왔다. 나의 병도 온 몸이 모두 아파 종일 정신이 아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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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13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눈이 꽃이 흩날리듯 땅에 떨어지다. 아침 늦게 개다. 날씨가 종일 낮 동안 구름이 끼고 흐리다. 저녁에 큰 눈이 내리고 큰 바람이 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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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21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지명>임하(臨河)지명> 우 형(禹兄) 댁에 종과 말을 보냈고 겸하여 <지명>망천(忘川)지명>에 편지를 부쳐서 하여금 권기하게 했다. 종증손(從曾孫) 을아(乙兒)가 <지명>우천(愚川)지명>에서 돌아와서 말하기를, ‘어제 <지명>구담(九潭)지명> 김 실(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