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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2월 23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어제 저녁에 하상(河上) 인편으로 온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편지를 보니 이번 달 11일에 보낸 것이었다. 편지 내용에 편안히 독서를 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유곡(酉谷) 진사(進士) <인명>권평중(權平仲)인명>이 10일에 <지명>한양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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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7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저동(芋洞)지명>의 <인명>이택견(李宅鍵)인명>이 보러왔다. 올해 낙연서원(洛淵書院)의 재석(齋席)으로 향례가 멀지 않아 와서 의논할 것이 있었다. 그로 하여금 여차여차하게 했다. 둘째 아이는 집의 담장 공사를 시작했고, 막내 아이는 <지명>오천(浯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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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2월 11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니 크게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릴 징조이다.
듣기로 <지명>오동(烏東)지명> 등지에 7, 8일 간에 병으로 죽은 자가 있다고 하였다. 생령(生靈)의 액회(厄會)가 어찌 갈수록 더욱 이와 같으리오. 봄이 오면 전염병이 심해질 것인데 어찌하겠는가! 밤에 바람이 크게 불고 춥다. 내 감기는 이미 한 달 가량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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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5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반구(潘邱)지명>에 우거하는 <인명>권송(權送)인명>의 아들이 방문해서 <인명>유옥(柔玉)인명>의 부증(浮症)에 대해 묻고 월비사령산(越婢四苓散)의 처방전을 얻었으나 <지명>오천(浯川)지명> 약국의 주인이 없어 조제를 하지 못하고 오니 답답하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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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8월 5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아침에 매우 춥다.
들으니 어제 거센 바람으로 오곡이 모두 쓰러졌는데, 그중에 수수, 조 그리고 무논의 벼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했다. <지명>구담(九潭)지명> 앞 강동 댁(江東宅) 장손 <인명>신석영(申錫瀅)인명>은 자가 대규(大圭)로, <지명>덕현(德峴)지명>에 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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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3일
| 哲宗 12
| 辛酉
| 가뭄의 기운이 매우 심하고 아침저녁으로 추운 것이 1월의 절기와 다름이 없다.
오늘 아침 영하(嶺下)로 3마리 말과 두 명의 하인을 보내어 우리 아이들을 태워 오게 했다. 한낮에 원촌(遠村) 이 상서(李尙書), 온혜(溫惠) 이 홍주(李洪州)가 왔다. 대게 <지명>오천(浯川)지명>에 산지를 정하는 것 때문이다. 종질(從姪)로 하여금 모셔서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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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23일
| 哲宗 12
| 辛酉
이른 아침에 관에서 이방[首吏] 및 도리(都吏)를 시켜 결총(結摠)의 전전문기(前前文記)를 가지고 내가 있는 곳의 아래에서 증험했다. 수령이 담당하지 않으려고 하니 진실로 매우 통탄스러울만하다. 식후에 도소(都所)로 가서 이별을 알렸다. 억지로 만류하는 자가 많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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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12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오다.
새벽에 꿈을 꾸었다. 내가 <지명>한양지명>에서 돌아왔는데 마을에 큰일이 있었다. 의관을 갖춘 사람이 모여든 것이 수풀 같았다. 무려 돈 많은 사람이 내가 온 것을 보고 모두 와서 절을 하니, 그 분요함을 말할 수 없다. 얼마 되지 않아 관아의 향리가 본부의 선생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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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6일
| 哲宗 12
| 辛酉
| 흐려 해가 나타지 않다. 늦은 아침 뒤에 창 색이 갑자기 누렇게 되고 땅 색 또한 누렇게 되여 일식(日蝕)과 같았고, 조금 있다가 누런 안개가 사방에 가득하여 몹시 침침하고 어둡다.
전날 밤 해시(亥時)에 종질(從姪) …… 하동 실(河東室)이 부증(浮症)으로 세상을 버리니, 그 사람과 그 나이가 애석했다. 아침 늦게 창문 색이 갑자기 누렇게 되고 땅 색 또한 누렇게 변하여 일식(日蝕) 같았고, 조금 있다가 누런 안개가 사방에 가득하여 몹시 침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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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22일
| 哲宗 12
| 辛酉
| 비가 내리다.
