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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0월 3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망천(忘川) 하인이 왔다. 새벽에 신가(新家)의 임아(任兒)가 이증(痢症)으로 결국 죽었으니 근래 상화(喪禍)의 나머지이니 그 또한 심하다. <지명>대지(大枝)지명>에 사는 <인명>운이(雲伊)인명>가 한양에서 돌아와 <인명>우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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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2일
| 哲宗 12
| 辛酉
| 춥다.
종일 세배하는 위아래 사람들과 힘들게 보냈다. <지명>망천(忘川)지명> 사부인(査夫人)의 중상(中祥)이 오는 5일에 있어 내일 하인을 보내기 때문에 편지를 써서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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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14일
| 哲宗 12
| 辛酉
| 종일 비가 내리다.
사방의 교외는 물이 넘쳐서 내행(內行)은 출발할 때가 되었는데 낭패가 되었다. 목 아(木兒) 또한 처갓집으로 가서 이제 7일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데 사방의 강물이 불어서 그가 돌아오는 것 또한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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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7일
| 哲宗 12
| 辛酉
| 더위가 심하다.
강정(江亭) 자형(姊兄) 사초씨(士初氏)가 왔으니 10여년동안 적조한 나머지에 각자 상을 당해 흰 머리로 거듭 만나니 슬픔과 기쁨을 헤아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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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6월 18일
| 哲宗 12
| 辛酉
| 매우 덥다.
<지명>풍기(豊基)지명>의 <인명>안용좌(安龍佐)인명>는 자(字)가 해경(海卿)인데 들으니 땅을 보는 눈[地眼]이 있다고 한다. 전날에 차아(次兒)가 <지명>오천(浯川)지명>에 갔다 왔는데, 식후에 올라 와서 서양(西洋)의 군대가 근래에 일본의 여러 섬을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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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8월 8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나에게 재종질이 되는 <인명>용흠(龍欽)[김용흠(金龍欽)]인명>에게 수 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하는 물건이 있었는데, 그가 출입을 긴요하게 여기지 않음이 더욱 심하고, 그가 중요한 일을 신중히 하지 않으니 더욱 두려워할 만 했다. 늘그막에 그가 가업을 성취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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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17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다가 오후에 해가 나다.
내일 새벽에 숙모님의 기제사가 있어서 척종질(戚從姪) <인명>진우(進瑀)인명>가 왔으니 쉬운 일이 아니다. 듣건대 <지명>용궁(龍宮)지명>에 세 유생이 등제하여 방(榜)이 왔다고 하니 공도(公道)에서 나온 것 같다. 집 아이의 소식은 궁벽한 곳처럼 아득하니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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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5일
| 哲宗 12
| 辛酉
| 또 덥다.
한 여름의 기운이 있다. 오후 한 때 먹구름이 서북으로 가로 질러 있으나 또한 비가 올 기미는 아니다. 듣기로 시전(市廛)의 남초(南草) 가격이 금과 같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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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11일
| 哲宗 12
| 辛酉
| 매우 덥다.
아침에 심부름꾼을 부중(府中)으로 보내 정소하고 오게 했는데 저물녘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필시 원인이 있을 것이다. 밤에 침석(枕席)이 찌는 듯이 더워 잠이 들지 않았다. 갈전(葛田) 안 진사(安進士)가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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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14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계아(季兒)를 앞 두들에 보내어 <인명>김취형(金致亨)인명> 형이 잠시 왕림해 주길 청했는데, 면례를 하기 위해서였다. 김 형(金兄)에게 편지를 쓰고, 또 원방(元方)에게 편지를 부쳐 오게 했다. 계아가 출발한 이후에 생각해보니, 나는 당연히 낙연서원(洛淵書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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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12일
| 哲宗 12
| 辛酉
| 매우 덥다.
차아(次兒)를 <지명>풍포(豊浦)지명>와 <지명>우안(愚安)지명> 여러 곳에 보내 봄에 농사를 지은 삼맥(三麥)을 살펴보게 했다. 소장을 올리러 간 동(洞)의 심부름꾼이 저녁이 되도록 또 돌아오지 않기에 마음속으로 의아했다. 동임(洞任)을 불러 심부름꾼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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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30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매우 덥다.
마을의 젊은이들의 백일장이 있었는데, 나 역시 가서 보았다. 오늘 아침에 <인명>풍서면(豊西面)인명>에 다시 징수하는 것을 주었으니 역시 세변(世變)을 볼 수 있다. 관(官)에서 장교 <인명>권우항(權遇巷)인명>에게 만나보기를 청하는 전갈을 했다고 하니,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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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6월 16일
| 哲宗 12
| 辛酉
| 매우 덥다.
<지명>법전(法田: 봉화 법전)지명>의 강 랑(姜郞)이 영산전(靈山殿)에 와서 공부하다가 오후에 보러 왔다. 어떤 사람이 와서 전했는데, <지명>동래(東萊)지명>에 관(關)을 지키는 왜인(倭人)이 일시에 철거하여 돌아갔다고 한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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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8월 6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재종질 <인명>명흠(明欽)[김명흠(金明欽)]인명>이 그저께 둘째 딸을 노목(老牧)에 장사를 치르고 돌아왔기 때문에 아침을 먹은 뒤에 보러갔다. 들으니 중전이 낙태했다고 하니, 국가가 고위(孤危)한 지경에 놀람을 이길 수 없었다. 또 들으니 동래 부사가 장계하고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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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18일
| 哲宗 12
| 辛酉
| 비가 내리다.
5일 동안 겨우 이앙을 마쳤지만 이앙할 종자를 잃어버려서 몇 마지기는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집안의 종들이 성의가 없으니 생각건대 매우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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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12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족제(族弟) <인명>중범(重範)인명>이 향회로부터 돌아왔는데 부내 괴질의 상황이 매우 두려운 것을 전하며 말하기를, "열흘 내에 갑자기 죽은 사람이 70여명이나 됩니다."라고 했다. 이는 큰 백성들의 액회이다. 주쉬(主倅)는 광흥사(廣興寺)로 나가 피하려고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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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6월 22일
| 哲宗 12
| 辛酉
| 비가 내리다.
상사(上舍) <인명>류독영(柳{馬+賣}永)인명>의 편지를 보았다. <지명>한양지명> 소식을 들었는데, <지명>동래(東萊)지명>에서 위조한 책[贋本]의 일로 양사에서 죄의 지은 관리를 명단에서 삭제하였고, 대사간 <인명>임백수(任百秀)인명>를 절도에 정배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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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8월 12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아침 전에 전점(前店)을 지나가는데 부(府)의 하인이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편지를 전했으니, 바로 지난달 27일에 보낸 것이었다. 그 아이는 다행히 무탈하게 <지명>반촌지명>에 머물고 있으나 도기(到記)가 연기되어 걱정되었고, 또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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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8월 15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둘째아이가 <지명>오천(浯川)지명> 약국에서 돌아와 <인명>안기승(安奇丞)인명>이 임지로 가는 행차가 <지명>오천지명>에 머물고 있다고 하여 모시는 아전을 불러 <지명>한양지명> 소식을 물으니 도기(到記)는 아직 시행되지 않았고, 성내에 또 괴질이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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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9월 23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아이의 이증(痢症: 설사 증세)이 혹 차도가 있으나 대부분 거의 죽은 자들이니 매우 근심스럽다. 또한 약장사가 경영이 핍박하여 약값을 재촉하러 왔으니, 매우 근심이 되었다. 계아(季兒)가 오늘 <지명>오천(浯川)지명>에 갔는데 대개 큰 병 뒤에 처음 일어나 움직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