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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6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존호(尊號)를 "순조대왕건시태형창운홍기(純祖大王乾始泰亨昌運弘基)", "순원왕후홍화(純元王后洪化)" 라고 추상(追上)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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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23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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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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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16일
| 哲宗11
| 庚申
| 비오다.
양구(楊口) 종장(宗丈)의 생신이라 초대 받아 가서 참석했다. 들으니 성내(城內)에 괴질(怪疾)이 크게 성해 사망자가 이어진다고 했다. 두려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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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11일
| 哲宗11
| 庚申
| 늦게 개다.
가서(家書)를 써서 <지명>광천(廣川)지명> 하인이 돌아가는 편에 부쳤다. <인명>이경장(李景章)인명>에게 보내는 답장도 부쳐 보냈다. 소간(小簡) 1축(軸)을 내려 보내면서 <인명>특(特)인명>, <인명>응(膺)인명> 두 손자에게 나누어 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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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전하기를 여질(癘疾)이 더욱 성해졌다고 했다. 가벼운 죄수들을 석방했다. 도목정사에서 <인명>송기수(宋近洙)인명>가 대사성(大司成)에 <인명>조병문(趙秉文)인명>이 옥천(沃川)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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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건즐(巾櫛)을 시작했으나 여계(餘戒)가 있어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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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10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아침에 <지명>동촌(東村)지명>에 출입하여 차대(次對)를 행했다. <인명>조휘림(趙徽林)인명>, <인명>심경택(沈敬澤)인명>, <인명>전병덕(全炳德)인명>이 정경(正卿)으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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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18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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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황산 장(黃山丈)에게 위문편지를 써서 경저리(京邸吏) 편에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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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23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지명>죽동(竹洞)지명>에 갔으나 아전 태(亞銓台)가 외출하여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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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1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창녕(昌寧)이 올라오는 편에 가서(家書)를 보았는데, 다행히 안신(安信)이었으나, 종수(從嫂)씨가 장병(瘴病)에 걸려 끝내 차도가 없었다고 하니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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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연일 추위가 극심하여 지낼 것이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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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20일
| 哲宗11
| 庚申
| 비오다.
<인명>이운서(李雲瑞)인명>가 와서 담소했다. <인명>이경천(李景天)인명>, <인명>김경량(金景亮)인명>, <인명>안사휴(安士休)인명>가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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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15일
| 哲宗11
| 庚申
| 눈이 내리고, 바람 불고 춥다.
종일토록 객관에 있었다. <인명>장기백(張己百)인명>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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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임 우(林友)편에 아들에게 답장을 부쳤다. <인명>순옥(舜玉)인명>과 <인명>도년(道年)인명> 씨에게도 답장을 함께 부쳤다. 판리(板里) <인명>김휘재(金輝載)인명> 우(友)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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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8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승지(承旨) <인명>김경량(金景亮)인명>, <인명>이회가(李會嘉)인명> 영(令)이 와서 이야기했다. 감기가 끝내 낫지 않았다. 반중(泮中)의 친구들이 모두 이 증상 때문에 동병상련하니 고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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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1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삼경(三更)에 제사를 지니고 반촌(泮村)으로 들어왔다. 두암(斗岩) 편에 집안 편지를 보았는데, 평안하다는 소식이라 다행이었다. <인명>중현(仲賢)인명>이 고분지통(叩盆之痛)을 당했고, 촌내(村內) 연이어 사망자가 있어 걱정된다고 했다.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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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1일
| 哲宗11
| 庚申
| 춥다.
<지명>정동(貞洞)지명>으로 가서 고양 쉬(高陽倅) <인명>이봉녕(李鳳寧)인명>을 찾아가 입지(立旨) 완문(完文) 2장(丈)을 써냈다. <인명>안사휴(安士休)인명>가 지평(持平)에 제수되었다. 승보시(陞補試) 오초(五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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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승보시(陞補試) 칠초(七抄)와 통독(通讀) 초초(初抄)가 있었다. <인명>도년(道年)인명> 씨는 아직 오지 않아 놀랄 만했다. <지명>신현(申峴)지명>의 <인명>희근(喜根)인명>이 인사하러 와서 집안의 안신(安信)을 들었으나 편지를 보지 못해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