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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5일
| 哲宗11
| 庚申
| 잠깐 비가 내리다가 개다.
안 우(安友)의 객관으로 가서 무료함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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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1일
| 哲宗11
| 庚申
| 비오다.
<인명>안사휴(安士休)인명>, 진사(進士) <인명>박한경(朴漢卿)인명>, <인명>윤주응(尹周應)인명>이 와서 담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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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1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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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18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아침에 <인명>안사휴(安士休)인명>와 걸어서 북령(北嶺)을 넘어 재동 령(齋洞令) <인명>박규수(朴珪壽)인명>를 찾아뵈고 확교(確橋)로 가서 참판 태(參判台)의 집에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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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7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가 개다. 밤에 뇌우가 치다.
태백성(太白星)이 미지(未地)에 나타났다. <인명>류지영(柳芝榮)인명>이 차대(差代)된 <인명>허전(許傳)인명>을 고쳐 병조 참지(兵曹參知)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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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21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여기(癘氣)가 점자 줄어들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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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15일
| 哲宗11
| 庚申
| 조금 개다.
건즐(巾櫛)을 했으나 그래도 여계(餘戒)가 있어 걱정되었다. 류 감역(柳監役), <인명>안사휴(安士休)인명>가 아침 전에 와서 이야기 했다. <인명>이운서(李雲瑞)인명>, <인명>이경휘(李景輝)인명>, <인명>권중평(權平仲)인명>이 와서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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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밤에 큰비가 내리다.
중옹 령(仲雍令)이 휴가를 얻어 고향을 찾았다. <인명>이맹원(李孟元)인명> 씨도 함께 갔다. 진사(進士) <인명>김수승(金秀升)인명>이 고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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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12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낮에 비가 내리다. 날씨가 고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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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26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밤에 비가 내리다.
황산 장(黃山丈)이 조정에 사직하고 5냥과 관영(冠纓) 1건을 주었다. 1냥 2전의 값어치였다. 참으로 감사했다. 그 편에 가서(家書), 대그릇 3정(丁), 떨어진 버선 3건, 진분(眞粉) 3봉(封), 서책, 상인(喪人) <인명>김경옥(金景玉)인명>에 보내는 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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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3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수산(水山)에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지명>황강(黃岡)지명>에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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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4일
| 哲宗11
| 庚申
| 비오다.
비가 연일 지루하게 오니 객지에서의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었다. 요컨대 흐리고 맑음은 하늘에 달려있고, 즐거운 집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하늘의 도는 달콤한데 도리어 고통이 되었다. 인사(人事)에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이치가 있는 것인가? <인명>강이서(姜而瑞)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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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27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맑다. 밤에 비가 내리다.
신시(申時)에 사은숙배하였다. <인명>박한경(朴漢卿)인명>이 돌림병으로 거의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고 했다. 다행스러웠다. <인명>정겸식(鄭謙植)인명>이 복과(復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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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6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문묘석채(文廟釋菜)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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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24일
| 哲宗11
| 庚申
| 맑고 춥다.
종인(宗人) <인명>박응선(朴膺善)인명>을 찾아갔다. 동향대제(冬享大祭)에 친히 납시어 서계(誓戒)하셨다. 자시(子時)에 태백성(太白星)이 미지(未地)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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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1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노비와 말을 보냈다. 법전(法田) 강 우(姜友)가 돌아가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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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8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개다 하다.
도목정사에서 <인명>이만송(李晩松)인명>이 지평(持平)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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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22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제주 목사(濟州牧使)의 답장편지를 보았다. 기쁘고 위로가 되었다. 아울러 3종의 궤(饋)가 있었다. 감동스러웠다. <지명>법전(法田)지명>에서 오는 인편에 편안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여기(癘氣)가 크게 성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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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1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인명>김경량(金景亮)인명>은 객관으로 가서 곡회(曲會)에 참석했다. 황산 장(黃山丈)이 4냥을 내었기 때문이었다. 태백성(太白星)이 미지(未地)에 나타났다. 정사에서 <인명>심응태(沈膺泰)인명>가 대사성(大司成)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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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7일
| 哲宗11
| 庚申
| 비오다.
아침에 진사(進士) <인명>안세영(安世泳)인명> 집을 찾아갔으나 주인은 출타했고 그의 자제가 접대하였는데, 매우 정성스러웠다. 비가 올 기미가 있었다. 주인이 극구 말렸으나 출발했다. …원(院)에서 강을 따라가다가 <지명>창릉리(倉菱里)지명>에서 비에 막혀 묵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