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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10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지명>원당(圓塘)지명> 안 진사(安進士)의 중상(中祥)이 내일이어서 아이들을 보내어 그를 위로하고 돌아오게 했다. 저녁에 종손 <인명>김낙주(金洛周)인명>가 <지명>선성(宣城)지명>에서 돌아와서 찰방 <인명>이휘림(李彙霖)인명>이 일전에 <지명>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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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6월 30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맏며느리가 와서 청하기를 "보리양식을 잇기 어려운데 집안에 저장된 것은 가을보리만 있으니 이것은 머지않아 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쌀보리를 팔아 보리를 사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하기에 청대로 시장에 내다 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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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4월 14일
| 哲宗 13
| 壬戌
| 바람 불다.
노비들에게 목화밭을 갈게 했다. <인명>김병규(金炳珪)인명> 형이 방문했다. 병산서원 하인이 도산서원의 통문을 가지고 왔는데, 후조당(後凋堂)의 청시 때 가장(家狀)을 변파했기 때문이다. 아이들한테 베껴 옮기게 했다. 저녁에 가랑비가 내리다. 막내아이는 고대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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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18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 후에 비가 내리다.
<지명>망천(忘川)지명>의 행차는 치지 않아도 스스로 깨어졌다. 이미 7~8일 사이에 서로 약속했으나 병 때문에 이루지 못하고, 비 때문에 이루지 못해서 부득이 내일 아침에 셋째를 보낼 계획이니 섭섭함과 슬픔이 없지 않다. <지명>망천지명>의 노인 <인명>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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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9일
| 哲宗 13
| 壬戌
| 덥다.
오후에 조카의 편지를 받아보니 대개 지난달 29일에 <인명>류겸수(柳謙叟)인명>에게 써서 부친 것이었다. 편지 중에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고, 피봉에 오늘 저녁에 비로소 들어왔다고 말했다고 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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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0월 5일
| 哲宗 13
| 壬戌
| 흐리고 차다.
오늘 <지명>오치(梧峙)지명> 부모님 산소에 전소를 지냈지만 또 참석하지 못했다. 그렇게 늙은 나이는 아닌데 이게 무슨 사람인가. 저녁에 <지명>보촌(保村)지명> 진사 <인명>김문상(金文相)인명>의 부고장이 왔다. 모시던 부모를 남겨 뒀으니 정경이 매우 처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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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6월 2일
| 哲宗 13
| 壬戌
| 몹시 덥다.
재종질(再從姪) <인명>영흠(永欽)인명>이 <지명>군위(軍威)지명>에서 돌아왔다. 그 소문을 전하기를, "<지명>선산(善山)지명> 난민 가운데 <인명>전범조(全範祖)인명>와 <인명>이어대(李漁大)인명> 놈이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인명>어대인명>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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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3월 30일
| 哲宗 13
| 壬戌
| 비가 내리다.
<지명>반촌지명>에서 데려온 하인 <인명>천길(天吉)인명>이 <지명>현풍지명>에서 올라와 이르기를, "<지명>선산(善山)지명> 등지의 사람들도 <지명>진주지명> 백성들처럼 모두 머리에 흰 두건을 두르고 함께 정영(呈營)하고자 내려갔습니다."라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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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12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다.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니, 삼맥(三麥)의 이삭이 팰 즈음에 해를 입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명>한양지명>에 간 노(奴)가 오늘 돌아오는 길에 오를듯하나 또 비가 희롱하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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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20일
| 哲宗 13
| 壬戌
| 비가 내리다.
나는 또 축시(丑時) 초에 한기가 있었지만 매우 심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아지는 것으로 매우 위안이 되었다. 한 낮이 되기 전에 갑자기 배 속이 뒤엉켰다. 갑자기 또 한기가 크게 일어났고 미시가 되어 한기가 물러가고 열이 났다. 이것은 학질의 빌미가 양분(陽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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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14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어제 <지명>망천(忘川)지명> 사형(査兄)의 편지를 보았다. 지난달에 <지명>대평(大坪)지명> 류 영감(柳令監)의 상사(襄事) 때에 도파임(道爬任)을 정하려고 도집례(都執禮) <인명>김용락(金龍洛)인명>이 자리에서 나오자 어떤 망발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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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20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수동(壽洞) <인명>석장(席匠)인명>의 편에 15일에 출발한 함군(咸君)의 편지를 받아 보았는데, <지명>한양지명> 안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급하고 두렵다고 하니, 듣고는 두려움을 견딜 수 없었다. <인명>전재춘(田在春)인명>이 와서 "부내(府內)의 소요(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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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14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서늘하고 낮에 덥다.
오늘 <지명>하상(河上)지명> 세덕사(世德祠)에서 연계(蓮桂: 생진시 입격자) 모임이 있는데 나는 병으로 참석하지 않았고 재종(再從) 형님만 홀로 갔다. <인명>영노(英奴)인명>가 <지명>서울지명>에서 비로소 돌아와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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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26일
| 哲宗 13
| 壬戌
| 어제 밤부터 내리던 비가 아침까지 개지 않다. 아침 늦게 비가 개다.
손녀 류실(柳室)의 병이 역시 해가 지나도록 낫지 않으니, 장차 오늘 황 의원(黃醫員)을 <지명>하상(河上)지명>에 보내 진맥하고 약제를 지으려고 하는데 비 올 기미가 이와 같으니 매우 마음이 쓰인다. 황 의원(黃醫員)을 보내면서 손녀에게 보낸 치장이 마음에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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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3월 29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인명>이순민(李舜民)인명>이 돌아왔다. 마침 유고가 있어 전별하지 못했다. <지명>강정(江亭)지명> 늙은 자형이 이 벗이 올 때 편지가 있었으나 바빠서 답장을 하지 못해 한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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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11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나는 어제 밤부터 뱃속이 편치 않았고 아침에 설사가 심해 숨 쉬는 것이 매우 편안하지 않았다. 사지(四肢)가 당겨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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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1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비가 내리다가 조금 뒤에 개다. 날씨가 매우 덥고 조금 바람기가 있다.
베개에 기대 책을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치통이 또 일어나니, 분명히 풍신(風神)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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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4월 15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아침에 계아(季兒)가 돌아와서 이런 저런 말을 들으니 자못 이루어질 희망이 있을 듯하다. 어제 아침에 부(府)로 들어가 약값을 전했는데, 20민(緡)은 아직 갚지 못했다. 신성단(神聖丹) 20개, 청롱(靑厐) 한 마리, 소고기, 북어 등을 받아 왔다. 청롱은 선달(先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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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19일
| 哲宗 13
| 壬戌
| 흐리다가 개다가 하다. 낮쯤 소나기가 내리다.
셋째 아이가 <지명>망천(忘川)지명>으로 갔다. 이 랑(李郞)이 기일 때문에 돌아갔다. 종손 <인명>낙중(洛中)인명>이 청벽공(靑壁公) 면례 일로 같이 <지명>선성(宣城)지명>에 갔다. 낮쯤 소나기가 내렸다. 아마도 비를 피해 부내(府內)로 가서 점심을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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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10일
| 哲宗 13
| 壬戌
| 덥고 조금 바람기운이 있다.
둘째아이가 <지명>연곡(淵谷)지명> 권 의원(權醫員)의 집에 약을 묻는 길을 떠났다. 늦은 아침 뒤에 위장(衛將) <인명>김계한(金啓瀚)인명>이 <지명>서울지명>에서 와서 훈태(訓台)의 답서를 가지고 만나러 들어왔다. 듣건대 추도기(秋到記)는 이미 이달 초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