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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23일
| 哲宗 11
| 庚申
면내의 회문(回文)을 보니, 장차 내일 일제히 부(府)에 들어가 정소(呈訴)하는 일 때문이었다. 만약 성사되지 않는다면 또 감영(監營)에 소장(訴狀)을 올릴 것이니, 모르겠지만 결복(結卜)을 다시 징수하는 일이 혹 이로 인해 중지되겠는가? 같은 면에 사는 정의로써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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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2일
| 哲宗 11
| 庚申
이른 아침에 종장(宗丈) 제사에 참석하고, 여러 빈붕(賓朋)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리(府吏) <인명>김상철(金尙哲)인명>이 찾아왔고, <지명>하상(河上)지명> 표종질(表從姪) <인명>우형(禹亨)인명>이 유숙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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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10일
| 哲宗 11
| 庚申
새벽에 선비(先妣)의 기제사에 참석했다. 가동(家僮)으로 하여금 <지명>신양(新陽)지명>에서 솜을 타게 했다. 장차 <지명>한양지명>에 머무르는 아이를 위해 솜옷을 갖추어 며칠 뒤에 길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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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18일
| 哲宗 11
| 庚申
<지명>하상(河上)지명> 표종질(表從姪) <인명>류진우(柳進瑀)인명>가 찾아왔으니, 대개 결복(結卜)을 다시 징수하는 일로 면내(面內)에서 장차 관에 소장(訴狀)을 올리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답하기를 "만약 그렇다면 돈 삼백을 배당한 후에 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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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9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구름 끼고 흐리다가 식후에 해가 나다.
목수 <인명>운이(雲伊)인명>가 산성(山城)에서 돌아와 차아(次兒)의 편지를 전했는데, 나무를 베어 운반하는 일이 매우 커서 며칠이 걸릴 것 같으니, 이것이 걱정스럽다. 갑자기 <지명>무이(武夷)지명> 찰방(察訪) <인명>이운서(李雲瑞)인명> 형이 괴질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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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17일
| 哲宗 11
| 庚申
아이들이 두 곳의 대추를 땄는데 몇 말이 되지 않으니, <지명>협면(峽面)지명>의 가을농사보다 흉년이 심하다. 모르겠지만 내년의 일은 혹 대추가 조짐이 되지 않겠는가? 매우 두려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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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25일
| 哲宗 11
| 庚申
듣건대, <지명>풍서(豊西)지명>의 상하 수백 명이 일제히 풍시(豊市)에 모여 장차 부(府)에 들어가 정장(呈狀)할 것이라고 하는데, 또한 시변(時變)에 관계된다. 듣건대, 편지를 써서 가질(家姪)이 일을 함께하려 했지만 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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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4일
| 哲宗 11
| 庚申
부(府)에 들어가 <인명>전재춘(田在春)인명>의 집에서 묵었는데, 중요한 일이 대부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했다. 고을 수령이 고을사람들을 전혀 만나지 않으니, 이는 결복(結卜)을 다시 징수하는 것을 흥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부중(府中)의 소문이 좋지 않은 것이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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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12일
| 哲宗 11
| 庚申
결복(結卜)을 다시 징수하는 관의 하인이 왔는데, 별다른 독촉은 없었지만 깊은 염려가 없을 수는 없다. 족인(族人) <인명>종도(宗度)인명>가 상복을 입고 와서 그 대인(大人)을 장사지낼 때 쓸 만폭(輓幅)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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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20일
| 哲宗 11
| 庚申
미장이가 돌아갔다. 아침에 목수에게 시렁 두 개를 만들어 내방(內房)에 설치하게 했으니, 대개 손부(孫婦)와 그 시어머니가 함께 거처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 처지가 매우 참혹하고 슬프다. 비로소 앞들에 가을보리를 뿌렸다. 편지를 써서 <지명>예천(醴泉)지명>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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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2월 27일
| 哲宗 11
| 庚申
아침 후에 가마꾼 4명을 <지명>한양지명>으로 보냈다. 한 마을의 노소가 모두 청방(廳房)에 모였으므로 억지로 씻고 빗질하고서 응대하였는데 사지와 백해(百骸)가 시들어 힘을 낼 수가 없었다. 저녁에 들어와 가묘(家廟)에 절을 올리고 또 마을 안에 인사를 다녔다.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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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3월 6일
| 哲宗 11
| 庚申
| 비로소 햇살이 나다.
