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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6일
| 哲宗 11
| 庚申
| 따뜻하다.
<지명>산양(山陽)지명> 인근 땅에서 홍(洪)과 채(蔡)가 분당하여 크게 서로 다툼이 있었다고 하는데, 역시 시변(時變)에 연관된 것이었다. 어찌 기운에 한 조각 평온한 경계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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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5일
| 哲宗 11
| 庚申
| 바람은 없으나 춥다.
<지명>해평(海平)지명> <인명>최관식(崔觀植)인명> 형이 전날 왔다가 오늘 아침 돌아갔다. 10년 만에 얼굴을 보는 것이라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지명>내성(內城)지명> 며느리가 초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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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1일
| 哲宗 11
| 庚申
이른 아침에 우 아(宇兒)에게 편지를 쓰고 겸하여 옷 꾸러미를 <인명>순철(順哲)인명>을 통해 부쳤으니 다행을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채 아(蔡兒)의 병세가 어제 저녁부터 조금 약효가 들어 설사 증세가 조금 멎었고, 또 소변도 잘 보니 다행스럽다. 오후에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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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9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비가 오다가 낮에 조금 개다.
채 아(蔡兒)가 오후에 내방(內房)으로 들어갔으니 울화(鬱火) 기운이 시킨 데에서 나온 행동이다. 내간(內間)에서 푸닥거리[巫樂]라도 할 것을 청한 것은 천만 부당한 일이지만, 금지하고 싶지 않은 것은 그 아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쓰지 않은 방법이 없던 지극한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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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8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나 따뜻하다.
일모(日暮) 유시(酉時) 초에 계부(季婦) 성실(城室)이 딸을 낳았는데 여덟 달에 해산하여 우려가 매우 심하여 온 집안에 경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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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7일
| 哲宗 11
| 庚申
| 따뜻하다.
권 병방(權兵房)이 와서 전했다. 듣자니 <지명>문평(聞坪: 문경)지명> 감찰 <인명>김병욱(金炳昱)인명>이 이번 달 22일에 호원(湖院)에서 돌아오는데 <지명>금당재〔金唐峴〕지명>에서 <지명>상리(上里)지명> 김씨(金氏)에게 능욕을 당했다. 추패(麤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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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3일
| 哲宗 11
| 庚申
| 맑다.
손녀 위 아(渭兒)가 와서 머문 지 넉 달 남짓 되었다. 그 아이의 외숙모는 양육의 은혜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미약한 병이 있다는 것을 듣고 데리고 가려고 기약했다가, 요객(繞客)과 가마꾼[轎丁]을 보냈기에 부득이하게 장차 내일 아침에 비로소 보낼 것이지만, 또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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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11일
| 哲宗 11
| 庚申
| 오전에는 비가 개었는데 곧바로 오후에 우레가 치고 비가 크게 쏟아지다.
채 아(蔡兒)의 병은 다시 살아 일어날 가망이 없었기에, 오늘 결국 삼출고(蔘朮膏)를 만들어 먹였는데, 약물을 삼키지도 못하고 곧장 흘러 떨어짐을 면치 못했다. 나의 나이를 스스로 회고해보면 이미 64세이기에 수(壽)를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15년 동안의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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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19일
| 哲宗 11
| 庚申
이른 아침에 각처로 부고 사자[訃使]를 보냈다. <인명>영직(英直)인명>은 <지명>한양지명>, <인명>일근(日斤)인명>은 <지명>전고(前臯)지명>, <인명>영술(英述)인명>은 <지명>예안(禮安)지명>, <인명>만득(萬得)인명>은 <지명>망천(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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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27일
| 哲宗 11
| 庚申
| 3일을 연이어 비가 개고 바람이 서늘하다.
