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0년 4월 21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 한 놈이 왔으나 또 관청일 때문에 읍중으로 불려 갔다. <인명>박상렬(朴尙烈)인명>, <인명>정퇴묵(鄭退默)인명>이 보러 왔다.
-
1860년 4월 2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는 또 관청일로 불려갔으나 대장장이는 계속해서 철물 만드는 일을 했다. 남유쇠(南有釗), 권영관(權永觀), 정퇴묵(鄭退默)이 보러왔다.
-
1860년 3월 23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종가의 뒤 기슭에서 헌함(軒檻)의 렴(簾)에 사용할 나무를 베었으나 멀지 않은 곳에 장렴(長簾) 생나무를 운반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노정(奴丁) 십여 명이 줄을 매어 끌기도 하고 소달구지에 실어 마침내 해당 장소로 운반했다. <인명>주재룡(朱在龍인명>), <인명
-
1860년 4월 18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
1860년 3월 23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기와 옮기는 것을 다하지 못해, 노정(奴丁)들이 종일 다 운반했다. 토수(土手)를 불어 기와 덮기를 시작했다. <지명>석포(石浦)지명> <인명>이수영(李秀榮)인명>이 와서 묵었다. <지명>저곡(楮谷)지명> 친척 대여섯 명이 와서 문안했다 감역(監役) <인명>
-
1860년 3월 11일
| 哲宗11
| 庚申
| 비가 오다.
목수가 귀가했기 때문에 공사를 멈췄다.
-
1860년 2월 13일
| 哲宗11
| 庚申
| 흐렸다가 갰다가 하다.
마을 안 군정(軍丁) 30여 명이 종일 땅을 다듬었다. 점심과 술동이 또한 친족 집에서 마련해 내었다. <지명>원구(元邱)지명>의 <인명>박진규(朴鎭奎)인명>, 같은 마을 <인명>박동찬(朴東燦)인명>, <인명>정퇴묵(鄭退默)인명>이 작업장에 와서 문안했다
-
1860년 3월 26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동풍이 홀연히 불다.
목수가 일 한 것은 단지 헌함(軒檻)을 갖춘 것뿐이었다. <인명>권영관(權永觀)인명>이 보러 왔다. <지명>송천(松川)지명>의 김 이전(金吏專)이 축하하러 왔다. 아전이 이러한 도리를 아니 매우 감탄할 만 했다.
-
1860년 4월 10일
| 哲宗11
| 庚申
| 비가 내리다.
우리 마을 군정(軍丁) 30여 명이 흙을 지거나 돌을 모았다. 이어서 주사(廚舍) 앞의 모래 제방을 개척했으나 "{吐/乙}"을 뚫어 물이 터졌다.
-
1860년 5월 4일
| 哲宗11
| 庚申
| 비가 내리다.
쨍쨍한 날에 비가 조금 내리는 탄식이 있었으나 이제야 비로소 흡족하여 이로부터 각 집에서 이앙하는 일이 급했다. 이에 일을 살피는 것이 지난날만 못한 것 같았으나 각기 서로 경계하여 태만함이 전혀 없었다. <인명>이교영(李敎榮)인명>, <인명>이덕영(李德英인명>
-
1860년 4월 22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 한 놈이 일하러 왔으나 대철(大哲)은 읍내로 가서 언제 올지 몰랐다.
-
1860년 2월 9일
| 哲宗11
| 庚申
| 바람과 추위가 조금 풀리다.
<인명>이재영(李再榮)인명>, <인명>이수근(李壽根)인명>, <인명>이성호(李性浩)인명> 세 사람이 <지명>원구(元邱)지명>에 가서 해당 동네의 군정(軍丁)을 간청했다. 상유사(上有司) <인명>박후영(朴後永)인명>, <인명>남효원(南孝源)인명>,
-
1860년 3월 2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일들이 매우 급했으나 풀을 베었다. 주사(廚舍)의 고공(告功)이 임박했으나 기한이 없을 것 같았다. <인명>박재만(朴載萬)인명>, <인명>정학묵(鄭學默)인명>이 보러왔다.
-
1860년 4월 1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들이 모두 볼일 때문에 집으로 가서 오지 않았다.
-
1860년 3월 24일
| 哲宗11
| 庚申
| 흙바람이 불다.
기와 일을 바야흐로 벌였으나 모래가 날렸다. 절진(竊眞)의 변고가 이제부터 드러났다. 대저 기와는 근근이 반을 넘어섰으나 일기가 이와 같아 집을 올리는 일에 장애가 많았다. <지명>벽수(碧水)지명>의 벽목(壁木) 다섯 짐바리를 들였다. 이날 삼계서원(三溪書院) 통문
-
1860년 3월 12일
| 哲宗11
| 庚申
| 잠깐 갰다가 흐렸다가 하다.
목수가 왔다. 그 놈의 왕래가 무상하여, 근거 없는 이치로 책망하니 매우 유감스러웠다. 주방의 가운데와 아래가 이미 완료되어 내일은 관당(館堂)을 지으려 했다. 당렴(堂簾) 한 개는 <지명>독동(篤洞)지명>에 있었는데, 건장한 노정(奴丁)이 아니라면 옮길 수가 없었
-
1860년 2월 14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가 비가 흩날리며 뿌리다.
임시 가옥을 만들었다. 비를 피하게 할 계산이었다. <인명>정학묵(鄭學默)인명>이 와서 문안했다.
-
1860년 5월 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오늘은 천중절(天中節)이다. 청허(淸虛)의 생각이 다른 절보다 달랐다. 그네 타며 신선과 짝하는 놀이, 홍록의 두루 펼쳐진 들판을 거니는 것 또한 신정(新亭)의 한 때 완상거리를 족히 보탤 만 했다. 동산(東山)의 기슬(妓瑟)과 자야(子夜)의 선소(仙簫)를 몰라도 이보
-
1860년 4월 23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온 마을의 노인들이 놀러 온다고 했으나 끝내 소식이 없었다. 친척들이 힘을 합해 주사(廚舍) 벽토를 발랐다. 날이 저물어서야 그쳤다.
-
1860년 3월 1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동풍이 불어 추위기 매섭다.
방 두 칸의 산자(散子)를 올리고, 마침내 흙으로 이게 서까래를 걸게 하는 것도 오늘 할 계획이었으나 목수 한 놈이 아직 오지 않았다. 날이 추운 것이 이와 같아 일에 지장됨이 많았다. <인명>박규빈(朴桂彬)인명>, <인명>전문욱(田文郁)인명>, <인명>전후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