서쪽 밭에 보리를 갈았다. 예안리(禮安吏) <인명>신한상(申漢祥)인명>이 인사하러 왔다. 그 수령 <인명>치흠(穉欽)인명> 형의 편지를 전했다. 원장(院長) <인명>정문교(丁文敎)인명>가 찾아와 유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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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17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비가 오고 식후에 조금 개다. 밤에 또 비가 오다.
아까 듣기에 인근 고을인 <지명>지북(枝北)지명>에 괴질(恠疾)이 들어서 두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니 매우 경악했다. 이어서 들어보니 위험한 지경은 지나 죽지 않았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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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25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아침에 양미(糧米)를 갖추어 또 벌목소(伐木所)에 하인 하나를 보냈다. <지명>오천(浯川)지명> 동장(洞長)에게 패(牌)를 전하여 마을 일꾼을 보내 내일 순옥(順玉)의 마당가에 마룻대로 쓸 나무를 운반하게 했다. 저녁에 계아(季兒)가 돌아와서 들으니 나무 운반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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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4일
| 哲宗 11
| 庚申
| 맑다가 흐리다.
마음을 풀기 위해서 들에 나가 농사짓는 것을 보았는데, 태반(太半)이 긴 장마에 손상되어 풍년이 들 희망은 없을 것 같다. <지명>서촌(西村)지명>으로 길을 돌렸는데 <지명>우앙동(遇昂洞)지명> 재종질(再從姪)이 조행(朝行)을 했으니 마음이 매우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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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12일
| 哲宗 11
| 庚申
| 맑다.
병산서원(屛山書院) 하인이 <지명>내동(內洞)지명> <인명>순금(順金)인명>의 문패(門牌)를 가지고 와서 돌렸는데 말의 뜻이 패악하다. 서원을 쑥대밭으로 만들려하니 매우 통탄스럽고, 도원장(道院長)의 일은 더욱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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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20일
| 哲宗 11
| 庚申
향청(鄕廳)의 소식을 들어보니, 장무(掌務) 한 명을 갈았다고 한다. 이렇게 향풍(鄕風)이 각박한 때를 만나 스스로 욕을 당하는 단서를 만드는 것은 매우 좋지 않다. <인명>중거(仲擧)인명>와 함께 상의하여 향당(鄕堂)에 하인을 보내 체임(遞任)을 약속하고서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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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28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비 올 기미가 쾌청하게 개다. 날씨가 차고 해가 밝다. 밤에 찬이슬이 서리처럼 내리다.
날씨가 차고 해가 밝으니, 서리가 내릴 기미가 아니겠는가? 족승(族僧) <인명>회은(晦隱)인명>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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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7일
| 哲宗 11
| 庚申
가질(家姪)이 물계서원(勿溪書院)에서 향례를 지내고 저물녘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가다가 예천 수령(醴泉首領)을 만났지만 <지명>대지(大枝)지명>의 결환(結還)을 부탁하는 일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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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15일
| 哲宗 11
| 庚申
차아(次兒)가 부(府)에 들어갔다. 계아(季兒)를 시켜 <지명>하상(河上)지명> 류 금산(柳金山)의 상구(喪柩)를 점심 먹는 현애주점(玄厓酒店)에서 위문하게 했다. 그 사람의 평소 마음 쓴 것이 우리집안 사람이 가서 위문할 것은 아니지만 대대로 맺어온 정의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