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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7일
| 哲宗 12
| 辛酉
| 흐려 음산하고 춥다. 사방에 약간 검은 기운이 있다.
어떤 사람이 <지명>풍기군(豐基郡)지명>에서 와서 진사 <인명>송원벽(宋元璧)인명>과 판서 <인명>조휘림(趙徽林)인명>은 친분이 있었는데 조 판서가 <지명>열하(熱河)지명>로 위문사를 맡아 출발하려 할 때, 송 진사와 함께 하고 싶어 군관으로 삼아 동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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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19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7일째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겨우 개었다. 집집마다 계옥(桂玉)의 탄식을 하니 매우 난감하다. 부(府)의 이교(吏校)가 와서 현내(縣內)의 전결(田結)을 독촉하기에 주어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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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13일
| 哲宗 12
| 辛酉
| 가뭄 기운이 또 너무 심하다.
천수답이 모두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졌으니 이삭이 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재종손(再從孫) <인명>낙응(洛應)인명>이 처가인 <지명>함창(咸昌)지명>에서 돌아와서 전하기를, 괴질이 올해는 <지명>전라도(全羅道)지명>에서 더욱 심하고 길가에 떠도는 말들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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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6월 23일
| 哲宗 12
| 辛酉
| 개다.
별사(別使) <인명>조휘림(趙徽林)인명>이 먼저 와서 계초(啟草)한 것을 보았는데, 황상(皇上)의 병세가 위중하고, 중국[中原]의 농사 형편이 큰 가뭄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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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10일
| 哲宗 12
| 辛酉
| 더위가 심하다.
자형은 아침에 <지명>공성(公城)지명>의 강 여(姜女)의 집에 가는 행차를 출발했는데, 그 편에 나의 한글 편지를 강 실(姜室)에게 부쳤으니 또한 막혔던 마음이 풀기 위해서다. 사동에 거주하는 두 족인이 방문해서 전하기를, "<지명>동래부(東萊府)지명>의 안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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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8월 16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하상(河上)지명>의 교리 <인명>류광목(柳光睦)인명>, 질서(姪壻) <인명>류도발(柳道發)인명>이 내방했다. 계아(季兒)가 오후에 두 차례 오들오들 떨었는데, 담중(痰瘇)의 조짐 같아 밤새도록 걱정하며 눈을 붙이지 못했다. 호랑이에게 마음이 상한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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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1월 12일
| 哲宗 12
| 辛酉
| 비가 내리다.
둘째아이가 <지명>신양(新陽)지명>에 묵고 비를 무릅쓰고서 돌아왔다. <지명>법전(法田)지명> 강 랑(姜郞)의 아우가 찾아왔다. <지명>소산(素山)지명>의 인편으로부터 또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편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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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8월 22일
| 哲宗 12
| 辛酉
| 이른 아침에 매우 추워서 이슬이 서리가 되다.
들으니 <지명>도촌(道村)지명> 위장(衛將) <인명>김계한(金啓澣)인명>이 어제 그 모친을 장사 지냈다고 하여 하인을 보내 위장을 보냈다. <지명>성곡(城谷)지명> 장 아(張雅)가 내방했다. <지명>원촌(遠村)지명> 척손인 <인명>이만시(李晩時)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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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0월 4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다. 가랑비가 내리다가 저녁에 개다. 새벽에 또 비가 내리다.
가질(家姪)이 선성(宣城)에서 저물녘에 돌아왔다. 늙은 자형과 이 랑(李郞)의 답장을 얻어 보았다. 새벽에 또 비가 내리다. 처마 끝에 낙숫물이 어지럽게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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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8월 19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서교(西郊)에 소작농의 청으로 아픈 다리를 끌고 농사를 살폈다. 백수에 부탁할 데가 없으니 이 어찌 견딜 만한 일이겠는가. 스스로 운명을 돌아보니 마음이 매우 편치 않았으나 어찌하겠는가. 길에 <지명>한양지명>에서 오는 위장(衛將) <인명>김계한(金啓瀚)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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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9월 15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가을 기운이 쓸쓸하고 오싹하다. 마음이 많이 편안하지 못하였다. 혹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두통과 치통이 함께 하니 견디기 어려웠다. 스스로 가련한들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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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0월 14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일직 척손(日直戚孫) <인명>남석호(南錫虎)인명>가 와서 폐사(廢祀)의 연유를 말했는데, 듣고는 서운함을 견딜 수 없으나 역량이 넉넉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해마다 어찌 다만 9위에 포과를 부조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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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3일
| 哲宗 12
| 辛酉
| 비가 밤새도록 많이 쏟아지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도랑에 모두 물이 가득 찼다. 오늘은 <지명>매화동(梅華洞)지명> 둘째며느리의 기일이다. 밤에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지명>반촌(泮村)지명>에 머무르던 종이 오늘 아침에는 아마도 돌아오는 길에 오를 것 같지만 비 내리는 기미가 이와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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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16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어젯밤에 계집종들을 불러서 숭채(菘菜: 배추)밭에 물 대게 하고 오늘 아침 다시 밭갈고 파종하게 했는데 그 물이 하루 가뭄도 보전키 어려울 듯하니 이것이 걱정스럽다. 듣자하니 부내의 괴질이 <지명>수동(壽洞)지명>에서 더욱 성중에 들어가서 학가산의 우는 여우가 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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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8월 20일
| 哲宗 12
| 辛酉
| 꼭두새벽부터 비가 내리다.
비가 내리는 것이 지리(支離)해질 것 같았다. <지명>소산(素山)지명> <인명>김이형(金履亨)인명> 벗이 말을 빌려 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가 왔는데, 그 선인 면례(緬禮)가 내일 있기 때문이었다. 힘써 비를 무릅쓰고 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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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1월 15일
| 哲宗 12
| 辛酉
새벽에 죽은 형의 기제사에 참석했다. 아침 내내 심기가 불편하니 백수(白首)에 형제를 그리는 슬픔이 갈수록 견디기 어려워서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밤에 월식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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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0월 10일
| 哲宗 12
| 辛酉
| 날씨가 매우 따뜻하다.
대지(大枝) 각위 시사(各位時祀)에 가서 참여하였다. 잠암위(潛庵位)에는 곧 작년 봄 분황(焚黃) 후에 비로소 참배하였다. 재작년 겨울에 증직을 받은 때의 일을 추억해보니 시사가 더욱 옛날에 대한 감회를 견딜 수 없었다. 또한 음복하는 자리에 모인 제종들은 76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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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9월 13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우천(愚川) 류 척(柳戚)이 와서 하루를 머물렀다. 타고 온 말이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 이것이 비록 미물이지만 불행이 곧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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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9월 21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가동(家僮: 집안 심부름을 맡아 하는 아이)들에게 동쪽 밭의 가을보리를 갈라고 시켰다. 가을에 차아(次兒)가 <지명>풍산(豊山)지명> <지명>소산(素山)지명>에서 돌아와 <인명>우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에게 편지를 부칠 것을 부탁하였다. 모두 수락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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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0월 20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하상(河上)지명> 편으로부터 또 <인명>우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편지를 받아보았다. 격조한 나머지 연일 소식을 들으니 조금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또한 각처 면상(綿商)이 와서 올라갈 것을 알렸다. 그 뒤에는 계속해서 왕래가 있을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