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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8월 29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낙연서원향례(享禮)하는일로식후에서원으로떠났다.병산서원접소(接所)에가니성상(城上)마침고목(告目)을올려접사(接事)를마련하고있었다.여러해비방하던끝에내어찌그사이에간여하고싶겠는가.가을에면례(緬禮)를경영하고자하여사우(士友)들에게문주(文酒)할겨를이없다고핑계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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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1월 23일
| 哲宗 12
| 辛酉
| 바람이 조금 잦아들다. 저녁에 또 바람이 일어났다.
식후에 <지명>매원(梅院)지명> 이 사형(李査兄)이 돌아갔다. 저녁에 또 바람이 일어나니, 노인의 행색이 매우 염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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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24일
| 哲宗 12
| 辛酉
| 바람 불다.
여러 날 밤잠을 이루지 못한 뒤끝에 거듭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내서 온몸이 피곤하여 침상에서 뒤척였다. 마을의 젊은이들이 <지명>달성(達城)지명> 감영에서 돌아와서 과거 시험장에 들어갈 때의 일을 전했는데, 적막을 깨트릴만했다. 계단위의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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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12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둘째가 오전에 <지명>하회(河回)지명>에 가서 그의 처남 <인명>류도헌(柳道献)인명>과 함께 <지명>달성(達城)지명>으로 과거 길을 떠나니, 험한 해에 좋은 동행이다. 그러나 앙역(仰役)하는 두 놈이 모두 서울과 시골로 출발했으니, 난감하게 되었다. 밤에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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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8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일꾼에게 <지명>서촌(西村)지명> 밭에 보리를 뿌리게 했다. 오늘은 용눌재(慵訥齋) 이 공(李公)의 묘에 입석하는 날이어서 막내 및 마을의 젊은이 몇몇으로 하여금 관음사(觀音寺)에 다녀오게 했다. 또 고용인에게 돈 1민(緍)을 지급하고 그로 하여금 산에 적재된 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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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1일
| 哲宗 12
| 辛酉
| 바람이 불어 음산하고 춥다.
아침에 동전을 던져 익(益)이 이(頤)로 변하는 괘(卦)를 얻었으나 길흉을 알지 못해 아이들로 하여금 점쟁이에게 물어보게 했다. 집안 종증손이 <지명>하회지명>에서 돌아와 전하기를, 한 상인(喪人)이 스스로 우는 금(琴)을 팔았는데 그 소리가 오음(五音)이 번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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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2월 21일
| 哲宗 12
| 辛酉
| 따뜻하다.
백양(白陽)을 지키고 보호하는 방법은 한 때라도 집이 없으면 안 된다. 홍 가(洪哥)에게 앞 주점을 사서 자재를 뜯어 옮기니 매우 속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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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7월 3일
| 哲宗 12
| 辛酉
| 매우 덥다. 조금 바람이 있다. 밤에 가을 기운이 있다.
낙연서원 하례가 또 별소의 성상(城上)이 수금된 일로 고목을 내었으니, 들으니 심히 머리가 아프다. 삼아(三兒)의 <지명>한양지명>에 가는 일은 초6일로 바꾸어 정하였다. 진사(進士) 류효목(柳孝睦)의 답장을 보고 주쉬(主倅)가 이번 보름에 <지명>하상(河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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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9월 2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이른 아침에 음복을 한 뒤에 즉시 길을 돌렸다. 중로에 진사(進士) <인명>이재철(李在哲)인명>을 방문하여 내간의 인사를 닦고 올라왔다. 면내 늙은 벗들 중 더러는 흩어지지 못하고 더러는 오늘 와서 서로 수접(酬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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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25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촌내에서 <지명>달성(達城)지명>으로 과거보러 갔던 유생이 모두 돌아왔으나 <인명>수아(守兒)[김수흠(金守欽)]인명>는 길을 빙 돌아오느라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인명>영직(英直)인명>은 아직도 소식이 없으니, 내 병이 더치는 바탕이 될 만 했다.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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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17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저녁에 직팽(直伻)이 향회소(鄕會所)에서 연명한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관의 뜻으로 일어나기를 권하니, 실로 믿을만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참석하기 어려웠다. 진실로 병 때문에 억지로 하기 어려우니 어찌 다른 피할 뜻이 있겠는가. 답답하고 괴로움이 심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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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14일
| 哲宗 12
| 辛酉
| 맑고 춥다.
