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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29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또 구름 끼고 흐리나 추위가 조금 풀리다.
<지명>상리(上里)지명>의 서족제(庶族弟)가 들어왔다. 가서(家書)를 얻어 보았다. 마을에 돌림감기가 있었고 온역(瘟疫)이 있었는데 사망자가 적지 않았으니 또한 시운(時運)에 관련된 것이었다. 앉아서 걱정됨을 어찌 다 말하겠는가. 다만 다행스럽기는 이 군(君)이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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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7일
| 哲宗 11
| 庚申
| 종일토록 큰 바람이 불다.
또 <인명>금우(金牛)인명>를 <지명>사동(寺洞)지명>에 보냈는데 답서를 받지 못했다. 주서(注書) <인명>권노연(權魯淵)인명>, 지평(持平) <인명>배상련(裴相璉)인명>, 진사(進士) <인명>권재형(權載衡)인명>이 찾아왔다. 배 지평(裴持平)이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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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15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인명>장규목(張奎睦)인명>, <인명>강주옥(姜周玉)인명>이 찾아왔다. 아침 후에 <지명>성곡(城谷)지명>을 찾아 갔다. <지명>사동(寺洞)지명> 김 직각(金直閣)의 문 밖 <인명>김완보(金完甫)인명> 집에 숙박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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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3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바람이 차다.
낮에 곤주와(困酒窩)에서 쉬고 저녁에 <지명>모두원(毛豆院)지명> 아래 주막에서 잤다. 진흙 때문에 역참을 세울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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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6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조금 풀리다.
가마꾼을 빌려 <인명>북촌(北村)인명>으로 갔지만 모두 만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전장(銓長) <인명>홍재철(洪在喆)인명>과 만나고, 또 참판(參判) 김응균(金應均)을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또 동복(同福) <인명>임승수(林勝洙)인명>와 그의 맏형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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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4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추운 것이 도리어 심해지다.
몇 군데 정초 인사는 추위를 겁내 닦지 못했으니 이것이 근심스럽다. 가만히 생각건대, 집 하인이 혹 오늘 재를 넘었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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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월 5일
| 哲宗 11
| 庚申
| 추위가 혹독하다.
정언(正言) <인명>손상일(孫相馹)인명>과 노우(老友) <인명>남벽양(南璧陽)인명>이 찾아왔다. 오늘 비로소 도목정사 단자를 받아보니 <지명>예천(醴泉)지명> 신임 수령은 <인명>유건환(兪建煥)인명>인데 서인(西人)이며 <지명>사동(寺洞)지명>에 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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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0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밥을 먹은 뒤에 전적(典籍) <인명>윤종헌(尹鍾憲)인명>과 <지명>송동(宋洞)지명>으로 가 정언(正言) <인명>이우원(李右原)인명>을 방문했다. 이어서 동경(東京)으로 가서 진사(進土) <인명>권중평(權平仲)인명>, 진사 <인명>이경휘(李景輝)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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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아침에 걸어서 북령(北嶺)을 넘어 <지명>경동(京洞)지명>의 승지(承旨) <인명>박규수(朴珪壽)인명>를 찾아갔다. <지명>의성(義城)지명> 종인(宗人) <인명>박성필(朴聖弼)인명>의 편지를 전했다. <지명>청석동(靑石洞)지명>에 들려 지평(持平)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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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16일
| 哲宗11
| 庚申
| 흐리고 춥다.
구일제(九日製)를 열어 친림 춘당대에서 부(賦)를 지었다. 제(題)는 「조월시서즉태공병법(朝月視書卽太公兵法)」이었다. <인명>목승석(睦承錫)인명>, <인명>조성하(趙成夏)인명>, <인명>한응국(韓應國)인명> 세 명이 직부전시(直赴殿試)되었고, <인명>성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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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7일
| 哲宗11
| 庚申
| 비오다.
초복. 반주(泮主)가 연일 불을 지피지 않았고, 군록(軍祿) 또한 빠지게 되니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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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소서(小暑). 아침밥을 먹은 뒤에 <지명>공동(公洞)지명> 승지(承旨) <인명>유성환(兪晟煥)인명>, <지명>낙동(駱洞)지명> <인명>제헌(齊憲)인명> 태(台)를 방문하려 했으나 돌아오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 <지명>저동(苧洞)지명> 승지(承旨)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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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2일
| 哲宗11
| 庚申
| 비오다.
종묘(宗廟)에서 추향(秋享) 대제(大祭)을 집행했다. 벼이삭이 틀 때에 찬비가 침음하니 농사가 걱정스러웠다. 문득 설사증세가 있어 고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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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10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왕고(王考)의 제삿날이다. 밖에 있어 직접 집도할 수가 없으니 마음의 통박함을 어이할까? 이날 정사(政事)에서 정언(正言) 말망(末望)에 들었다. 【<인명>안윤시(安潤蓍)인명>가 헌납(獻納)에 제수되었고 <인명>이담구(李潭九)인명>가 정언(正言)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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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7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늦게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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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오후에 바람 불고 춥다.
오후에 바람 불고 추우니 괴이했다. 시절의 기상이 절조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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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우연히 감기 때문에 불쾌하여 고민스러웠다. 친림(親臨)하여 숭정전(崇政殿)에서 감제(柑製)를 설행하고 부를 지었는데, 제목은 「수천지호사방래하(受天之祜四方來賀)」였다. <인명>남헌진(南憲珍)인명>이 직부전시(直赴殿試)되었다.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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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30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대직(臺職)이 순조롭게 바뀌어 다행스러웠다. 도목정사에서 <인명>김병지(金炳地)인명>가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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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2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지명>하상(河上)지명>에 보내는 답서(答書)를 써서 진사 <인명>류경만(柳景萬)인명>이 돌아가는 편에 부쳤다. 이날 도목정사에서 장령(掌令)에 제수되어 감축됨이 망극했다. 박○○, <인명>한용덕(韓容悳)인명>, <인명>서재▣(徐在▣)인명>가 물망에 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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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3일
| 哲宗11
| 庚申
| 비올 기미가 조금 있다. 아침밥을 먹은 뒤부터 비로소 비가 내리며 종일 개지 않다.
기우제를 지냈다. <인명>강진규(姜普奎)인명>, <인명>류지영(柳芝榮)인명>이 모두 제관(祭官)으로 차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