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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0월 6일
| 哲宗 13
| 壬戌
| 흐리다가 해가 나왔으나 빛이 없다.
해가 나왔으나 빛이 없는 것이 여러 달 되었으니 매우 이상했다. 어젯밤에 둘째 아이 꿈을 꿨는데, <지명>오계(梧溪)지명>의 친척들이 호방(呼榜)하며 이르렀다. 나쁜 조짐은 아닌 것 같았으나 또한 어떻게 감응할지 모르겠다. 오늘이 5일째로 차례가 되었으니, 경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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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6월 6일
| 哲宗 13
| 壬戌
| 바람이 있으나 매우 덥다.
듣건대 진사(進士) <인명>김병려(金炳礪)인명>가 본부로 내려와서 장차 오늘 영정(影幀)을 환봉(還奉)하는 일을 하려고 하였다. 아침을 먹은 뒤에 아이들을 보내 전별하였다. 대개 여러 해 동안 비난의 말을 들은 나머지 필경 조정의 명령으로 자리에 편안히 있지 못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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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1월 18일
| 哲宗 13
| 壬戌
어젯밤에 나는 수시로 편안하게 잤는데, 혹 위가 회복될 바탕이 될 만하겠는가? 둘째 아이가 <지명>구담(九潭)지명> 질녀 집에서 묵고 돌아왔다. 그의 종기가 크게 독을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다행히 심교점(深橋店)에서 <지명>동래(東萊)지명> 의원을 만나 곧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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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6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공생(貢生) <인명>권진규(權晉奎)인명>가 와서 말하길, "<지명>전라도지명> <지명>함평지명>, <지명>익산지명> 등의 백성들이 극변을 일으켰고 <지명>충청도지명> <지명>영동지명>의 백성들도 변고를 일으켰다."고 하니,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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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6월 26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구름이 끼고 흐리다. 저녁에 폭우가 내리다가 잠시 뒤에 개다.
내가 더위 먹은 증세 때문에 황연환(黃連丸)을 처음 복용했다.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길 떠난 것이 오늘 <지명>죽산(竹山)지명> 근지에 도착했을 듯하다. 만약 말과 하인이 모두 탈이 없다면 모레 즈음에는 마땅히 <지명>반촌(泮村)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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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22일
| 哲宗 13
| 壬戌
| 늦은 아침 후에 비가 비로소 개다.
가동(家僮)이 의원을 모시고 저물녘에 돌아왔다. 더불어 병의 근원과 경과를 논하였다. 자못 병을 담당해서 공을 세우겠다는 뜻이 있으니 명예를 좋아하는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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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25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맑다가 저녁에 흐리다.
날마다 약을 달이는데 생강을 다른 약제보다 배로 들어가는데, 그러나 <지명>오천(浯川)지명>시장에는 오랫동안 생강이 나지 않아서 매번 부중(府中)에서 사오니, 그 군색함이 비할 데가 없다. 아침부터 열 기운이 복부에서 크게 발하여 차가운 기운이 완전히 없어지니,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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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5일
| 哲宗 13
| 壬戌
| 밤새 쏟아 붓는 빗소리가 나다.
아침에 일어나서 들으니 동서의 강이 크게 불어서 둑이 온전한 것이 없고 <지명>두리(斗里)지명> 이하는 서천(西川)이 역류하여 넘쳤으며 <지명>영광(永光)지명> 이하는 동쪽 강이 역류하여 가을걷이가 이미 거론할 것이 없다고 한다. <인명>영노(英奴)인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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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3월 27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올 때, 짐을 진 한 놈이 있었는데 바로 <지명>상주(尙州)지명> 부내의 사람으로 이름은 <인명>업순(業順)인명>이었다. 그대로 머무르려는 의향이 있었으나 어찌 그 사람됨을 믿을 수 있고, 그 뿌리가 없으니 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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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9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조카가 오늘 저녁 혹 성(城)으로 들어갈 것이나 도로가 매우 많이 위태롭다고 하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득이 됨만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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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6월 29일
| 哲宗 13
| 壬戌
중복이다. 더위 기운이 전보다 더해짐이 없으니, 비가 내린 뒤 끝에 지기가 조금 식어서 그러한 것인가? 도처에 도적으로 인한 근심이 매우 위태롭고, 또 평조(平朝: 오전 3시~5시)에 호랑이가 마을에 들어왔으니 괴이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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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4월 13일
| 哲宗 13
| 壬戌
| 전날 밤부터 바람이 불고 종일 매우 춥다.
