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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김기정(金基定) 서간(書簡)
1863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김기정, 김령
| 산청 단계 상산김씨 김인섭후손가
1863년 8월 14일, 김기정이 진주민란에 연루되어 유배 갔다가 귀양에서 풀렸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을 전하는 내용으로 김영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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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19일
| 哲宗 13
| 壬戌
<지명>하상(河上)지명>의 구현 장(龜峴丈)이 숙환으로 위독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종질(從姪)이 문병하러 갔고 그 편에 향로 장(鄕老丈)의 자제상인(子弟喪人) 및 사곡 장(沙谷丈)의 자제상인(子弟喪人)에게 위로하는 편지를 부쳤다. 또 <지명>하남(河南)지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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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21일
| 哲宗 13
| 壬戌
| 날씨가 온화하다.
들으니 중거(仲擧)의 병이 더욱 위독한 데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후에 가서 그를 보았다. 곧 전의 병이 점점 심해진 것인데 의원이 없으니, 어찌하는가? 광흥사(廣興寺)의 갑승(甲僧) <인명>지남(指南)인명>이 방문하였다. 그 또한 70대인데, 근력이 매우 건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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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20일
| 哲宗 13
| 壬戌
나의 가려운 병은 더욱 견디기 어려운 데에 이르렀다. 의서(醫書)에 비둘기를 삶아 먹으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집에 비둘기 두 마리가 있었는데, <지명>하상(河上)지명>의 열수씨(烈叟氏)가 환우(患憂) 때문에 와서 청하므로 그 한 마리를 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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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22일
| 哲宗 13
| 壬戌
| 봄기운이 있다.
아침 후에 중거(仲擧)의 병이 갑자기 위독하다고 듣고 가서 보았는데, 과연 위급하였다. 그러나 오래 동안 낫지 않은 병이므로 매우 지나치게 근심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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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18일
| 哲宗 13
| 壬戌
| 봄기운이 있는 듯하다.
<지명>하남(河南)지명>의 새로 혼인한 집에 참혹한 소식이 들었는데, 곧 거촌부(巨村婦)이다. 조산의 빌미로 오늘 구하지 못하였으니, 매우 참혹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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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15일
| 哲宗 13
| 壬戌
| 춥다.
가신(佳辰: 혼인, 환갑 등의 좋은 일이 있는 날. 이 날은 정월대보름이다.)으로 촌(村)의 아이들이 과(課)를 그치고 함께 놀았다. 소손(小孫) <인명>경욱(慶旭)[김경욱(金慶旭)]인명>이 와서 배운 뒤에 놀겠다고 청하였다. 그 말이 사랑스러워 가르치고, 식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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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17일
| 哲宗 13
| 壬戌
| 춥다.
오늘은 곧 선고(先考)의 기일이다. 매번 이 달이 되면 심기(心氣)가 편하지 않은 병이 있다. 나이가 매우 쇠약하게 되니 매우 감당하기 어렵다. 새벽에 제사를 지냈다. 하루 종일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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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2월 28일
| 哲宗 13
| 壬戌
| 완연하게 봄기운이 있다.
어제 낮에 조금 한기가 있다가 밤이 깊어지자 열기가 크게 일어나서 밤새 정신이 아득한 채로 보냈다. 오늘 아침이 되자 기운이 매우 고르지 않았지만 <인명>응룡(應龍)[김응룡(金應龍)]인명>의 혼팽(婚伻)이 돌아가기 때문에 몇 곳에 편지를 쓰고 온 마을의 사람을 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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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16일
| 哲宗 13
| 壬戌
| 날씨가 조금 풀리다.
목 아(木兒)가 그 처가[甥館]에서 저녁 무렵에 집으로 돌아왔다. 들으니 그 집안이 편안하게 지내며, 손부(孫婦) 역시 잘 있다고 하니,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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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1월 23일
| 哲宗 13
| 壬戌
| 춥다.
