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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5월 5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아침에 비로소 해를 보았다. 일꾼들한테 <지명>신현(新峴)지명> 터에서 측백나무를 베어 오라고 했는데, 마을에 천연두가 돌아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삼종손 <인명>김낙현(金洛鉉)인명>의 병이 점점 위독하다고 하여 가서 보았는데, 이는 ‘음허화동(陰虛火動)’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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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7일
| 哲宗 13
| 壬戌
| 바람이 불다.
아침에 족질(族姪) <인명>철흠(喆欽)[김철흠(金喆欽)]인명>을 불러 보았다. <지명>유곡(酉谷)지명>과의 혼인을 물으니 그 뜻이 고르지 못한 듯하다. 이것이 어찌 서로 사랑하는 사이의 도리이겠는가? 하물며 사람이 하는 일이 한 번 변한 이후에 영원히 이 혼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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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19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아침에 <인명>전재춘(田在春)인명>이 상경하는 길에 비로소 들어 왔기에 편지와 옷 보따리를 부쳤다. 장가 처(張哥妻)가 소실(小室)의 송아지를 끌고 가기에 세로 3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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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3월 28일
| 哲宗 13
| 壬戌
| 비가 오다가 갰다가 하다가 아침 뒤에 개다.
<인명>이순민(李舜民)인명>과 만나 <지명>형호(衡湖)지명> 재종형 집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문내에 노인을 축복하는 술과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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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12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이틀 동안 아팠는데 오늘 아침에 비로소 일어나 대청에 앉으니 정신은 구름과 안개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또 입맛이 크게 변하여 먹고 마시는 것을 곧 전부 폐하니 근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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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9월 27일
| 哲宗 13
| 壬戌
| 서리가 짙어 눈 같다.
어제부터 벌벌 떠는 증세 때문에 종일 기운이 고르지 못했다. 오늘은 초택(抄擇)한 방(榜)이 분명 나올 것인데 적막히 들리지 않으니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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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1월 13일
| 哲宗 13
| 壬戌
| 추운 날이 조금 풀리다.
추운 날이 조금 풀리니, 둘째 아이가 가는 것이 마음이 놓일만하다. <지명>원당(元塘)지명>의 <인명>조학준(趙學俊)인명>이 보러 왔는데, 오동나무 한그루를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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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1일
| 哲宗 13
| 壬戌
| 사방에 구름이 없고 일기가 매우 온화하다.
아침에 가묘에 배알을 하고 각 집의 가묘에 배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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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9일
| 哲宗 13
| 壬戌
| 눈이 조금 내리다.
<지명>임하(臨河)지명>의 <인명>권성지(權誠之)인명> 형이 방문하여 반나절 동안 대화하였다. 이 형은 <지명>상주(尙州: 상산(商山))지명>에서 왔으므로, <지명>우천(愚川)지명>의 사형(査兄) 형제가 함께 내려오지 못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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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1월 16일
| 哲宗 13
| 壬戌
눈이 대지를 덮어서 땔나무를 할 길이 없는 탄식이 이처럼 극심한 데에 이르렀다. <인명>수아(宇兒)[김수흠(金守欽)]인명>은 어느 곳에서 머무르는지 모르겠고, <인명>우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지명>한양지명> 소식도 용이하게 계속 듣기 어려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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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9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내 한기는 5일 마다 일어났는데 급기야 처음 4일 만에 한기가 일어났다. 사시(巳時)에 갑자기 정신이 희미해져 자고 싶어서 청방(廳房)에 들어가 편안하게 잤다. 이것은 약효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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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9월 24일
| 哲宗 13
| 壬戌
| 풍세가 매우 춥다.
<지명>천전(川前)지명> 내행이 필시 저녁에 닿을 것이므로 미리 분부하여 집 근처 10리 안에 불을 피우게 했으나 저물지 않아 잘 도착했다. 그 집의 근검함을 상상할 만 했다. 사형이 데리고 왔는데 여러 만에 얼굴을 대하니 위로와 기쁨을 느꼈다. 가질(家姪)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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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1월 10일
| 哲宗 13
| 壬戌
| 먹구름이 끼고 춥다.
나는 감기가 더쳐서 기침을 많이 했고 밤에는 두통이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한밤중에는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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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4월 8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가 비가 조금 내리다. 저녁에 또 비가 내리다.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오늘 모음사에 성묘하고자 포(脯), 과일, 고유문(告由文)을 갖추었으나 비올 기미가 있어 하지 못했다. 가질(家姪)이 <지명>원곡(原谷)지명> 송호서원의 입향 모임에 갔다. <지명>원촌(遠村)지명> 척손(戚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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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6일
| 哲宗 13
| 壬戌
| 바람이 불다.
저녁에 들으니 <지명>유곡(酉谷: 봉화 유곡리)지명>의 <인명>권수도(權燧度)인명> 형이 노병(老病)으로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사람됨이 매우 애석하다. 그 장손(長孫)의 혼인은 우리 마을의 족질(族姪) 집으로 정했는데, 어떠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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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6월 25일
| 哲宗 13
| 壬戌
| 또 바람이 불다.
또 바람이 부니 큰 비가 내릴 조짐인 듯하다. 밤에 아이들이 청당(廳堂)에 모였다가 묵었는데, 도둑이 옷가지를 모두 가지고 갔다. 자처한 점이 없지 않으니 책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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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9월 20일
| 哲宗 13
| 壬戌
| 화창하다.
맹일(孟逸), 중일(仲逸) 형제가 방문했으니 대개 예전에 같은 면의 오래된 친구이다. 한나절동안 이야기 나누었다. <지명>원촌(遠村)지명> <인명>이만설(李晩卨)인명> 형이 또한 방문했다. 오전에 또 기운이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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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9월 22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차아(次兒)가 아침에 초택 걸음을 떠났다. 법전(法田) 강 랑(姜郞)이 또 여기서 부에 들어와 그 편에 권 병방(權兵房)과 전 생(田生)에게 보내는 서봉을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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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9월 29일
| 哲宗 13
| 壬戌
| 온화하다.
저녁에 들으니 수아(守兒)가 초택(抄擇) 비화(比畫)에 들었으나 끝내 산 밖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그 아우가 반년 동안 복과(覆科)에 마음을 수고롭게 한 일이 매우 분탄할 했다. 게다가 반 천리 밖에 있으며 필시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심야에 심부름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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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3일
| 哲宗 13
| 壬戌
| 또 바람이 춥고 눈이 조금 내리다.
어제 저녁에 우리 마을도 화로를 가지고 종을 때려 머리가 터져서 거의 죽을 지경에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진실로 서종질(庶從姪)을 가르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위태롭고 두려운 소문이 <지명>소산(素山)지명>, <지명>현애(玄厓)지명> 보다 밑돌지는 않을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