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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19일
| 哲宗 11
| 庚申
| 춥다.
부(府)의 종놈 <인명>박양갑(朴羊甲)인명>이 촌(村) 밖에 시장마다 관포(官庖: 도살장)을 설치하고 고의로 고기 사는 사람들을 불러들였는데, 그놈이 한 행위는 실로 매우 가증스러웠으나 일단은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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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7일
| 哲宗 11
| 庚申
| 따뜻하다.
어떤 사람이 <지명>산양(山陽)지명> <지명>보리(保里)지명> <인명>김문상(金文相)인명> 집에 불미스러운 이야기를 전했는데, 이런 일은 자취(自取)하지 않음이 없으나 세계(世戒)로 삼으니 생각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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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28일
| 哲宗 11
| 庚申
| 바람이 불다.
<인명>금우(金牛)인명>가 입으로 전하기를, 신평 족군(新坪族君)이 <지명>반촌(泮村)지명>에 살고 있는 과부를 가마에 태워서 내려온다고 한다. 이 빈(賓)은 매사에 쓸데없는 일만 해서 이것이 근심스러우니, 염려스러운 단서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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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6일
| 哲宗 11
| 庚申
| 지난 늦은 밤에 가랑비가 내리다. 오늘 아침에 미풍(微風)이 불고 춥다.
홍주(洪州) <인명>이덕여(李德輿)[이휘재(李彙載)]인명> 형이 병산서원(屛山書院)에서 찾아왔다. 신평 족질(新坪族姪)이 그 소실(小室)을 데리고 비로소 도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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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14일
| 哲宗 11
| 庚申
| 비가 내리다가 낮에 개다.
사급 족질(泗汲族姪)이 돌아갔다. <지명>내위라(內位羅)지명> <인명>임몽일(林夢日)인명>이 솜을 지고 상경하기에 <인명>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인명>에게 편지를 부치고 아울러 흰 수건과 토시를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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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2일
| 哲宗 11
| 庚申
| 날씨가 봄 같다.
<지명>망천(忘川)지명> 손부(孫婦)의 신행(新行)이 오전에 들어왔다. 일행들도 무탈하고 새사람은 매우 완미하고 현숙했다. 우리 집에 장차 빛날 기운이 있는 것인가? 위로되고 기쁜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나 비참했던 시기 뒤라 인경치창(因慶致愴)의 마음을 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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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일
| 哲宗 11
| 庚申
| 따뜻하다.
이른 아침 <지명>예읍(醴邑)지명>으로 갔다. <지명>예읍(醴邑)지명> 수령이 신행(新行)을 마치고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지명>대지(大枝)지명> 묘지기 등이 탈이 난 것을 물어 온 것 때문에 반나절이나 애써 말씨름을 했으나 결과도 없이 유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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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9일
| 哲宗 11
| 庚申
| 오후에 처음으로 바람 불고 춥다.
밤에 <인명>손척(孫陟)인명>이 <지명>한양지명>에서 돌아왔다. 15일 만이다. <인명>우흠(宇欽)인명>의 편지를 보니 조정에 불안한 조짐이 있었다. 훈어(訓御) 두 장군이 모두 상소(上疏) 때문에 문밖으로 나갔다고 했다. 탈이 날 조짐인 것 같아 나라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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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5일
| 哲宗 11
| 庚申
| 맑고 불볕더위가 심하다.
<지명>천안(天安)지명> 김 의원(金醫員)이 집에서 오랫동안 머물려고 하나, 하복(夏服)이 없는 것을 걱정하기에 3민(緡) 돈을 주어 그로 하여금 시장을 둘러보고 포(布)를 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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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13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부터 비가 오다.
채 아(蔡兒)의 설사를 멎게 할 방책이 없는 것이 괴로워 종일 의서(醫書)를 열어 열람했다. 그래서 양원산(養元散) 화제(和劑)를 얻어 시약(試藥)해 보았더니 맛이 매우 좋았다. 행여 보탬이 있을까? 밤에 또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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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29일
| 哲宗 11
| 庚申
<지명>법전(法田)지명>에서 빌려온 『황극편(皇極編)』 일곱 권을 8월 초1일부터 시작하여 오늘 저녁에 베끼는 것을 마쳤으니, 모두 58일이다. 근심을 잊고 적적함을 깨뜨리는 자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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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7일
| 哲宗 11
| 庚申
<지명>매원(梅院)지명> <인명>덕후(德厚)인명> 형이 아들을 보내 본부(本府)의 초택(草擇)을 보게 했는데, 그 편에 편지가 있었고 <인명>응회(應晦)인명> 형도 위문편지가 있었다. <지명>매원(梅院)지명>의 말과 하인이 부중(府中)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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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15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고 바람이 불다.
<지명>매원(梅院)지명> 이 형(李兄)이 돌아가다. <지명>하상(河上)지명> 류 형(柳兄)이 찾아왔다. 어떤 사람이 전하기를, 대궐 문에 글을 건 놈을 잡아 국문을 시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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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3일
| 哲宗 11
| 庚申
| 미풍이 불다.
늦은 아침 뒤에 신행의 인마를 돌려보내고 손님과 사돈 친구와 둘러 앉아 이야기하며 적막함을 달랬다. 문중의 경팽(京伻)이 매일 보내려고 하는데 혹 불급한 단초는 없겠는가? 신평(新坪) 족질(族姪)이 지난 밤 부중에서 호원(湖院) 신주 입향회(入享會)의 경개(梗槪)를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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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2일
| 哲宗 11
| 庚申
조반 전에 <지명>예읍(醴邑)지명>의 유리(由吏)를 불러 그로 하여금 본관(本官)에 왕복하도록 하여 완문(完文: 증명 문서)을 받았으나 바라는 바에 부합하지 못했으니 분탄함을 어찌할까? 저녁을 틈타 집으로 돌아 왔다. 【대율 장(大栗丈)의 중상(中祥)에 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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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0일
| 哲宗 11
| 庚申
| 아침에 큰 바람이 불고 춥다.
동지제사를 행했다. 들으니 <지명>한양지명>의 감기가 기미년 호감(胡感) 같다고 한다. 아들을 반촌(泮村)에 보낸 사람에게 걱정되지 않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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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6일
| 哲宗 11
| 庚申
김 의원(金醫員)이 오전에 올라 왔다. 오후에 채 아(蔡兒)가 또 크게 오한에 떨었고, 설사 기운이 더욱 심해졌다. <지명>소산(素山)지명> 김 서방(金書房)이 상경하는 길에 찾아온 편으로 우 아(宇兒)에게 편지를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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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14일
| 哲宗 11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계아(季兒)를 <지명>위라(位羅)지명>의 뒷산에 보내어 그로 하여금 나무를 베어 판자를 만들게 했다. 또 하인을 <지명>망천(忘川)지명>에 보내어 편지로 목 아(木兒)를 불렀다. 이는 채 아(蔡兒)의 병이 매우 위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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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10일
| 哲宗 11
| 庚申
| 또 아침부터 비가 내리다.
오늘은 <지명>대지(大枝)지명> 선영(先塋)에 회전(會奠)을 하는 날이다. 각 곳의 자손들이 모두 모였지만 비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못하다가 늦게 비를 무릅쓰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미안한 것을 어찌 형언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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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18일
| 哲宗 11
| 庚申
| 흐리다.
<지명>산양(山陽)지명> <인명>채주(蔡周)형인명>이 내방했는데, 재종질(再從姪)을 데리고 근행(覲行)할 것 같았다. <지명>하상(河上)지명>의 류 우(柳友)는 바로 문숙씨(文叔氏)의 장손인데, 또한 내방했다.