계아(季兒)를 <지명>가구(佳邱)지명>, <지명>이계(伊溪)지명> 등지로 보냈다. <인명>응용(應龍)[김응룡(金應龍)]인명>의 혼처에 관해 의논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명>하남(河南)지명> 승지 <인명>류지영(柳芝榮)인명>이 내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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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17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맑다가 저녁에 흐리다.
전문(轉聞)에, <지명>상주(尙州)지명>의 난민이 작당하여 불을 놓으니 전쟁으로 인한 재해와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만약 인근 고을에 이와 같이 옮겨 온다면 이것을 장차 어찌하겠는가. 열읍의 수령이 모두 위험에서 벗어나 도주했다. 본부의 신임 수령도 도임하여 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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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8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어제(御題)에 폐단을 하문한 것은 잘 교구(矯捄)하는 방도가 되어서 실효가 있을 것 같지만 적이 생각건대 우리 면에는 뛰어난 식견 있는 사람이 없으니 이것이 탄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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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0월 4일
| 哲宗 13
| 壬戌
| 맑고 춥다.
오늘 <지명>장려동(長麗洞)지명> 조모의 산소에 절사(節祀)를 지내지만, 나는 병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니 비탄함이 얼마나 심한가. 들으니 <인명>이중문(李仲文)인명>이 <인명>계성(季誠)인명>의 집에 와서 묵었다고 했으나, 그의 말이 오로지 나에게 맡기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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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1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안개 기운이 조금 개고, 이어서 구름이 끼고 흐리다.
차아(次兒)가 회충으로 인한 고통이 그치지 않고 어제 아침에는 한 마리 큰 회충이 나왔는데, 뱃속에는 아직도 세 마리가 충돌하고 있다 하니, 근심스럽다. 나의 병이 이 같은데 그 아이가 또 이와 같아서, 의원을 찾아서 약을 묻는 것 또한 뜻대로 하지 못하니, 어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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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6월 28일
| 哲宗 13
| 壬戌
| 잠깐 흐리다가 잠깐 볕 나다. 낮에 또 우레 소리가 나다.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노정을 헤아려보니 오늘 혹 도성에 들어갔을 것 같은데 멀어서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 아이 집이 우리집 뒤에 있는데 매우 화려했으니 무슨 조짐인지 모르겠다. 내가 어제부터 또 여름감기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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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24일
| 哲宗 13
| 壬戌
| 흐리다가 볕이 나다가 하다.
나는 내일 병을 앓을 차례기 때문에 온담탕(溫痰湯) 두 첩을 복용하고, 새벽에 노강양위탕(露薑養胃湯) 1첩을 복용하였다. 밤에 수 경(頃) 동안 잠잤다. <지명>하상(河上)지명> 참봉(參奉) <인명>류기영(柳驥永)인명>이 방문했다. <지명>간산(艮山)지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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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16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지명>한양지명>에 올라간 일꾼들이 오늘 저녁에야 비로소 돌아왔다. 조카의 편지를 보니 <지명>교남(㠐南)지명> 여러 읍만이 이러한 변괴가 일어난 것이 아니다. <지명>호남(湖南)지명>의 <지명>금산(錦山)지명>, <지명>익산(益山)지명>, <지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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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7일
| 哲宗 13
| 壬戌
| 비가 내리다.
아침에 차례를 거행했지만 나는 병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근력이 어찌할 수 없음을 스스로 탄식한들 어찌하겠는가? 삼정(三政)의 폐단을 구제하는 방법에 대한 책제(策題)가 임금으로부터 비로소 내려져서 병중에 얻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