맑고 추우니, 매우 가뭄이 될 조짐이 있을 듯하다. 노정을 따져보니 가동(家僮)이 오늘 저녁 반촌에 다다랐을 것이고, <인명>우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그를 보고 반드시 놀라며 기뻐할 것이다. <인명>수아(守兒)[김수흠(金守欽)]인명>의 달성 감영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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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6월 28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하상(河上)지명>종증손부가왔고,<인명>류난영(柳蘭永)인명>아(雅)도보러왔다.낙연서원별소의성상(城上)이또금년에재징(再徵)하는일로와서간청하니듣는것이심히편치못하나어쩌겠는가.부득이하게<지명>서선면(西先面)지명>에패지를썼다.해당서원의아비가또진사(進士)<인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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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8월 27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지명>임하(臨河)지명>의 이름이 <인명>종문(鍾聞)[우종문(禹鍾聞)]인명>인 <인명>우이원(禹以遠)인명> 형이 왔다. 목 아(木兒) 또한 돌아왔으니, 산을 구해 면례할 계획 때문이었다. 내가 바야흐로 다리가 아팠고, 아이들 모두 유고(有故)하여 근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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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1월 21일
| 哲宗 12
| 辛酉
| 구름이 끼고 흐리더니 저녁 뒤에 눈이 많이 내리다.
오늘은 동지(冬至)이다. 이 사형(李査兄)과 함께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듣건대 <지명>상주(商州)지명> 각 면의 백성들이 결환(結還)하는 일로 거의 만여 명이 동, 서, 남문 밖에 진을 치고 모였는데 그 기상이 매우 위태로우며, 또 각각 새끼줄을 가지고 이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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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21일
| 哲宗 12
| 辛酉
| 아침에 먹구름이 끼고, 샛바람이 크게 일다.
나는 향회소 도감(都監)으로 이름만 띠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빨리 힘써 와야 한다고 해서 여러 달 큰 병 뒤 끝에 하루 종일 추위를 맞으니 손상됨이 있는 것 같다. 또 딸아이의 병으로 생사를 염려하느라 근심스러운 행색으로 저녁 무렵 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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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10일
| 哲宗 12
| 辛酉
| 바람 불다.
아침일찍일어나영직(英直)을반촌에보냈는데,긴요한일이있기때문이다.그러나농사철에앙역하는가팽(家伻)이먼길가는일로헛되게시간을보내니,이것이고민된다.그편에삼아(三兒)의상복을부치고아울러각처에보내는편지도부쳤다.<인명>우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도기(到記)를본후에내려오는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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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6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족질 <인명>김철흠(金喆欽)인명>이 <지명>북협(北峽)지명>에서 돌아와 내면에는 <지명>한양지명>에 간 유생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패(亞佩)에 관한 설은 듣기에 좋지 않으니, 모두 요사스러운 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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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월 28일
| 哲宗 12
| 辛酉
| 몹시 춥다.
병방(兵房) <인명>권상복(權尙福)인명>이 보러왔으니, 개인적인 부탁이 있어서였다. <지명>도동(道洞)지명>의 류 랑(柳郞)과 <지명>무이(武夷)지명>의 이 랑(李郞)이 보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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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6월 25일
| 哲宗 12
| 辛酉
| 맑다.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지명>동래(東萊)지명>의 안본(贗本: 위조된 책)은 곧 대마도주(對馬島主)가 양이(洋夷)의 일로 동래 부사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라는 설이 조정에 함부로 전해서 일이 생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