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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23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구름이 조금 끼고 바람이 많이 불더니 낮이 어둡다.
비로소 이엉을 이어 지붕을 덮었으니, 지난해 아이들이 허술하게 하여 덮지 않은 것 때문이다. 올해는 우환(憂患)과 장사(葬事)에 골몰하여 가을이 지나자 비가 새던 것이 거의 썩어 문드러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겨우겨우 보수를 했지만 바람과 추위의 농간 때문에 저녁이 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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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10일
| 哲宗 11
| 庚申
| 종일 구름 끼고 흐리다.
차아(次兒)가 닷새 만에 비로소 벌목소에서 돌아와 전하기를, 재목(材木)은 천자문(千字文)을 열 줄까지 쓸 수 있고 당판(堂板)은 『당음(唐音)』을 일곱 번 쓸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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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18일
| 哲宗 11
| 庚申
| 바람 불고 춥다.
<지명>중모촌(中牟村)지명> 황 형(黃兄)이 봉정사(鳳停寺)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렀으니, 대개 『무신창의적(戊申倡義蹟)』을 간행하는 일로 아직까지 본사(本寺)에 서너 사람이 머무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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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26일
| 哲宗 11
| 庚申
| 저녁에 비가 내리더니 밤새 내리다.
저녁에 비가 내리더니 밤새 내려서 처마의 빗방울 소리를 들었으니, 서리가 늦춰지는 조짐이 아니겠는가? 차아(次兒)가 <지명>우안(愚安)지명> 등지를 간평(看坪)하고 저물녘에 비에 젖은 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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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5일
| 哲宗 11
| 庚申
| 비가 내리다.
이른 아침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비를 만나 가지 못했다. 늦은 아침에 비로소 출발했지만 또 비바람을 만나 도중에 체류했다가 저녁에서야 비로소 돌아왔으니, 매우 힘들고 군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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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13일
| 哲宗 11
| 庚申
<지명>하상(河上)지명> 류 참지(柳參知)가 <지명>한양지명>에서 내려오는 편에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편지와 류 침랑(柳寢郞), <인명>김원방(金元方)인명>의 편지를 받아서 근래 상황이 모두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위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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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21일
| 哲宗 11
| 庚申
위 아(渭兒)가 왔다. 대개 올해 여름에 그의 종형(從兄)이 병중에 외가에 갔었는데, 인사(人事)가 변한 뒤에 그 어미의 기일에 맞추어 왔으니 옛날 감회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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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8일
| 哲宗 11
| 庚申
| 또 구름끼고 흐리다.
형호 형주(衡湖兄主)가 가벼운 병이 있었는데 돌림감기 인듯하다. 많이 늙은 사람의 근력이니 보기에 몹시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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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7일
| 哲宗 11
| 庚申
| 또 해가 나다.
신가(新家) 상곡전(上谷田)에 보리를 갈았다. 정 원장(丁院長)은 80 노인에 가까운데 말을 타고 갈 수 있었다. 오늘 <지명>하상(河上)지명>으로 갔는데 매우 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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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15일
| 哲宗 11
| 庚申
| 바람이 분 끝에 아직 춥다.
오늘은 곧 한식(寒食)이다. 보리갈이를 아직 마치지 못했으니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섬돌 앞의 매화가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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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23일
| 哲宗 11
| 庚申
| 낮에 폭풍우가 오다. 저녁에 개다. 밤에 또 큰 바람이 불다.
향도(鄕道)의 모든 빈객(賓客)이 중로(中路) 옷을 적시는 경우가 많았다. 접빈소(接賓所)를 한 마을의 반상(班常)의 집에다 정했다. <지명>기천(基川)지명> 수령의 답서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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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24일
| 哲宗 11
| 庚申
오전에 부내(府內)에 사는 <인명>김계환(金啓煥)인명>이 <지명>한양지명>에서 내려와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이달 20일에 보낸 편지를 전해주었는데, 별다른 소식은 없었고 남북으로 소요(騷擾)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서양(西洋)의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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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3일
| 哲宗 11
| 庚申
| 비가 내리다.
부(府)로 출발하려다가 멈추었다. <지명>거촌(巨村)지명> 김 척(金戚)과 <지명>가야(佳野)지명> 김 랑(金郞)이 찾아왔다.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의 겨울옷을 아직 올려 보내지 않았는데 이른 추위에 객관(客館)에 있으니 애타고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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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11일
| 哲宗 11
| 庚申
| 맑다. 날씨가 추운 것이 조금 풀리다. 흰 이슬이 서리처럼 내리다.
듣건대 <지명>간산(艮山)지명> 족인(族人) <인명>종도(宗度)인명>의 친장(親葬)을 <지명>답실(畓室)지명>에서 지내는데, 참토(斬土)는 이달 29일에 있고 장삿날은 다음 달 초1일에 있다고 한다. 밤에 정원(政院)에서 아뢰기를, "시원임대신(時原任大臣)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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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19일
| 哲宗 11
| 庚申
<지명>하상(河上)지명> 손녀(孫女) 위 아(渭兒)가 내일 근행(勤行)을 간다고 하기에, <인명>이록(李祿)인명> 놈에게 가마를 보내게 했다. <지명>고산(孤山)지명> 이 아(李雅)가 찾아왔으니, 대개 골짜기로 들어간 후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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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6일
| 哲宗 11
| 庚申
| 또 바람이 차다. 밤에 큰 눈이 오다.
대개 햇살을 보지 못한 것이 10여일이 되었다. 또한 매일 추위에 눌려 극도로 견디기 어려웠다. 낮에 <지명>우두원(牛頭院)지명>에서 쉬고 저녁에 집에 돌아왔다. 집안과 마을에 대고(大故)가 없으니 다행이었으나 채 아(蔡兒)의 병상(病狀)은 보기에 몹시 근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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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5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대개 햇살을 보지 못한 것이 지금 이미 수개월이 되었다. 보리를 갈 때가 되었는데 들으니 아무도 갈고 뿌리는 사람이 없다고 하니 농사의 희망이 아주 없다. 하회(河回)의 류 척(柳戚)이 보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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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13일
| 哲宗 11
| 庚申
<지명>우동(芋洞)지명> <인명>이희일(李熙一)인명> 형이 보러왔다. <지명>소산(素山)지명> <인명>이규벽(李奎璧)인명> 형과 <지명>감애(甘厓)지명> <인명>박위중(朴渭中)인명> 형이 보러왔다. 날마다 분황(焚黃)의 일로 동사(洞舍)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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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21일
| 哲宗 11
| 庚申
| 바람 분 끝에 몹시 춥다.
영주(榮州)의 제종(諸宗)이 왔다. 들으니, 두 존로(尊老)가 제사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 집안의 함께 경축할 것에 섭섭함이 매우 심했다. 계아(季兒)가 부내(府內)의 도회(都會)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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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27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종일 매우 바람 불고 춥다.
<인명>영직(英直)인명>이 그 숙부의 시신을 옮기고 여드레 만에 비로소 돌아왔다. 이렇게 농번기를 만났을 때 왔으니, 책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명>북면(北面)지명>의 서원(書員)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