나는 어젯밤부터 지절통이 심하게 있어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이로 인해 종일 기운이 편치 못했다. 풍산(豊山) 이 우(李友) 신당공(新塘公) 자손이 와서 병문안하면서 낙원(洛院)에서 은혜에 감사할 일이 있다고 하였다. 대개 신당공은 우리 집과 세의(世誼)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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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9월 17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사방 산을 바라보니 안개 기운이 있고 날씨가 매우 춥지는 않다.
가질이 돌아왔다. 역양서원의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돌아와 병산서원의 작년 유사가 추한 소리를 사방에 퍼뜨리고 또 서원에 갈무리 해둔 책자를 나누어 갔다는 설을 전했으니 매우 좋지 않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학호(鶴湖)의 본손과 방손으로 차마 이런 말을 듣겠는가? 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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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0월 12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지명>풍현(豊縣)지명> 친척 <인명>이귀수(李龜叟)인명>가 내방했는데, <인명>응용(應龍)인명>의 혼담 때문이었다. 또 자기가 청한 바가 있었어, 극력 <인명>치복(穉復)인명>의 집에 대해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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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7일
| 哲宗 13
| 壬戌
| 가랑비가 내리고 바람이 차다.
위장(衛將) <인명>김계한(金啓澣)인명>이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렀기에 아이들에게 편지를 부치고 아울러 얼마간 수작(酬酢)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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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10일
| 哲宗 13
| 壬戌
| 종일 비가 개지 않다.
새벽에 다시 인말(寅末)에서 묘초(卯初) 사이에 또 약간의 한기가 있었고 전처럼 열이 났다. 계아(季兒)가 또 <지명>연곡(淵谷)지명>에 약을 물으려고 갔는데 종일 비가 개지 않아서 온 몸이 흠뻑 젓을 것이다. 만약 <지명>저전(苧田)지명>에서 묵는다면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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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27일
| 哲宗 13
| 壬戌
| 날씨가 조금 풀리다.
그저께 종손(從孫) <인명>낙중(洛中)[김낙중(金洛中)]인명>이 <지명>예안(禮安: 선성(宣城))지명>에서 돌아왔다. 전하기를 <지명>예안(禮安)지명> 수령이 그믐에서 초승사이에 나와서 면중(面中)에서 일을 만들고자 기약한다고 하니, 매우 잘못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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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9월 18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또 안개 끼고 흐리다.
<지명>금곡(金谷)지명> <인명>박강수(朴崗叟)인명> 형이 그 손자를 시켜서 맏아들 <인명>박주종(朴周鍾)인명>이 임금이 전한 것을 받은 것에 대한 허실을 와서 알아보게 했으니 대개 삼아(三兒)의 편지 속에 정녕하게 여러 번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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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8월 14일
| 哲宗 13
| 壬戌
| 구름이 끼고 흐리다.
나는 아침부터 차가운 당(堂)에서 손님을 접대하여 스스로 한기(寒氣)에 닿았는데, 낮 동안에 크게 한기(寒氣)가 일어서 종일토록 음식을 폐하였으니 고통이 지극하다. 매우 괴이하게 여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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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7월 2일
| 哲宗 13
| 壬戌
| 아침에 비가 내리다가 늦은 아침 뒤에 조금 개고 저녁에 또 비가 내리다.
내가 가슴속에 체기가 있어서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 둘째아이가 <지명>오천(浯川)지명>에 가서 약 두 첩을 지어서 저물녘에 돌아왔다. 대개 나의 병은 온전히 풍화로서 치료하는 것이 옳을 듯한데, 박 의원(朴醫員)의 말은 매번 상반되니 이것이 근심스럽다. 한 달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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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3월 9일
| 哲宗 13
| 壬戌
| 맑다.
<지명>개구(介衢)지명>에 사는 놈 <인명>김윤옥(金允玉)인명>이 스스로 신산의 묘지기가 되기를 원해서 와서 청하였지만 먼 밖을 지키는 일은 실로 한 사람의 안면으로 정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