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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18일
| 哲宗 12
| 辛酉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지난밤 내린 잔설이 있었다. 소산(素山) <인명>이학여(李學汝)인명> 형이 내방했다. 상인(喪人) <인명>박태원(朴泰元)인명>이 반나절이나 와서 이야기를 했는데, 들으니 면내의 사람들이 또 향회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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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6월 2일
| 哲宗 12
| 辛酉
| 아침부터 또 바람기가 있다.
아침부터 또 바람기가 있으니, 이것은 불이 성하여 바람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듯하다.[火熾則風生: 『주역(周易)』 「가인(家人)」) 들으니 사방들의 이앙에 모두 새뿌리가 없고, 또 충재(蟲災)가 있다고 하니, 가을걷이가 매우 염려스럽다. 촌내(村內)의 노인회를 도림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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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23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화계(花溪)지명>의 족조(族祖) <인명>상암(相嵒)인명>씨와 <지명>거촌(巨村)지명> 김 진사 숙부가 내방했다. 비복(婢僕)들로 하여금 동쪽 밭에 목화를 심게 했다. 족조 <인명>상암인명>씨는 67세의 늙은이인데 마침 도착했기에 촌내의 여러 친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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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23일
| 哲宗 12
| 辛酉
| 아침에 구름이 끼고 흐리다.
박(朴)과 최(崔) 두 명을 <지명>전고(前皐: 영주 풍기 창락리)지명>에 보내 척질(戚姪) <인명>김수승(金秀升)인명>을 방문하게 하였는데, 대개 <지명>한양지명>의 물건을 바꿀 계획이다. 일정을 헤아려 보니, 행차가 30리를 못가서 또 비를 만난 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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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4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종일 신기(身氣)가 고르지 않았다. <지명>하상(河上)지명>의 <인명>류경만(柳景萬)인명> 형의 아들, <인명>사옹(士雍)인명>의 아우가 모두 한양에 과거 길을 떠났다.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에게 편지를 부치고 아울러 봄옷 3~4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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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23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족질 <인명>우흠(友欽)[김우흠(金友欽)]인명>이 돌아왔다. <지명>재산(才山)지명>에서 오는 길에 부중(府中)에 들러 부리(府吏)의 <지명>한양지명> 편지를 베껴왔다. 보니 매우 놀라웠지만 대법황(大法皇)의 말을 뇌자관(賚咨官)도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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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19일
| 哲宗 12
| 辛酉
| 새벽 전에 또 잔설이 내리다.
나는 오늘 밤에야 비로소 수 식경을 편하게 잤다. 자연히 봄기운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지명>법전(法田)지명> <인명>강유(姜鍮)인명> 랑(郞)이 보러 왔는데 장차 <지명>하회지명>로 떠날 예정이니, 그의 사장(査丈)이 이번 달 초에 모시던 종부(從父)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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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17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들으니 <지명>풍산(豊山)지명>, <지명>수동(繡洞)지명> 등 지역에서 괴질이 창궐한다고 하니 이 곳 부내와 매우 가까우니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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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24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화계(花溪)지명>의 족조가 본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면서 대나무 뿌리와 국화 떨기를 요청하기에, 가동(家僮)으로 하여금 채취하여 주게 했으나, 속객에게는 합당하지 않다는 농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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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24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다.
다시 징수하는 서리(胥吏), 군교(軍校) 무리 다수가 촌중(村中)에 들어왔는데, 그 몰골이 매우 좋지 않았다. 함께 불러 낮 요기를 했다. 종손(從孫) <인명>낙주(洛周)[김낙주(金洛周)]인명>가 전부터 병이 나서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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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25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부리(府吏) <인명>권연중(權然重)인명>이 상경하던 길에 들려 훈태(訓台)와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에게 편지를 부치고, 그로 하여금 속히 회신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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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7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서울지명>에 갔던 종과 말이 매우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날마다 둘째아이의 집에 담을 쌓는 일을 감독하니 또한 매우 괴로운 일이다. 밤에는 억지로 움직인 피로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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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19일
| 哲宗 12
| 辛酉
| 마른 더위가 더욱 심하다.
아침에 들으니 <지명>기북리(枝北里)지명>에도 괴질이 들어서 두 사람이 갑자기 죽었는데, 증세는 쥐가 나왔다가 쥐가 배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한다. 본동에서는 오늘 아침 동신제관을 출발시켜 장차 26일에 제사를 거행할 것이라고 한다. <지명>한양지명>에 간 인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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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26일
| 哲宗 12
| 辛酉
| 잠깐 흐리다가 잠깐 볕이 나다. 오전에 큰 우레 소리가 한번 나더니 이어서 종일 비가 내리다.
<인명>이세모(李世模)인명> 형과 벗 <인명>이부옹(李孚顒)인명>이 찾아왔다. 목 아(木兒)가 처가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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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26일
| 哲宗 12
| 辛酉
| 잠시 맑다가 잠시 흐리다. 매우 덥다.
부내(府內)의 서리와 군교 무리 및 재인(才人)이 갔다. 낙원(洛院)[(洛淵書院)]의 하인이 왔는데 역시 다시 징수하는 일 때문이다. 또 손아(孫兒)의 말을 들었는데, 족질(族姪) 마동 빈(馬洞賓)이 붙잡혀가서 칼을 쓰고 갇혔다고 한다. 그러므로 옥에 문안하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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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24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저녁 후에 햇빛을 보다.
해를 보지 못한지 수 순(旬)이 되니 매우 괴이했다. 칠선주(七仙酒)를 마시고 싶어 아침에 종을 시켜 황송(黃松) 가지를 채취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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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14일
| 哲宗 12
| 辛酉
| 흐리다.
밤에 촌아이들이 보리타작 놀이를 하고 촌의 하인이 조산(造山)에 제사를 지냈는데, 오래 병을 앓는 나 같은 사람은 이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당연히 시끄러웠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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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18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새벽에 조모의 제사일에 참석했다. 새벽에도 더위가 물러나지 않아서 삼베적삼이 다 젖었다. 랑에 우거살이 하는 칠복(七福) 놈이 <지명>예천(醴泉)지명>에서 돌아와서 전하기를, "주관이 속오와 군자를 다 찾아서 기계가 이미 갖추고 기고를 나열하여 임장군 묘에서 제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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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3월 25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비가 올 것 같다.
<인명>수아(守兒)[김수흠(金守欽)]인명>가 떠난 지 이미 4일이다. 말이 만약 아무 탈이 없다면 <지명>충주지명>의 경계를 지나갔을 것이다. 돌아오는 인편에 소식을 들을 수 없어 답답하다. 오후에 <지명>방곡리(方谷里)지명>의 13가옥이 일시에 불이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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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5월 25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다.
<인명>주 아(周兒)[김낙주(金洛周)]인명>의 증상을 가서 보았다. 복통과 두통이 아울러 발병하여 의식을 잃어 사람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근심을 말할 수 없다. 병방(兵房) <인명>권상복(權尙福)인명> 또한 결복(結卜) 일책(一冊)을 징수하는 일로 나와서 면(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