어제 저녁에 <지명>하상(河上)지명> <인명>류도성(柳道性)인명> 군이 조카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일소(一所)는 <지명>서울지명> 편지를 보니 상시관(上試官)이 초기(抄記)를 올린 까닭으로 응강을 멈춘 지 수 일째이다."라고 하니, 남은 희망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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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20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반촌(泮村)지명>에 머무르던 종이 지금 한 달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하나 있는 종 <인명>영직(英直)인명>은 또 병으로 나흘 동안 누워있으니, 집안일에 두서가 전혀 없다. 응강을 연 것도 이미 열흘째인데 지금까지 소식이 없으니 비록 괘첨(掛籤)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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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8일
| 哲宗 12
| 辛酉
| 아침에 구름이 끼고 흐리다.
오랫동안 햇볕이 내리쬐어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목 아(木兒)를 그의 처갓집에 보냈는데 몇 리도 못 되어 비가 내렸다. 대개 내일은 그의 빙모의 면례(緬禮)인데 종일 옷이 젖을 것이니 매우 마음이 쓰이고 염려된다. 오후에 개니 혹 당일에 곧바로 도착하였을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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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9일
| 哲宗 12
| 辛酉
| 가물고 바람이 크게 불다.
황사로 눈이 흐릿하다. 상여 행렬을 뒤따라 <지명>우안(愚安)지명>에 성묘를 갔다. 이어 <지명>오치(梧峙)지명>에 성묘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지명>장려동(長麗洞)지명>에 성묘하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인명>유옥(柔玉)인명>의 병이 더욱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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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6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족제 <인명>김경회(金景會)인명>가 부중(府中)에 머물고 있다. 이번 달 초 10일 영저(營底)에서 향회를 하는 일로 통문을 썼는데, 고을 사람의 낭패이니, 차라리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어찌하고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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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18일
| 哲宗 12
| 辛酉
| 아침에 춥고 낮에 덥다.
<지명>송지(松枝)지명>의 벗 <인명>박상산(朴商山)인명>이 와서 전하기를 어제 <지명>서울지명>에서 내려온 <지명>소산(素山)지명> 사람을 만났는데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과거 일은 여론에 염려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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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6일
| 哲宗 12
| 辛酉
| 쨍쨍한 해가 매우 성하다.
시험 삼아 앞들에 나가서 심은 것을 보았다. 논에 물이 거의 없어서 이앙을 하지 못하고 전(田) 가운데 삼맥(三麥: 밀·보리·쌀보리)은 모두 하얗게 말랐다. 보기에 매우 근심되고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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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6일
| 哲宗 12
| 辛酉
<인명>우 아(宇兒)[김우欽(金宇欽)]인명>가 이른 아침에 행장을 꾸려 <지명>한양지명>길을 출발했다. 날씨는 비록 서늘하지만 험한 시기에 먼 여정을 가야하니 매우 염려됨이 적지 않다. 이어서 또 전고의 하인이 와서 원방(元方)의 답장을 보고 지난달 그믐쯤에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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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4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감현(甘縣)지명>과 <지명>화계(花溪)지명>의 족숙이 내방했다. <지명>재산(才山)지명>의 족제 <인명>김경회(金景會)인명>는 부중(府中)에 머물렀다. 급하게 전한 편지가 있었는데, 관아에서 생각한 기한에 다시 징수하고자 했다. 향인(鄕人)이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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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16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막내아이가 <지명>오천(浯川)지명>에 가서 또 자기가 복용할 약 10첩을 지어 왔으니 전에 복용한 것이 조금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듣건대 <지명>상계(上溪)지명>에서 점유한 <지명>오천지명>의 산지는 무덤을 파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녁을 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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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4일
| 哲宗 12
| 辛酉
| 매우 덥다.
<인명>수 아(守兒)[김수흠(金守欽)]인명>,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 두 아이와 종손(從孫) <인명>낙주(洛周)[김낙주(金洛周)]인명>가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 원촌(遠村) 이 상서(李尙書), 온혜(溫惠) 이 홍주(李洪州), 부포(浮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