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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이효수(李孝脩) 자부(子婦) 최씨(崔氏) 호구단자(戶口單子)
1861
|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최씨, 경주부
| 경주 양월 경주이씨 양월문중
1861년 1월, 경주부북면안강현에 사는 이효수 사후 자부 최씨가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노비 현황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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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이재우(李在羽) 서간(書簡)
1860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재우, 김두흠
|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1860년 3월 9일, 이재우가 잠암 김의정의 증직을 축하하기 위해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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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김진림(金鎭林) 서간(書簡)
1860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김진림, 이현발
|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1860년 10월 7일, 김진림이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사돈인 이현발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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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김석락(金奭洛) 서간(書簡)
1860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김석락, 이현발
|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1860년 4월 4일, 김석락이 자신의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이현발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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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류기목(柳祈睦) 서간(書簡)
1860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류기목, 김두흠
|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1860년 3월 25일, 류기목이 시호를 맞이하는 행사에 자신이 직접 가거나 사람을 대신 보내지 못한 일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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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이휘재(李彙載) 서간(書簡)
1860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휘재, 김두흠
|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1860년 3월 17일, 이휘재가 잠암 김의정의 증직을 축하하기 위해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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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조병호(趙秉鎬) 서간(書簡)
1860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조병호,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0년(철종11) 5월 13일, 趙秉鎬가 凝窩 李源祚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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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도노(都奴) 일금(日金)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0
|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 일금, 만절
| 대구 칠계 경주최씨 백불암종중
1860년 1월 29일, 都氏의 奴 日金이가 매수인 미상에게 訥古介員에 있는 논[畓] 3斗落只를 42냥의 값을 받고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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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유학(幼學) 김몽억(金夢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0
|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 김몽억, 전필환, 서철이
| 대구 칠계 경주최씨 백불암종중
1860년 1월 20일, 幼學 金夢億이 매수인 미상에게 訥古介員에 있는 논[畓] 7斗落只를 120냥의 값으로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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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박일양(朴一陽)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0
|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 김사균, 박일양, 박준양
| 봉화 명호 안동김씨 해헌고택
1860년 1월 24일, 김사균이 유명산에 있는 밭 5두락을 돈 10냥을 받고 박일양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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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5일
| 哲宗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며 매우 춥다.
우리 마을의 여러 친족들이 각각 노정(奴丁)을 내어 가옥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은 몸소 담당하여 마땅히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선조를 위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니,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이날 저곡(楮谷) 족숙 <인명>이상건(李相健)인명>, 주동(做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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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9일
| 哲宗11
| 庚申
| 흐린 것은 조금 갰으나 비가 바람에 뿌리다.
<지명>소산(素山)지명>의 김 지사(金地師)가 마침 지나가는 편이 있어 그로 하여금 새 터를 보게 했더니 입이 마르게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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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1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지명>갈면(葛面)지명> <지명>여현(余峴)지명>의 군정(軍丁)들이 <지명>독동(篤洞)지명>에 (목재를) 실어왔다. 얇고 일그러져 있었다. 칼과 톱 작업은 여러 친족들이 연일 직접 지키면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명>원구(元邱)지명> <인명>박진규(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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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공사는 이미 아래 작은 판목과 당렴을 마쳤으나 재목 태반이 부족한 걱정이 있었다. 대저 옛 재목을 많이 버린 것에서 기인하나 힘이 미치지 못하니 걱정스러웠다. 아랫마을 <인명>남유원(南有元)인명>, <인명>남유식(南有栻)인명> 어른, <인명>이태현(李泰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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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2일
| 哲宗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목수가 연일 재목을 재고 마름질하거나 잘라 문양을 넣거나, 톱으로 자르고 파내어 원형을 만들었다. 용마로, 서까래, 기둥, 말뚝 등이 순서대로 규격에 맞았으나, 신속하게 하는 바람에 기둥을 세울 도구를 없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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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8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공사는 점차 집의 규모를 만들어 냈으나 서까래 나무 중에 검은 흙먼지 낀 것을 일을 보는 사람들이 우물물로 씻어 내고 장차 반듯하게 자를 계획이었다. 이 또한 하나의 큰 고역(苦役)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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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8일
| 哲宗11
| 庚申
| 흐리고 춥다.
<인명>이수창(李壽昌)인명>, <인명>이수송(李壽松)인명>이 감독하러 갔다. <지명>괴시(槐市)지명>의 군정(軍丁)들이 연일 재목과 기와를 운송하게 되어 기와와 벽돌은 다 운송했고 재목은 다 운송하지 못했다. 군정(軍丁) 30여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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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2일
| 哲宗11
| 庚申
| 흐리고 춥다. 눈이 내리다.
목재 일은 점차 실마리를 얻었으나 그래도 기둥을 세우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명>구현(龜峴)지명>의 <인명>김진림(金鎭林)인명>이 그 때 마침 종가에 머물고 있으면서 역소(役所)로 와서 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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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2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연일 많은 비가 내리던 끝에 날씨가 한발의 조짐이 있는 것 같았다. 지붕 올리는 일이 끝났다. 사방의 낮은 날개가 눈처럼 감추고 있어 매우 좋았다. 옛사람이 말한 "날아 갈 듯한 용마루 지붕 큰 길에 면하고"란 구가 이 집에서 연상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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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목수는 오지 않았으나 토공(土工)이 와서 앙토(仰土)하는 일을 시작했다. <지명>원구(元邱)지명> <인명>남유덕(南有悳)인명>, <지명>저곡(楮谷)지명> 일가 상주 <인명>이부영(李溥榮)인명>, <인명>이찬은(李燦溵)인명> 형제가 보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