장례는 탈 없이 잘 끝냈다. 죽은 아이의 운명으로 헤아려보자면 또한 이상한 일이나 그 아이가 평소 선행을 한 까닭으로 빚어진 일이 아닐까? 아침 전에 마동 빈(馬洞賓)이 장차 부내(府內)로 들어가려 하기에, 그 편에 <인명>을용(乙用)인명>에게 패지(牌旨)를 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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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17일
| 哲宗 11
| 庚申
| 춥다.
들으니 <지명>하상(河上)지명> 향로 장(鄕老丈)이 일전에 세상을 버렸다고 한다. 차아(次兒)와 재종질(再從姪) <인명>익흠(益欽)인명>을 보내 조문하게 했다. 부고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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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5일
| 哲宗 11
| 庚申
| 따뜻하다.
듣자니 기내(畿內)에 돌림병이 아직 말끔히 없어지지 않았다고 하고 또 길에 개창(疥瘡)이 있다고 한다. 경팽(京伻)의 왕래에 실로 걱정이 많았다. <지명>구정(龜亭)지명> 내행(內行)이 새벽에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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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4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가랑비가 내리다. 저녁 뒤에는 큰바람이 불고 추웠다.
수령 <인명>엄돈영(嚴敦永)인명>이 보자는 편지를 보내왔으나 병을 핑계로 답장을 보냈다. <지명>하상(河上)지명> 진사(進士) <인명>류기영(柳驥永)인명>이 돌아 연계(蓮桂) 모임이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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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2일
| 哲宗 11
| 庚申
| 춥다.
촌인(村人)이 전하기를, 순상(巡相)이 <지명>서면(西面)지명> 장초(狀草)의 말로 땅 주인을 능멸하자 크게 화를 냈다고 했다. 과연 진실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말이 나에게 미쳤다고 하니 참으로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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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8일
| 哲宗 11
| 庚申
계아(季兒)의 어린 손녀가 천연두 증세 때문에 오전에 죽었으니 참혹하고 측은함을 비유하기 어렵다. 채 아(蔡兒)가 오후에 스스로 운동을 하고 마루 위에 나와 앉았는데, 대변이 조금 멎었으니 매우 괴의할만하다. 오늘 아침에 하인을 부중(府中)으로 보내어 고약(膏藥)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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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16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비가 마치 물동이를 엎은 듯이 쏟아지다가 늦은 아침 이후 조금 개다. 저녁에 우레가 진동하고 큰 비가 내리다.
채 아(蔡兒)가 또 그의 둘째 숙부의 집으로 옮기고자 했다. 병든 마음에서 빚어진 일이기에 부득이하게 못 쓰는 방을 수리하여 그로 하여금 나가 머물게 하였지만 수고롭게 움직이는 해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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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24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비가 오다.
목수와 큰 칼을 든 무리들이 모두 일을 마치고 돌아갔다. 족군(族君) <인명>종도(宗度)인명>가 <지명>담상(潭上)지명>에서부터 비로소 우리 집의 나쁜 소식을 듣고는 와서 조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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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2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 전에 갤 조짐이 있는 듯하다.
<지명>천전(川前)지명> 김 형(金兄)이 식후에 돌아갔다. 조금 뒤 <인명>영직(英直)인명>이 <지명>한양지명>에서 비로소 돌아왔고, 그 편에 우 아(宇兒)의 편지를 받아서 병 없이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소식이 막힌 뒤 끝에 위로됨을 헤아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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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4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큰 바람과 추위는 없을 듯하다.
이른 아침 경팽(京伻)을 보냈다. 그믐 초에 반촌(泮村)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가 ◯릉사(◯陵寺)에 나가 머물 듯하여 왕복하는 폐가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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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3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매우 온화하다.
<지명>하상(河上)지명>의 종증손부(從曾孫婦)의 신례(新禮)가 길일에 행해졌다. 새사람 역시 기대한 만큼 위로가 되었다. <지명>원촌(遠村)지명> 척손(戚孫) <인명>이만청(李晩淸)인명>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